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미리보기 #1]

원격의료 시행이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 정부의 입법예고 발표가 나왔다. 과연 의료계에서 예상하는 원격의료의 미래와 이에 대한 폐단은 무엇일까. 남궁병원 정형외과 백상훈 과장<사진>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직접 쓴 원격의료
가상소설 몇 편을 소개한다. (특정 병원명은 사실과 관계없는 소설일 뿐이며,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빅5병원만 찾는 환자들...원격진료 의사 "내 환자가 없다“

원격의료가 시행된지 5년이 됐다. 아침에 출근해서 외래를 열면 수많은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정작 내가보는 환자는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제일 많은 환자가 빅5 병원 환자들이다. 원격지 의사와 진료지 의사가 시간이 맞는 환자들만 예약을 받지만 쉽지가 않다. 아침부터 접수 직원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내가 서울대 내분비 내과 153 교수와 9시15분에 예약이 되어있는데 진료를 왜 못보는 거야?”
“저희 원장님이 그 시간에는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104 교수와 진료가 예약돼 있는 환자를 봐야해서요 서울대 측과 시간을 맞춰드리겠습니다.”
“아, 나 바쁜데. 빨리 알아봐줘요.”
환자들의 일정이 바뀌는 경우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스마트폰으로 원격지 의사와 시간을 선택하면 가능한 진료지 의사를 매칭해주는 프로그램이 나왔지만, 널리 보급되지 않아 전화로 처리하다보면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진료실에 환자가 들어왔다. 전형적인 당뇨병, 고혈압 환자로 만성질환관리제 실시 이후 보건소에서 혈압, 혈당을 측정하면 진료비의 50%를 할인해주게 되어 비교적 최근 추이를 알 수 있다. 물론 자료는 자동으로 원격지 서울대병원 내분비 127 교수에게 전달이 된다. 혈당 조절이 되지 않는 것 같아 환자에게 설명을 하려하지만, 환자는 원격지의 서울대 교수의 얼굴만 초롱초롱 바라보고 있다.

“혈당조절이 조금 안되는 군요. 이런 경우 Critical Pathway 당뇨 13-3 항에 따라 관리하셔야 합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
“아, 교수님. 제가 발이 좀 상처가 나서요”
환자는 진찰용 카메라에 발을 올린다. 교수는 모니터를 바라본다.
“당뇨발 Critical Pathway 12-2 항에 따라 치료하시면 되겠습니다.”
내 모니터에는 치료창에 “Critical Pathway당뇨 13-3 항 “, “Critical Pathway 당뇨발 12-2항” 의 내용이 뜬다.
“환자분 교수님의 처방에 따라...”
그제서야 환자는 나를 바라본다.
“운동치료를 늘리셔야하고 드시는 당뇨약을 바꿔드리겠습니다. “
“예.”
“발은 소독을 매일 받으셔야 하니 꼭 나오시구요. 이 연고를 바르세요. 자 처치실로 갑시다.”
상처를 보자 생각보다 깊고 냄새도 심했다.
“환자분 발의 상처가 깊어서 정형외과 진료를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내가 말을 꺼냈지만, 환자는 듣고 싶지 않아 한다.
“서울대 교수가 치료하라는데로 해요. 당신이 뭘 안다고.”
울컥한 마음에 설명 하려 했지만 그냥 말았다. 결정적인 실수만 없다면 진료의 책임은 원격지 의사가 지고 수가도 60%를 받아가기에 간단하게 차팅에 남겼다. 다음 진료에 참고하고 아무 말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는 내과 전문의이지만 원격의료 시행 이후 각종 환자들을 다 봐야 했다. 다른 병원으로 보내면 그만큼 수입이 줄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당뇨발 환자도 정형외과로 보낼 것이 아니라, 외래 비는 시간을 이용해 빅5 병원 중 당뇨발 전문 정형외과 교수를 의뢰해서 진료를 봐야 한다. 당연히 환자도 더 만족하므로. 내가 손짓으로 외래 보조에게 신호를 보냈다.

