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성심병원 정기석 교수



학계는 COPD 관리의 질 제고를 위해 부단히 매진해 왔다.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가 지난 2012년 발표한 COPD 진료지침 개정판은 그 결실 중 하나. COPD 유관 학회와 대한개원내과의사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전방위적으로 참여해 임상현장에서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업데이트된 COPD의 진단 및 치료 권고안을 내놓았다.

당시 학회는 “가이드라인이 진료하는 모든 의사를 대상으로 만들어졌고, 일선 진료에 널리 이용될 때만 그 가치를 발할 수 있다”며 임상현장의 적극적인 활용을 당부하는 등 기대와 열의를 표했다. 하지만, 최근 일선 임상현장에서는 COPD의 진단에서부터 제대로 된 진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폐기능 검사 없이는 COPD의 진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최근의 컨센서스인데, 호흡기 증상 환자들을 1차적으로 접하게 되는 개원가에서 이 진단검사법이 적극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진료지침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림의대 정기석 교수(한림대성심병원장, 호흡기알레르기내과)는 “새로운 진료지침을 통해 COPD의 진단에 관한 답이 제시돼 있는데, 개원가 현장은 이 답을 제대로 쓸 수 없는 환경”이라며 “1차 의료기관에서 폐기능 검사를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진료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COPD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초기단계의 환자들을 명확하게 진단해내 조기치료가 이뤼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바로 이 부분에서 1차 의료기관 임상의들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 높은 유병률과 사망률, 사회·경제적 부담까지 COPD의 심각성에 비해 관리가 여전히 미진한 이유는?
“학계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제 의료계와 보건당국 모두 COPD와 이로 인한 폐해의 심각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진단이다. 1차 의료기관에서 폐기능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미한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우선적으로 찾게 되는 개원가에서 의료환경 상의 문제로 폐기능 검사를 시행하기가 여의치 않다. 때문에 COPD 고위험군 또는 이환 환자들을 조기에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COPD 환자들이 중증 천식으로 뒤바뀌는 등 잘못된 진단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

- 이로 인해 어떤 문제가 파생되나?
일선 진료현장에서 명확한 진단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상당수의 환자들이 치료의 기회를 잃거나 부적절한 치료를 받게된다. 이렇게 방치된 환자들은 폐기능 손상이 비가역적으로 상당히 진행된 후, 즉 호흡곤란 등 증상이 심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고 악화와 사망위험이 높은 상태에서 2·3차 의료기관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등증 이상의 환자가 늘게 되는 것이다. COPD 의료비용의 대부분이 중증 환자들에게 소진되면서 질병부담을 늘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진단의 문제가 환자의 삶의 질과 사망위험에 이어 궁극적으로는 사회·경제적 부담의 증가와 연계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폐기능 검사를 제때, 제대로 하지 못해 적합한 치료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 COPD 진단에서 폐기능 검사의 역할은 어느 정도인가?
천식과 달리 COPD는 폐기능 검사 없이는 진단할 수 없다. 천식의 경우는 폐기능이 좋거나 안좋을 수도 있다. 반면 COPD는 폐기능 손상에 의한 기류제한이 확인돼야 비로소 진단을 내릴 수 있다. 폐기능 검사 결과, 일정 수준 이상 정상이면 COPD가 아니다. 폐기능 검사 소견이 없으면 COPD 진단명을 붙이기가 어렵다. 그런데 개원가에는 폐기능 검사 기계가 없는 곳이 많다. 있다 해도 적절히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임상병리사가 폐기능 검사를 시행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이 부분에 개원의들이 부담을 호소한다.

- 학회 차원의 대책은?
COPD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지침이 개발·보급돼 있으나, 이를 임상에 적용할 수가 없는 상태다. 임상현장의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학회의 일관된 입장이다. 따라서 1차 의료기관에서도 폐기능 검사를 쉽게 시행할 수 있도록,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와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차원에서 폐기능 검사 교육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이를 이수한 병·의원 직원에게 자격증(인증, 이수증)을 부여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폐기능 검사를 쉽고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본다.

- 기대효과는?
이 계획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활성화된다면, COPD 진단율을 지금보다 2배 정도는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숨어 있는 COPD 환자들을 양지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병·의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COPD 환자들을 전체 인구의 8%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심평원 코드 상 COPD로 등록돼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반의 반도 안된다. 이를 절반 수준까지는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천식 등 다른 질환으로 잘못 진단되거나 아예 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 즉 숨어 있는 환자들이 가장 큰 문제인데 이들이 밖으로 드러나면 조기의 적절한 치료를 통해 궁극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광범위한 개선책으로 40세나 65세 등 생애 전환기의 건강검진에 폐기능 검사를 포함시키는 방안에도 학계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폐기능 검사도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검사와 같이 질환 위험군에게 통상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 조기진단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인가?
COPD는 진행성 질환이다. 일단 폐기능이 손상되면, 이를 회복시키기가 어렵고 계속 악화가 진행된다. 현재의 의학수준으로는 COPD라는 질병 자체를 근절할 수는 없지만, 급격한 폐기능 손상의 정도와 속도를 완화할 수는 있다. 질병의 진행을 완화시켜 COPD로 인한 사망위험을 줄일 수 있다. 위험성과 이환을 조기에 진단할 수만 있다면 예방과 관리도 가능하다. COPD의 경우 학회 가이드라인 상 ‘다군’, 즉 중증 환자에게 의료비용의 대부분이 소요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가·나군’인 초기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예후 뿐 아니라 비용부담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은?
대부분의 COPD 환자들이 2·3차 의료기관을 찾는 시점에는 이미 폐기능 손상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다. 1차 의료기관을 방문한 환자들 가운데 경미한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 폐기능 검사를 통해 COPD를 확진하고 조기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COPD의 위험인자는 40세 이상 연령대에 흡연력, 기침, 가래, 호흡곤란 등이다. 이러한 소견을 보이는 고위험군들을 대상으로 폐기능 검사를 진행하면 된다. 이러한 환자들에 관심을 갖고 진료가 이뤄져야 한다. 조기진단과 치료의 측면에서 1차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 2012년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COPD 진료지침의 특징은?
한국인의 특성에 맞춘 한국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기본적인 틀은 GOLD 가이드라인을 따랐지만, 한국인의 폐기능 특성이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들을 권고안에 반영했다. 우선, GOLD의 A·B·C·D 식 환자 분류를 가·다·다 군으로 보다 간략하고 통합적으로 구분해 이에 근거한 약물치료 전략을 제시했다. 개원가에서 적용하기가 한결 수월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치료약제 중 세레타이드는 한국, 일본, 미국, 캐나다에서 250㎍만 허가돼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대다수 외국 자료인 500㎍보다는 저용량 데이터가 더 소중하다. 한국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FEV1 65% 미만의 환자에서 세레타이드 250㎍의 효과를 검증한 SUPER (Respiratory Medicine 2012;106:382-389, 제1저자 정기석 교수, 교신저자 유지홍 경희의대 교수·이상도 울산의대 교수) 연구에 근거해, ICS + LABA 제제의 사용 기준을 FEV1 < 60% 대로 적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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