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치료 선택 아닌 필수...혼재된 유병 특성으로 한 가지 전략 고집 어려워


현재 한국인의 주요 만성질환 유병특성 또는 병태생리는 서양인과 차별화되는 동시에 이들을 따라가는 동질화의 패턴이 함께 엉켜 있는 양상이다. 오랜 기간 우리나라는 독특한 지역적 생활환경 속에서 반복·누적된 유전적 선택을 받아왔다. 서양과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유병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식생활 습관의 서구화로 인해 질환의 병태생리까지 점차 서구인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것 또한 목도되고 있다. 한국인만의 독특함과 서구화된 유병패턴이 혼재돼 있어, 질환 치료시에 두 가지 흐름 모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

대표적인 예가 당뇨병이다. 전통적인 인슐린 분비부족 패턴과 최근 들어 늘고 있는 인슐린 저항성의 병태생리를 비롯해 비비만형과 비만형 당뇨병이 뒤엉키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친 하나의 전략만을 일관되게 고집하기가 어려워졌다.

비만인 성인은 인슐린 민감도가 떨어져 저항성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과로한 췌장의 베타세포 기능(인슐린 분비능)까지 파괴되면 고혈당이 지속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제2형당뇨병의 기전이다. 당뇨병이라는 것이 인슐린 민감도와 분비능의 상호관계 속에서 파악돼야 하지만, 서구의 경우 인슐린 저항성이 원인 제공자가 되는 비만형 당뇨병이 90% 이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비만과 당뇨병의 상관관계가 유병특성을 명백히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환자들은 서구 기준으로 볼때 터무니 없이 마른 체형에서도 당뇨병이 상당수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돼 왔다. 전통적으로 비비만형 당뇨병이 서양과 비교해 월등히 많다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낮은 인슐린 분비능이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현재의 한국인 당뇨병 환자들은 이들 인자 가운데 어느 한 쪽도 무시하기 힘든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혼재된 유병특성과 병태생리 속에서 한국형 당뇨병의 맞춤치료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전략이 되고 말았다.



전통적 농경사회의 인슐린 분비능
우리나라 환자들은 서구의 기준으로 볼때 마른 체형에서도 당뇨병이 상당수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돼 왔다. 비비만형 당뇨병이 서양인에 비해 많다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낮은 인슐린 분비능이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1992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진료받은 당뇨병 환자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제2형당뇨병 가운데 비만이 아닌 경우가 68.5%로 비만형(22.6%)을 크게 앞서고 있다. 격차가 좁혀지고는 있으나, 2000년 이후의 국민건강영양조사 등 대규모 역학조사에서도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이 같은 당뇨병 특성의 원인을 학계는 전통적인 환경에서 찾고 있다. 독특한 지역적 생활환경 속에서 반복·누적된 유전적 선택을 받아 온 결과라는 것. 서양인은 육류 중심의 생활습관으로 당대사의 요구가 증대되고, 이 과정에서 인슐린 민감도 또는 저항성의 문제가 야기되는 환경에 오랜 기간 노출돼 왔다.

인슐린 저항성이 발생할 경우, 신체는 이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췌장의 베타세포가 더 많은 인슐린을 분비하게 된다. 이 같은 식생활습관과 신체의 반응기전이 수천년간 누적돼 오는 과정에서 활발한 인슐린 분비능이 강력히 요구돼 왔다.

반면, 아시아 지역은 수천년 동안 농경사회가 지속되면서 식습관 등에 있어 베타세포의 활동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 왔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아시아인의 전통적인 식생활습관으로 인해 인슐린 저항성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인슐린 분비능 개선에 대한 요구가 상대적으로 미미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서양인은 인슐린 저항성의 잠재적 가능성을 담보하는 생활습관으로 인해 베타세포의 기능이 상당히 활발해진 것에 반해, 아시아인은 췌장 기능과 함께 베타세포의 양·질적인 측면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같은 환경적 요인의 결과가 수천년간 유전적으로 선택되는 적자생존의 과정에서 아시아인의 당뇨병 유병특성으로 고착돼 왔다.

서구화에 따른 인슐린 저항성의 증가
하지만 최근 들어 당뇨병 유병특성에 변화가 관찰되고 있다. 지난해 대한당뇨병학회가 발표한 ‘Diabetes Fact Sheet in Korea 2012’에 따르면,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의 74.7%가 과다체중(BMI 23~25kg/㎡) 또는 비만(BMI 25kg/㎡ 이상)이었으며 평균 BMI는 25kg/㎡에 달했다. 비만으로만 따져도 전체 환자의 절반에 이른다.

