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들의 생존을 내건 '시간전쟁'과 '영토전쟁'이 한바탕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늘려온 병상수에 비해 환자수가 감소하면서 실제로 수익도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3년 1분기 진료비통계지표에 따르면, 요양급여비용은 11조 9610억원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1.6% 감소했다. 특히 종합병원 전체의 환자는 전년 동분기 대비 -3.5% 감소했으며, 의원도 전년 동분기 대비 -6%의 감소를 보였다. 병원급은 성장세로 견인했지만, 이마저도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다.

우선 다급해진 곳은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비급여 폐지 논란의 중심에 선 상급종합병원이다. 이들은 현재 '비용 절감'을 가장 큰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한 대학병원은 한창 더울 때인 오후시간에 연구실의 냉방을 가동하지 않는다. 다른 병원은 환자 대기공간을 비롯해 모든 공간에 적정온도를 26도로 상향하면서 곳곳에서 덥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중앙대병원은 전 교직원을 대상으로 넥타이를 매지 않는 '유연복장제'를 실시해 에너지 절약 실천에 동참하고 있다. ▲전력피크 관리제어기 설치 ▲LED 조명설비 교체 ▲조명 자동제어시스템 설치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대목동병원도 에너지 절감 캠페인을 통해 10% 정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비용 절감은 물론 아예 신규 투자 전면 금지를 선언할 정도다.

비용절감 다음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시간전쟁’이다. 진료수가가 제한돼 있는 만큼 박리다매를 위해 병상수를 늘리는 것이 그동안 상급종합병원들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경기가 불확실하고 건축비 부담조차 어려워 더 이상 규모를 늘리지 못하자 취할 수 있는 전략이 바로 시간 연장인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병원회에서는 '24시간 가동하는 병원'이 미래 병원의 경쟁력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중앙대병원과 건국대병원은 환자 진료편의를 위해 일부 진료과의 진료시작 시간을 30분 앞당겨 실시하고 있다. 직장에 나가느라 바쁜 환자들이 출근 전 일찌감치 병원을 방문했다 출근하라는 취지다.

아예 저녁진료도 나왔다. 분당차여성병원은 이용이 불편한 직장인 환자 편의를 위해 저녁 7시 30분까지 산부인과 저녁 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물론 시간 연장에 대한 불만도 많다. 해당병원 교수는 "워낙 환자가 많아 진료시간이 지연돼왔는데, 예약인원이 더 늘어 심지어 밥 먹을 시간조차 없다"고 호소했다. 그만큼 다른 시간은 빼줘야 하지만 병원이 어려우니 같이 동참하자는 이야기가 전부라는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토요진료까지 나오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이 환자 편의와 경영타개를 내세워 토요진료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인근 병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증 질환이 아닌 중증, 수술 환자 대상이라고 하지만 다른 병원들도 이에 질세라 토요진료를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도 일부 진료과에서 공공연하게 토요진료를 확대하고 있지만 알리지 않아왔다"며 "병원들의 경영난은 사실상 상급종합병원들의 주6일제 선언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이미 토요진료를 실시한 경희의료원이 20~30% 환자가 늘어난 성과를 보였다는 발표도 긍정적인 검토 이유가 되고 있다.

‘영토전쟁’도 한창이다. 인천에 있는 한 대학병원은 자체적으로 환자데이터 분석 결과 충청권에서 서해대교를 통해 많은 환자가 유입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집중적으로 충청권에 광고를 집행하기로 했다. 해당 협력병의원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지역과의 관계를 넓힐 전략을 세웠다.

이 병원 관계자는 "전국적인 병원 인지도를 높이면서 아무래도 지역보다 더욱 수준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세종시에는 충남대병원 세종의원과 서울대병원 운영세종시립의원이 전쟁 중이다. 특히 서울대병원은 본원과의 의료시스템을 연계한다는 방침을 내세우면서 지역 병원들이 환자를 서울로 더 데려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브랜드 파워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의 한 병원은 아예 전국 네트워크시스템을 구상 중이다. 1,2차 병원과의 효율적인 전달체계 구축을 위한 미국의 여타 네트워크와는 달리, 강력한 브랜드를 무장해 확대해나간다는 것이다.

해당병원 관계자는 "기존 단순한 협력병의원 관계가 아닌 출신 의대 또는 병원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얻고 싶어하는 의료진을 모으다 보면 충분히 1,2차 의료기관과 네트워크를 이룰 수 있다"고 소개했다.

여기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바로 중소병원과 의원이다. 3차병원에서 연쇄적으로 환자를 끌어가면서 결국 환자들이 도미노 상태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에 대한 대안 마련을 위해 상급종합병원협의회가 전략적인 움직임을 예고하면서, 개원의들과 함께 '저수가 구조 개선'이라는 공동의 목소리보다는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대안 마련을 먼저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 중소병원장은 "아예 대형화되거나 차별화된 전략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중소병원과 의원은 무기력한 수준이 될 것"이라며 "저수가의 한계국면에서 자본력이 취약한 병의원들이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개원의는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차액은 그간 상급종합병원의 이익 창출 수단이었다. 정부가 이에 대해 파격적인 폐지를 단행하면 대형병원들도 어려워지게 된다"며 "의료계가 하나가 되어 저수가라는 지금의 구조 자체를 직시하고 개선하도록 주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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