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성분명처방,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등

많은 사람이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로 장관 없이 진행되는 국정감사는 큰 이슈 없이 무난하게 넘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공석인 장관 대신 참석한 이영찬 차관은 의료계가 극렬하게 반대하는 원격의료와 대체조제 활성화 등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국감 시작부터 의료계와 대립각을 세웠다.

이는 앞으로 복지부와 의료계의 지난한 싸움을 예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관심이 모이고 있다.

복지부, 올해 말 원격의료 개정안 국회 제출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이 차관은 "현재 의료인끼리만 허용된 원격의료를 환자와 의사간에도 확대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가 10월 둘째 주 발표를 앞두고 있다 관련자들의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보류했던 원격의료를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원격의료는 오래된 논란으로 정부와 국회는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원격의료를 추진하려하지만 의료계는 부정확한 진료로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정부가 제출 예정인 원격의료 허용안에는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의 만성질환 재진환자에 대한 원격의료 허용과 병원의 예외적 참여를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병원급 의료기관도 원격의료 허용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차관은 "일차의료는 지역사회 건강자원을 연계해 만성질환자에게 '치료-건강' 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범모형을 연말까지 마련해 내년에는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결사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원격의료에 대해 복지부가 다시 개정안을 낼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앞으로 이에 대한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는 성분명 처방?

이 차관은 또 의사와 약사들의 갈등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대체조제 활성화에 대해 서도 언급했다. 보건복지위원회 김명연 의원은 저가약 대체조제가 전체 1%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자 이 차관은 의료계의 생각과 정반대되는 생각을 내놓았다.

이 차관은 "대체조제를 활성화하는 것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성분명 처방으로 가야한다"면서 "우선 대체조제 활성화를 위해 생동성시험을 강화하고 사후통보를 개선하며, 소비자 교육과 홍보를 강화하는 등 활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제네릭 대체조제 활성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 의원은 "저가약 조제시 약가 차액의 30%를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정책에도 불구하고, 저가약 대체조제는 전체 1%에도 못 미친다"면서 "대체조제는 국민은 물론 건보 재정에 있어서도 상당히 좋은 제도다. 이를 활성화 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

한의사들이 CT 등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문제는 의료계의 또 다른 뇌관이다. 그런데 김 의원은 "한의사가 현대적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하는 법원 판결의 모태는 2006년도 판결문 하나"라고 주장하면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금지는) 한의약기술의 과학화와 정보화를 촉진한다는 한의약육성법과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공항검색대에서도 X-ray를 쓰고, 심지어는 가축들의 임신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축산업계에서도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한다"면서 "한의대에서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 나온 한의사들만 이를 못 쓰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조속한 허용을 주문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 차관은 "한의사의 면허 범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례가 있어, 법령을 개정할 수 없었다"면서 "직능간 갈등이 있는 부분은 직능협의체에서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목희 의원 역시 국감 보도자료를 통해 "안전성이 확보된 X-레이와 초음파는 진찰과 의학적 판단을 위해 한의사들이 사용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의협이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덧붙이며 "국민 87%가 한방의료에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찬성한다"며 "CT나 MRI가 아닌 안전성이 확보된 X-레이나 초음파검사기는 한방진찰의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의약육성법이나 진단용 방사선 관련 규칙 등을 개정해 저용량 X-레이와 초음파 검사기의 한의사 사용이 가능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복지부 역할이 아니냐"고 압박했다.

의협 즉각 반대 성명 내고 불쾌함 표현

원격의료 입법 예고 할 것이란 것과 성분명 처방을 바람직한 제도로 생각한다는 이 차관의 국감 발언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의협은 '보건복지부 이영찬 차관의 발언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갖고 있는 비전은 허상일 뿐이며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것은 의료전달체계 전반을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수도권 대형병원의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켜 지방 의료기관의 몰락을 가져오는 등 의료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의협 노환규 회장은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부처들은 원격진료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며 "누구보다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할 복지부가 원격진료를 추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국내 제약사들이 생산하는 복제약의 약값을 국내 제약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높게 책정함으로써 제약사로 하여금 리베이트 영업에 매달리도록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정부다"라며 "전국의 1만개가 넘는 약국에서 처방전과 다른 싼약으로 바꿔 조제를 하고 있는 상황을 초래한 책임도 정부에 있다. 부도덕한 행위를 처벌을 하기는커녕 성분명처방을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 복지부 수장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라고 비판했다.

의협은 성명서를 통해 인내는 끝났다며 이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관치의료, 의사들의 권익과 자존심을 짓밟는 부도덕한 관치의료를 종식시킬 때가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 곧 의사들은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의료체계와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설 것임을 천명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복지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이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활성화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차관이 국감장에서 지른 불을 복지부의 보건의료정책관이 끌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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