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으로 인한 직접적인 비용은 약 2000억원 이상이며, 사회경제적 비용까지 합산했을 땐 1조원에 달한다는 예측이 나왔다.

대한뇌전증학회는 역학위원회에서 2007년 자료를 조사해 발표한 결과 우리나라 뇌전증 관련 비용이 약 2000억원인 것으로 나왔다고 16일 밝혔다.

역학위원회 정기영 위원장(고려의대 교수·고대안암병원 신경과)은 "이는 2007년 당시를 기준으로 추산한 것이고, 보호자 간병비 등 비간접경비는 실제로 추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휠씬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뇌전증 환자가 2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매년 20만명씩 신규환자가 보고되고 있다. 이에 뇌전증으로 인한 직·간접적 사회적 비용은 미국 내에서만 12조5000만원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우리나라 뇌전증 환자는 약 30만~40만으로 추정되며, 매년 약 2만명씩 신규환자가 발생, 그 가족을 포함해 사회적으로 80만~100만명이 뇌전증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회 이병인 명예회장(연세의대 교수·세브란스병원 신경과)은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우리나라 환자 수는 미국의 약 15%정도며, 개인의 수입은 약 절반 수준이기 때문에 미국의 약 1/12 정도에 해당하는 최소 1조원 이상의 직·간접적 사회적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발표된 역학적 연구에 따르면 뇌전증 환자 중 상당수가 우울증, 불안증 등의 정신과적 질환과 뇌졸중이나 치매, 편두통 등의 여러 가지 신체적 질환을 흔히 동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사망률도 정상인에 비해 약 2배 정도 높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뇌전증의 진료에 대한 경각심이 증가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러한 동반질환들이 있는 경우에는 사회적 직간접비용이 더 증가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난치성 소아뇌전증은 성인뇌전증으로 이행되며, 뇌전증으로 인한 정신지체의 사회적 비용도 유발된다. 따라서 치료법 개발시 상당한 사회적 비용 감소를 기대할 수 있다.

김흥동 회장(연세의대 교수·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과)은 "뇌전증환자에 대한 사회경제적 비용 산출이 쉽지는 않지만 뇌전증환자가 잘 치료받는다면 일반인과 동일하거나 더 좋은 사회경제적비용을 낼 수 있다"며 "실제 포드자동차에서 뇌전증환자와 비뇌전증환자를 비교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뇌전증환자의 생산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 "중증 뇌전증환자는 다른 장애에 비해 지원이 적은 것이 사실"이라며 "특히 소아뇌전증환자가 상당히 많은데 소아관련 질환 중 유일하게 소외받고 있어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더욱 큰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잘못된 사회 인식부터 바꿔야

'뇌전증'은 비정상적인 신경세포로부터 일시적으로 전류가 형성돼 대뇌의 기능을 잠시 혼란시키는 병으로 누구나 걸릴 수 있다. 평소엔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 뇌 전류가 형성되는 잠깐 동안 뇌 기능의 이상 증세를 보이게 된다. 20초에서 2분 이내 전류가 사라지면 다시 완전 정상인 상태로 회복되는데 이런 전류의 발생은 대부분의 환자에서 수년간 한번도 없거나 1년에 1~2번 나타난다.

증세는 뇌 전류가 형성되고 영향을 미치는 부위에 따라 아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잠깐 동안 정신없이 주위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이때 엉뚱한 행동이나 말을 하기도 한다. 균형을 잡지 못하면 쓰러질 수도 있다.

김 회장은 "뇌전증의 원인은 뇌졸중, 뇌종양, 뇌감염, 두부외상, 뇌의 퇴행성질환 등으로 다양하고, 특별한 원인 없이 특발성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면서 "뇌전증은 특별한 사람에게 생기는 질환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반적인 질환"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다른 질환과 달리 뇌전증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것이 매우 많다. 예를 들어 △뇌전증은 불치병이다 △뇌전증은 유전된다 △뇌전증은 정신질환이다 △뇌전증은 전염될 수 있다 등이다.

뇌전증 치료제는 1990년대 이후 많이 개발돼 전체 환자 중 60%는 약물로 치료가 가능하고, 약이 잘 듣지 않을 땐 수술치료나 뇌량절제술, 미주신경자극 치료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이상암 부회장(울산의대 교수·서울아산병원 신경과)은 "뇌전증은 뇌의 일부가 뇌졸중과 같이 원인에 의해 손상되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질환으로 정신질환도 아니고 유전병도 아니며, 접촉에 의해 전파되는 전염병은 더욱 아니다"며 "그런데 아직도 뇌전증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많은 환자가 사회 생활에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취업할 때나 직장에서의 차별은 환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취업할 때 뇌전증 환자란 사실을 알리면 약 60%는 취업 자체를 거절당하고, 직장에서 증상이 발생해 뇌전증이 알려지면 약 40%가 해고를 당한다.

김흥동 회장은 "앞으로 사회 캠페인과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적극적으로 진행해 뇌전증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생기는 사회적 차별을 서둘러 바로 잡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