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편견 없는 사회적 지지 필요하다

조현병은 인종과 지역, 문화적 특성과 무관하게 전세계적으로 인구 100명 당 1명 정도에서 발생하는 흔한 질환이자 사회적인 편견과 부정적인 이미지가 큰 대표적인 정신과 질환이다. 조현병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2008~2010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3년간 진료비만 500억원 이상 늘어 우울증보다 더 큰 증가세를 보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질병 부담 순위에서도 조현병은 장애 원인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비록 재발이 잦고 만성적인 경향을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꾸준히 관리하면 충분히 삶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어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대한조현병학회 15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참석을 위해 방한한 미국 메릴랜드대 William T. Carpenter 교수도 조현병 환자를 위한 사회적 지지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1차예방은 아직 현실적으로 불가능

Carpenter 교수는 조현병 관리의 어려움으로 1차 예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1차 예방은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조치로 주로 환경적 요인에 대해 중재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중재법으로 조현병 발생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임산부 스트레스가 태아에 영향을 미쳐 조현병 위험을 높일 수 있는데 그렇다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임신 기간 동안 스트레스를 줄이는 프로그램을 실시할 순 없다. 만약 실시한다해도 인구 수준에서 비용 대비 효과를 보이는지 여부도 알 수 없다.

더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런던처럼 상대적으로 흐리고 일조량이 적은 도심지역으로 이주했을 때도 조현병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에도 조현병을 예방하자고 인구 이동이나 이주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현병의 또다른 위험 요인인 마리화나 사용을 금지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수천명이 넘는 마리화나 사용자를 중재해야 하는데 정책 수준에서 실현 가능할지 의문스럽다.

Carpenter 교수는 "어느 정도까지 1차 예방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조현병 관련 연구를 예방 정책에 직접 적용시키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연구가 지나치게 걸음마 단계라는 것도 걸림돌이다. 유전자 연구를 통해 조현병에 관련된 여러 인자가 밝혀졌지만 이 유전자가 각각이 단독으로 미치는 영향은 적다. 또 유전적 취약성이 분자 수준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고위험군을 선별하기엔 무리가 있다.

뇌 영상 연구가 발전하면서 뇌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지만 왜 문제가 발생했는지까지는 아직 알 수 없는 단계다. Carpenter 교수는 "뇌 영상 기술을 이용해 연구해보면 실험군과 대조군 사이에 분명히 차이가 존재한다"면서 "그러나 일반인과 소견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집단 연구에서 특징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개인적 차원에서 진단이나 감별에 사용할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조현병, 사망 위험 높고 비용 부담 커

그래서 최근 연구는 조현병을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가족력이 있고 환각과 망상까지는 아니지만 여기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며, 학교 생활과 교우 관계, 몰입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위험군을 찾아내 관리함으로써 전반적인 부담을 줄인다는 목표다.

Carpenter 교수는 "조기 발견을 통한 예방적 접근은 환자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면서 "이같은 조치는 병 자체를 예방하는 측면도 있지만 환자가 황폐해지는 것을 막는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서 조현병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은 재활치료까지 포함했을 때 연간 800억~900억 달러(한화 약 85억~95억원) 가량으로 암 환자 의료비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arpenter 교수는 "암 환자의 치료 기간은 4~5년 가량이지만 조현병 환자는 40~50년으로 10배 가까이 길다"면서 "이들은 장기간 직업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인한 사회적 부담 또한 매우 크다"고 말했다.

조현병 환자의 사망 위험이 다른 사람에 비해 높다는 것도 또다른 부담이 된다. Carpenter 교수는 "조현병 환자는 자살 위험을 제외하더라도 심장마비나 뇌졸중, 당뇨병,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다른 질병 위험이 높아 일반인에 비해 수명이 15~20년 정도 짧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건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향도 높지만 조현병 자체가 다른 내과질환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조현병 환자는 음식물 섭취량이 많은 반면 운동량은 적어 비만하기 쉽고 흡연률이 높으며, 약물 대사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인슐린 저항성에 취약하며 노화가 빨리 진행된다.


어떤 경과라도 치료 효과 있어

Carpenter 교수는 그렇다고 조현병이 절망과 재앙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며 치료를 통해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면서 "조현병의 경과는 매우 다양하지만 치료군과 비치료군을 비교했을 때 어떤 경과에서도 치료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특히 회복이 되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치료 자체가 입원료와 전반적인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효과도 가져다줄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조현병 환자에게서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Carpenter 교수는 "정부는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지지해 사회 부담을 줄이도록 노력해야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연구를 지원해 의료비를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 가족들은 조현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희망을 잃지 않고, 치료 과정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환자가 꾸준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조현병에 대한 무분별한 낙인과 편견을 삼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으로 인한 낙인이 있었던 반면 미국에서는 'Schizophrenia'라는 용어 자체에서 오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없지만 증상으로 인한 행동에서 오는 낙인이 존재한다.

Carpenter 교수는 "폭력적인 사건이 있으면 뉴스에서 조현병과 연관시키고, 영화에서 조현병 환자를 난폭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등 미디어에서 자꾸 폭력성과 연관시키고 있다"면서 "물론 이 환자군에서 약물과 알코올 남용과의 연관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넓게는 폭력성과도 연관지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지나친 편견"이라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환자와 그 가족이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의료진의 생각을 환자에게 잘 전달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했다. Carpenter 교수는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만약 의사가 만성질환처럼 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또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환자가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진다"면서 "따라서 의사는 늘 최신 치료를 접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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