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만성질환관리제를 공식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추진의지는 매우 강해 보인다.

만성질환관리제는 스스로의 건강관리가 필수인 만성질환자들에게 환자 교육과 표준 관리지침 및 알림 서비스 등을 제공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보건소를 포함해 개원의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환자의 누적된 질병 정보를 제공해 환자의 건강 상태를 향상시키는 동시, 합병증 발병을 예방하게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가장 큰 기대는 장기적인 의료비 절감이다. 2011년 조사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른 우리나라 주요 만성질환의 유병율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인구의 30.8%가 고혈압을, 10.5%가 당뇨병을 앓고 있다. 또 70세 이상 인구에서는 고혈압 66.6%, 당뇨병 21.5%로 그 유병율이 크게 증가해 노인인구 10명중 7명은 고혈압 또는 당뇨병을 가지고 있다.

주요 질환별 진료비 추이를 살펴봐도 최근 3년사이(2008년→ 2011년) 고혈압 진료비는 20.1%(2조1243억원 →2조5522억원), 당뇨병은 25.1%(1조1412억원 →2011년 1조4281억원), 뇌혈관질환 34.5%(1조2829억원 →1조7250억원), 심장질환 21.5%(7683억원 →9332억원) 등이 증가했다.

2012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서도 주요 만성질환의 진료비는 17조3741억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36.3%를 차지했다. 단일상병기준으로 본태성고혈압 2조2811억원(510만명)으로 가장 많고, 인슐린-비의존성 당뇨병도 1조1311억원(141만명)으로 3번째를 차지했다.

수가협상 시 토요진료 가산을 받는 대신 만관제 참여를 적극 독려키로 했다는 '빅딜설'로 한동안 홍역을 치른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만성질환관리제 도입에 대해 의료계의 혼란이 초래된 것에 사과드린다. 의사 회원의 동의가 있을때까지 의협은 새로운 만성질환관리제 시범 사업 제안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한동안 잠잠했다.

이런 가운데 대한개원내과의사회는 만관제 도입을 찬성하고 나섰다. 개내의 이원표 회장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보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만성질환에 대한 관리”라며 “만성질환의 대표적인 질환이 고혈압·당뇨병같은 내과계 질환인 만큼, 만성질환관리는 내과의사의 책무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반면 일선 내과의사들의 반대 여론도 많다. 결국 총액계약제로 가기 위한 족쇄가 될 것이라는 우려 탓이다. 한 내과 개원의는 “정부는 처음에는 당근을 줄 것처럼 하다가 환자가 늘어나거나 처방이 많아지면 삭감될 수 있는 구조로, 총액계약제로 가기 위한 연장선”이라며 “집행부에선 찬성할지 몰라도 환자가 충분하거나 정부에 대한 기대 자체가 없는 의사들은 절대 반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복지부는 이미 시행에 들어간 만성질환 관리는 놓을 수 없는 큰 흐름으로 보고 있다. 국회에서는 오히려 만성질환 관리로 인한 의료비 상승 대책 마련을 주문하면서 끊임없는 의료계 설득에도 나서고 있다.

일단 내년 예산에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 예산 5억 5000만원을 전격 할당했다. 복지부 성창현 일차의료개선팀장은 최근 열린 만성질환 관리포럼에서 "국정과제 차원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포함된 건강플랫폼 시범모형을 공개하고 시범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도시와 농어촌 4개 지역과 연계해 일차의료기관이 영양·운동·금연 등 다양한 전문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의사의 판단에 의해 만성질환자 건강생활서비스를 연계하며, 환자에 대한 전문상담엔 별도 보상 방안이 검토된다”고 설명했다.

보건소와는 별개로 지역의사회 등이 지원센터를 직접 운영토록 우선권을 부여할 계획이며, 운영에 대해선 의사의 전문성과 지역적 특성 등을 감안해 고도의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성 팀장은 "일차의료에서 만성질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강화한다는 것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지만 쉬운 작업이 아니다"며, 현재는 의료계와 정부의 신뢰 형성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토대로 일차의료 전반에 대한 논의가 시급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또 나왔다.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복지부 이영찬 차관은 “지역사회 건강자원을 연계해 만성질환자에게 '치료-건강' 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범모형을 올 연말까지 마련해 내년에는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등 지자체도 만성질환 관리에 가세했다. 심각한 합병증 위험에 노출돼 있는 고혈압·당뇨병 환자의 건강을 챙기는 ‘시민건강포인트’ 사업을 서울시내 보건소 및 75개 민간의원과 협력, 시작한다고 밝힌 것이다.

‘시민건강포인트’ 사업은 고혈압·당뇨병으로 진단받은 환자가 해당 사업에 참여하는 의원에서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거나 보건소에서 관련 교육을 받으면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사업이다. 1포인트는 1원으로 정산·처리돼 자신이 치료받는 해당 민간의원에서 필수검사료, 예방접종비 등으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참여의원에서의 지속적 치료 시는 물론 보건소와 참여의원에서 함께 실시하는 고혈압·당뇨병 관리프로그램에 참석해 혈압·혈당 조절을 위한 운동, 식습관 개선 등 자가 관리 교육을 받으면 적립 가능하다.

이보다 먼저 만성질환관리를 시작한 경기도는 2009년부터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시범사업 일환으로 추진해 오고 있는 고혈압·당뇨병 등록교육센터의 역할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는 고혈압·당뇨 환자가 적정체중 유지를 위한 체중조절이나 금연에 성공할 경우 최대 5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대구광역시에서 처음 시작했지만 큰 빛을 보지 못하다가 경기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경쟁적으로 다른 지자체로 확대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만성질환 관리를 통한 각종 질환 예방과 의료비 절감이 최대 화두 중 하나”라며 “보건소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거나 정부의 관리체계에 놓일 것이라는 이유로 의사들의 반대가 심하지만,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오히려 시장을 선점해 새롭게 해볼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일선 개원의들은 "정부의 시범사업을 적극적으로 따라가거나 이득을 노리는 일부 의원들로 인해 일관성있는 반대 여론이 무너질 수 있고, 자칫 보건소나 대형병원에 만성질환 관리를 내줄 수도 있다"며 "당장 눈 앞의 이익을 좇지 않기보단 일선 개원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제도 시행이 가능하도록 합심해야 할 때"라며 복지부와의 지속적인 갈등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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