[원격의료 미리보기 #2]

원격의료 시행이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 정부의 입법예고 발표가 나왔다. 과연 의료계에서 예상하는 원격의료의 미래와 이에 대한 폐단은 무엇일까. 남궁병원 정형외과 백상훈 과장<사진>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직접 쓴 원격의료
가상소설 몇 편을 소개한다. (특정 병원명은 사실과 관계없는 소설일 뿐이며,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PA.물리치료사 등 원격의료와 동시에 침범당한 의료영역

원격진료가 시작 된지 8년. 애초에는 격오지 주민으로 한정됐지만 그 범위가 모호해 일반인들에게 점차 퍼지게 됐고, 이들의 이용을 조장하는 의사들도 늘어났다. 처음에는 외래 환자의 일부가 원격의료였지만, 5년 째는 좀더 보편화됐고 수익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정도였다. 시골에서도 누구나 빅5병원의 최신 병원진료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라고 환자들은 기뻐했다.

“과장님 면접 왔습니다.”

아침 환자를 보기 전에 손수 내린 아메리카노를 먹던 나는 그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업무를 시작했다.

“자 이력서 좀 볼까요.”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은 자신감 있는 얼굴로 내 얼굴을 보며 진료실을 훑어보고 있다. 이력서에는 지방 간호대학 출신으로, 삼성서울병원 외과계 PA 3년, 수술방 경력 1년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고. 고향이 이 곳이라 내려와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장 교수님은 잘 계시나요?”

장 교수님의 이름이 나오자 그 여성은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대꾸한다.

“늘 수술이 많으셔서 힘들어 하시죠”

장 교수는 삼성서울병원 간담도 분과 13번 교수님이시다. 몇 차례 초음파로 췌장암 환자와 담도환자를 조기에 발견해서 원격진료 상 칭찬도 받았고, 덕분에 지역 환자들 사이에서 우리 병원이 좀 실력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기억이 있다.

“하루에 한 3-4건 하시나 봐요?”

“그럼요. 4건은 기본이시죠. 저도 마지막 일 년은 어찌나 힘들던지요. 그런데 과장님은 커피를 직접 내려 드시나 봐요 서울에는 비서들이 알아서 준비해 주는데요.”

돈이 없는 지방 병원에서야 모든 일을 손수 해야 하기에, 원두도 직접 준비해서 내려야 한다. 뭐 꼭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나도 이제는 바리스타 뺨치도록 커피 내리는 솜씨가 늘었다. 밖에서 사먹는 테이크아웃 커피가 환자부담금 보다 높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까.

“전 제 손을 믿습니다. “

외과의사 같은 허접 멘트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경력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 저희 병원에 외과의 자리가 결원이 생겨서 급하게 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분이 와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진료 참여가 가능할까요?”

수술을 자주 하지 않으니 병원에 외과의사를 둘 필요가 없다. 그래도 외과계 수술환자나 수술 의뢰 환자 등은 받아야 하는데, 외과 전문의 보다 외과계 PA가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 PA 합법화 이후 이들은 종병 의료의 주축이 됐고, 말 많고 까다로운 전공의들은 갈수록 지원자가 줄어들어 PA의 진료 영역은 더욱 확대됐다.

“삼성병원 외래 환자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원격진료 경험이 있고 Critical pathway 에 익숙하니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보겠습니다.”


역시나 삼성병원에서도 원격진료에도 일부 PA를 보조로 사용하고 있으니 적응에는 문제가 없나보다. 올해부터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CP마저 빅5병원을 하나의 형태로 묶으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동안 교수님들이 이를 반대하려고 했지만, 의료의 규격화는 건보공단의 모토 아니던가? 이미 우리병원이 삼성병원과 협조가 잘돼 외래 환자가 많은 것도 파악 했나 보다. 빅데이터(Big data)의 공개 이후로 기본적인 사항은 스마트폰으로 다 검색 가능하니, 지역에서 삼성병원 외과 환자가 제일 많은 우리병원을 택한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가운은 어찌할까요?”

“제가 입던 것을 당분간 입겠습니다.”

자랑스러운 삼성 로고가 들어간 근무복을 보여 주고는 나머지 인계를 위해 진료실을 나갔다.

“이제 내과3원장 대신할 PA만 구하면 되나?”

원격진료 초반에는 2명의 의사가 일하는 형태가 주를 이뤘으나, 진료가 확대되고 우수한 PA들이 PA합법화 이후 시장에 나오게 됐다. 병원의 의사수는 줄지만 원격진료 단말기는 늘어나게 됐고, 그 끝에는 원격지 의사대신에 PA나 간호사들이 전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빅5병원 출신들이 지방으로 내려오는 경우도 많아져 지방 출신 간호사들은 PA를 무척이나 선호하게 됐다.

나는 내과 1과장으로 6개의 내과 분과를 총괄하고 문제가 있으면 상의해주는 일이 주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예전에 내가 보던 환자들도 아직 나를 보러 오지만, 합병증이 생기고 나면 다들 빅5병원 진료를 선호하게 된다. 서울에 한 번 다녀오면 이곳의 조그만 진료실보다도 더 작은 화면 속 의사에 믿음이 가나보다.

“물리치료실 박 실장님이 면담 원하십니다.”