또 가톨릭의대 김성래 교수(부천성모병원 내분비내과)가 전국 1차의료 클리닉에서 약물치료 경험의 제2형당뇨병 환자들을 분석한 결과, 신규로 당뇨병을 진단받은 환자들 가운데 인슐린 저항성(HOMA-IR > 2.5)과 인슐린 결핍(C-peptide <1.1ng/mL)의 빈도는 59.5%(782명) 대 3.3%(43명)로 큰 차이를 보였다. 여기에 전체 환자들 중 49.8%(665명)가 비만을, 70.6%(928명)는 대사증후군을 동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성래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인 당뇨병 환자들이 과거 서양에 비해 인슐린 분비능 자체가 떨어지던 것에서 비만 등의 영향으로 인슐린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서구형 특성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대사증후군 동반 ↑…심혈관 합병증 위험↑
심혈관질환 위험인자로 간주되는 대사이상이 대다수 당뇨병 환자에서 동반되는 것도 최근 발견되는 한국인 당뇨병의 특징이다.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는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의 75%가 대사증후군을 동반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비만과 인슐린 저항성으로 인한 당뇨병 발생 비율이 그 만큼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이 경우 심혈관질환 위험도가 곱절로 높아져 더 깊은 주의가 요구된다.




현재의 한국인 당뇨병 유병특성을 종합해 보면 병인론적 측면에서 인슐린 분비부족과 인슐린 저항성의 비중에 큰 차이가 없고 비비만형과 비만형 당뇨병이 공존하고 있는 양상이다. 대체적으로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인슐린 분비부족에 의한 당뇨병 발생이 다수를 차지하던 과거에서, 이제는 비만 등으로 인한 인슐린 기능부전(인슐린 저항성)이 늘어나면서 당뇨병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근본적으로 인슐린 분비능이 떨어져 있는 아시아인들이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식생활 습관의 서구화로 인해 인슐린 저항성의 공격에 노출되는 빈도가 늘면서 당뇨병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인슐린 저항성에서 당뇨병으로 가는 길
인슐린 분비능이 떨어지는 상태에서는 조금이라도 인슐린 저항성이 있을 경우 당뇨병 발생위험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만과 인슐린 저항성으로 인한 당뇨병 발생의 기전을 따라가 봐야 한다. 비만, 특히 복부비만(내장비만)은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하고, 베타세포 기능을 저하시킨다. 인슐린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저항성이 오면 인체는 고혈당을 보상 또는 극복하기 위해 인슐린 분비를 정상보다 늘리게 되고, 이로 인해 고인슐린혈증이 나타난다.

인슐린은 비만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고인슐린혈증으로 인해 비만이 악화되고 연이어 인슐린 저항성은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진행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결국 베타세포 기능이 방전돼 고혈당 상태를 극복(보상)하지 못하고 체내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 당뇨병으로 이환된다.

비만 - 인슐린 저항성 - 고인슐린혈증 - 베타세포 기능부전 - 당뇨병의 연결고리인데, 여기에 최종적으로 심혈관 합병증으로 인한 장애나 사망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저항성에 더 취약한 한국인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인슐린 저항성과 인슐린 분비능이 상호 균형을 이루는 상태가 깨지면 당뇨병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인슐린 저항성이 오면 이를 보상하는 인슐린 분비능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 지는데, 유전적으로 베타세포의 능력이 서양인에 비해 떨어지는 한국인이 저항성에 취약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주의대 김대중 교수(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는 이에 대해 “베타세포 능력으로 보면 서양인이 세 발을 뛸 때 한국인은 한 발 밖에 못뛰는 양상”이라며 “인슐린 저항성에 의한 고혈당에 대해 베타세포가 제대로 보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의 저항성만 있어도 당뇨병 발생위험이 급격히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당뇨병 전단계부터 대비해야
때문에 학계는 비만이나 대사증후군 등이 있는 환자들에게 내당능장애(IGT)나 공복혈당장애(IFG)가 발현되는 당뇨병 전단계에서부터 적극적인 고혈당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비만과 인슐린 저항성에 의해 시작되는 당뇨병 쇠사슬의 고리에 일단 묶이면 벗어나기가 힘든 만큼, 초기에 신속하게 병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들이 당뇨병 전단계에서 질환 이환 예방을 위한 전략으로 메트포르민과 같은 약물요법을 권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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