“환자분 10분뒤에 삼성서울병원 당뇨발 정형외과 교수님 예약 가능한데요.”
“그래요? 삼성병원이니 진료를 한번보죠. 교수님 번호가?”
“97번요”
“100번대 안쪽이군. 좋습니다.”
간단한 소독 후 진료실 밖으로 환자를 내보냈다. 지금의 빅5병원들은 세부 전문의의 외래 교수 수가 100단위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나마 신환의 경우 100단위 안쪽으로 예약되는 경우는 천운이라 할수 있다.
다음 환자는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f/u 환자다.
“환자분 좀 어떠세요?”
집도한 교수의 제3 수술보조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수술하고 14일째인데 힘들어요”
“청진기 좀 대주세요”
이 말 한마디에 나는 단말기에 연결된 청진기를 환자에게 갖다 댄다. Critical pathway 폐수술후 환자관리 9-6 지침에 따라 순서대로 폐의 청진을 실시해 주었다.
“가슴 사진찍으셔야 겠는데요”
“별일 아니겠죠?”
환자는 걱정된 목소리로 물어본다.
“일단 사진 보고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교수는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환자는 불안한 듯 나를 보지만 난 전공이 흉부외과가 아닌 관계로 일단 가볍게 응대했다.
“폐소리가 문제가 있나 봅니다. 사진 찍으시죠”
포괄 수가제 이후 7일 이상 입원이 불가해 쫒기듯 내려온 것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어깨가 축 쳐져서 나가신다. 길 건너 영상의학과에서 촬영을 하시고 오실거다. 영상사진은 물론 아산병원으로 자동 전송된다.

“과장님 삼성병원 연락이 되었습니다.”
보조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그 당뇨발 환자의 원격지의사로 부터의 연락인가보다.
“선생님 왜 사진을 안찍으셨나요?”
모니터 너머로 나를 꾸짖는 젊은 의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물론 어투는 담담하지만 속이 상한다. 환자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듯 하다.
사실 서울대병원 CP 에서는 X-ray 언급이 없었고 내가 보기에 심한 것 같아 연결했지만, 삼성병원 CP 는 X-ray가 일정하게 들어가 있었나보다.
“골수까지 염증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술준비하고 X-ray 찍어 주세요”
원격지 의사로부터 간단한 설명과 함께 수술 동의서가 출력됐다. 나는 동의서를 환자에게 설명하고 사인하게 했다. 혈액검사도 의뢰했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혈액검사도 결과가 공유돼 국민건강관리공단에서 빅데이터로 관리한다. 따라서 여기서 검사해도 삼성병원에가서 다시 검사할 필요가 없다.

“서울대병원보다 삼성병원이 더 좋은가봐. 수술이 늦었으면 발가락을 잃을 뻔 했네.”
환자의 발가락을 구한 건 나지만, 환자는 그런 생각은 전혀 않는 것 같다.
“수술 잘 받고 오세요.”
원격진료 이후 빅5 병원의 수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또한 유명 서울 척추 관절 전문병원의 수술 건수도 예전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정형외과 친구의 말을 빌면, 이제 거의 모든 환자들이 서울로 간다고 한다. 혈관이 손상된 응급환자만 아니라면 보호자와 환자들이 서울의 큰병원의 수술을 받고 싶어한단다.

서울 의료진과 이야기하고 나면 너나 할 것 없이 그곳으로 가서 수술받으려고 하면서 수술 스케쥴이 가득 찼다고 한다. 예전에는 담당의가 환자의 수술 여부를 결정하고 환자-의사 관계로 비수술부터 수술까지 결정해 줬다면, 이제는 서울의 빅5병원과 수술전문병원 의료진들의 말 한마디면 바로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간단다. 수술 결정에 의견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정작 친구의 의견보다는 서울에 있는 의료진의 의견을 쫒아 수술 하기가 일쑤란다.

환자가 지방에서 수술을 원한다 해도 서울가서 상담 받으면 그날 수술하고 일주일 뒤 내려와 수술 후 관리만 하는게 요즘의 지방 정형외과 병원의 주 업무다. 예전 전공의 때 처럼 수술후 관리만 하면서 아예 입원실을 없앨까도 고민이라고 한다. 이미 수술실은 없앤지 오래다.

다음 환자는 아직 빅5로 의뢰되지 않은 신환이었다. 물론 진료비의 100%를 내가 받게 되겠지만, 내 환자가 될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혈압이 조절이 안되어서 혈압약을 드셔야겠는데요. “
“아 그런가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예 서울대 CP 와 삼성병원 CP, 그리고 심평원 CP 가 있습니다. “
“예? 선생님이 진료하시는 것 아닌가요?”
어라? 이런 예전 스타일의 환자가 아직도 있었나? 의아했다.
“예전에는 직접 진료 하지 않으셨나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그랬었는데 언제 부터인가 독자성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직접 하구요. 환자분들이 원하면 원격진료도 가능합니다. “
“전 담당의사님이랑 직접 이야기하면서 대면진료를 하기 원합니다.”
정말 반가운 환자였다. 내가 전문의로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 오랜만에 만나는 그런 환자.
“과장님 시간이..”
보조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격진료는 쌍방간의 약속이라 절대로 시간을 지켜야 했다. 아쉬워 하는 환자를 내보내며 말했다.
“5분뒤에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가지 말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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