아, 오늘 또 시작이구나. 이종걸&김재윤 법안이 통과된 이후 의료기사의 독립 개원도 가능해졌다. 게다가 의료기사들도 야금야금 의료인의 자리를 노리게 됐는데, 원격진료와 맞닿으면서 시너지 효과가 폭발적이다. 물치실 박 실장은 재활이 전문이라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쪽과 원격진료를 하자고 오늘도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재활환자들을 모아서 개원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의사없이도 단말기 하나만 있으면 개원이 가능하다. 수술 후 재활 치료의 경과 관찰도 의사없이 물치사가 화면보면서 각도 입력하고 동영상 올려가며 관리가 가능하게 된다. 의료가 가지는 의사와 환자의 독점적 지위를 이제는 약사부터 물치사, PA들 까지 다 나눠지게 된 시대인 것이다. 아직은 불법이지만, 한 약국에는 원격 진료기를 두고 거기서 리필 처방전 발행에 열을 올리는 곳도 있다고 한다.

“부원장님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수술이 저희 지역에서 제일 많은 거 아시잖습니까?

“박 실장, 그래도 우린 정형외과 과장이 한 분 뿐이라 서울대까지 원격진료를 감당하기는 힘들어요.”

우리 병원의 정형외과 과장은 아산병원 출신으로 수술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간단한 환자는 본인이 수술하려고 한다. 아산병원 출신이란 타이틀이 한몫을 하겠지만 잘 생기고 스타일도 좋아서 아주머니 팬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적어 원격진료는 소홀해지고 재활환자의 수도 많지 않다.

“그러니 부원장님만 밀어주시면 제가 서울대 측이랑 원격진료를 전담하겠습니다.”

“아니, 박 실장 맡은 환자들도 많지 않은가요?”

“그래서 제가 이번에 제일을 도와줄 친구를 한 명 구했습니다. 물론 무급입니다.”

무급 일리가 있나? 요즘 재활 트레이너 연봉이 얼마인데 아마도 1년 정도 여기서 환자들을 석션한 뒤 바로 개원할 것이다. 이미 부동산 업자와 이야기 중이란 것도 루머가 아닐지도.

“박 실장 그 원격진료기 엄청 비싸. 게다가 서울대병원은 까다로운 거 잘 알면서 그러네요. 다음 원장님과 이야기할 때 내가 꼭 이야기 해줄게요. 박 실장이 사람도 한 명 구했다고요. 무급으로요.”


‘무급’이란 말을 강조해 주었다. 서울대병원의 원격진료를 하려면 그에 맞는 단말기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정기적인 QI 가 필요하다. 물론 원격지의사가 부담해야 한다. 늘 그렇지 않았던가? 처방전 2매 한다고 A4 준 적 없고. 전자 청구하라고 해도 EMR 프로그램 설치 지원 해준 적도 없다. 이번 원격진료도 의사부담에 초기에는 빅5병원이 각각 다른 기구를 선택하게 만든 가운데, 개원의들의 부담이 상당했으나 이제는 경쟁에서 몇 개 기종만이 남아있다. 게다가 가격은 의료용이라고 어찌나 비싸던지.

“알겠습니다. 부원장님.”

“과장님 환자 준비되었습니다.”

직함은 부원장이지만 아직 나이도 많지 않고 해서 외래에서는 과장이라 부르라고 한다.

“안녕하세요, 정우성님.”

이 환자는 요즘 심장도 좋지 않고 해서 24 시간 BP/EKG 를 모니터링하는 환자다. 의료기사의 단독 개원이 가능한 이후 지역에 한 군데 정도 검사만 전담하는 기관이 있다. 소문에는 퇴직한 공단 직원들이 모아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공무원들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하지만 묘하게도 지역별로 한 군데씩만 들어서는 것이 신기하다.


“혈압도 좀 낮고, 심박수도 낮고.”

결과를 이야기하면서 데이터를 삼성병원으로 업로딩시켰다.

“과장님, 연결됐습니다.”

모니터 너머로 정우성 환자의 주치의인 순환기내과 103 교수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화면을 보시고는 지시한다.

“관상동맥 조영술 다시 해야겠습니다. 결과 나오면 다시 연락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환자는 힘없이 대답했다. 예전에는 조영술을 하러 서울까지 올라갔지만 요즘은 지역마다 영상 인터벤션센터가 생겼다. 아마도 원격진료 이후 가장 수혜자는 영상의학과일 것이다. 시CD 구울 일 없이 전송하고, 지방의 환자들이 다 근처에서 영상 검사를 찍고 올라가니 말이다. 물론 이제는 예전처럼 저품질의 영상을 찍을 수는 없다. 빅5병원으로부터 항상 QI 를 받고 통과해야 수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분 검사예약 날짜는?”

“꼭 검사 받아야 합니까? 약 조절해보고 하면 안됩니까? 돈도 없고 말이에요. 요즘 제 아내 고소영이도 입원한 거 아시잖습니까?”

가끔 이런 일이 있다. 원격지 의사가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물론 경제적인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의학적인 결정이라면 갈등이 생긴다.

“삼성병원에서 하자고 하는데.”

“저번에도 과장님이 설득해서 치료방법을 바꿔서 붓기도 잘빠지고 편하지 않았잖습니까?”

“한 번 생각해봅시다.”

의학적인 판단이 상충되면 과연 누구의 의견을 따라야 할 것인가? 가끔 환자들이 질문을 던지면 어려울 때가 많다. 환자를 가까이에서 보는 나의 의견인가? 실력 많은 빅5병원의 원격지 의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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