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료기술평가 복지부→식약처 이관 주장
■ 식약처 "관련업무 주관부처 추진”
■ 복지부 “안전성•유효성 검증 필수”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간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상당하다. 부처간 싸움에 의료계와 유관업계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발단은 지난해 식약청에서 처로 승격되면서 국무총리실 산하로 격상되고, 복지부 영향력을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됐다. 식약처가 개별 정책의 주관부처로 자리잡고자 업무를 다소 강화해 나간 것이다. 반대로 복지부는 어떻게든 식약처에 기존 업무를 내주지 않으면서 입지 굳히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정권 초기니 만큼 더욱 주도권을 쥐려는 식약처와 기존 업무를 빼앗기지 않고 싶어하는 복지부로 압축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신의료기술평가'다. 배후에는 의료기기업계가 있다. 업계는 그간 신의료기술평가와 관련해 끊임없는 민원을 제기했다.

현재 의료기기를 개발하면 허가 신청은 식약처로, 신의료기술평가는 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연구원에서 심사한다. 허가 신청 자체도 오래 소요되지만, 신의료기술평가는 더 오래 걸린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식약처는 업계의 편을 들어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복지부는 요지부동이라는 지적도 제기돼왔다.
 
업계는 "신의료기술 대상 여부를 산정하는데만 보통 3개월이 걸리고, 이후에 평가에 돌입하면 보통 360일, 1년이 소요된다"며 "제품 허가를 받고 신의료기술평가를 받기까지 회사로서는 직원들 월급을 주고 비용도 지불해야 하는데 평가기간이 너무 과도하게 길다"고 호소했다.
 
급기야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차원으로 청와대에 민원을 넣었다. 협회 한 임원은 "의료기기 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를 신속히 하기 위해 신의료기술평가를 보건연에 이원화하기 시작했으나, 두 기관간의 연결고리가 없고 업체 편의를 위한 어떤 보완장치가 없다"며 "허가 체계를 일원화해 접수와 허가, 평가를 최초 담당 부처에서 진행하거나, 부서 간 이견을 조율하는 별도 기구를 마련해 평가를 기다리는 업체의 경제적인 손실을 덜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청와대는 이번 사안에 대해 지정 조사를 주문했고, 청와대 민관합동규제개혁단, 총리실 산하 규제 개혁단의 산업 중점 과제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소정의 성과도 따랐다. 신의료기술 평가기간을 기존 360일에서 250일로 단축하는 방안이 통과된 것이다.
 
그러나 부처간 갈등의 소지가 있다고 결론지어지면서 식약처에 신의료기술평가가 이관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업계는 구체적인 개별업체 피해사례를 모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할 방침이다. 국회, 학계 등에 제출과 함께 허가가 난 제품에 대한 조건부 급여제까지 제안할 예정이다. 동시에 식약처는 의료기기업계를 등에 업고 주력 쟁점 사항 중의 하나로 '신의료기술평가 주관부처'를 추진하기로 정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논리는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료기기를 신성장동력으로 지정하고 그간 업계가 성장할 수 있는 각종 장치를 마련해왔다. 업체들의 민원을 토대로 허가부터 평가까지 일원화한다는 취지"라며 "다만 부처간 알력다툼으로 비춰지진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식약처에 대한 복지부 반응은 상당히 냉랭하다.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복지부 입장에서는 평가위원인 의사들을 통해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충분히 검증하는 것이 최대 과제이며, 그저 업계의 편을 들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평가를 결정하는 기간이 문제라면 제도적으로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의료기술평가 이관에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더 큰 문제는 신의료기술평가 외에도 방사선안전, 의료기기 유통센터 등 복지부와 식약처 간 끊임없는 충돌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식약처와 복지부는 서로가 서로를 두고 '과욕'이라고 비판하고 있을 정도다.
 
피해는 고스란히 업계로 가고 있다. 업계에선 “양 부처의 힘겨루기가 이어진다면 발전은 커녕 눈치보기만 하다가 내리막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부처간 협심해서 잘못된 제도를 면밀히 분석하고 개선하는 데만 주력하길 바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방사선안전·의료기기 유통센터까지...
부처간 다툼에 강화되는 규제...당황하는 업계

복지부는 식약처가 국민안전을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 업계의 편을 들면 자칫 오히려 국민안전을 해친다고 우려했다. 의료기기 허가 당국이 허가도 내고 사용도 쉽도록 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도 혹시 낄 틈이 있을지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신의료기술평가는 새로운 치료기술에 대해 당장의 급여, 비급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 만큼, 큰 파이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기업계 내부에서도 이견이 새어나왔다. 특히 기존 보건연과의 평가 과정을 잘 따르고 있는 업체들은 몹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업체 관계자는 "협회는 식약처 산하기관이기 때문에 식약처의 눈치를 보며 편 들어주는 것"이라며 "의료기기평가 문제에서는 부처간 문제가 아니라 제품 자체로 승부할 수 있어야 한다. 부처 이관이 아니라 기간을 단축하자고 건의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협회는 의료기기 단체를 대표하는 곳이 아니라, 수입사를 대표하는 곳"이라며 "국내 제조사들의 연합인 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은 복지부 산하기관으로 식약처 이관 주장을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힘겨루기가 길어질수록 이같은 불만이 더욱 수면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안이 신의료기술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데 있다. 복지부와 식약처는 이미 '방사선안전'을 놓고 한 차례 줄다리기를 했다. 이 건은 식약처 업무를 복지부가 탐냈다. 결과적으로 복지부 승.

방사선량 관리 업무 일부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질병관리본부로 이관됐다. 식약처 의료제품연구부 방사선안전과는 총 3명의 인원 감축이 있었으며, 이중 1명은 질병관리본부 건강영양조사과로 옮겨졌다. 복지부는 의료법 산하에 방사선량을 일부 둬야 향후 의료기관을 규제할 수 있으며, 식약처는 의료법 관할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내세웠다.
 
또하나 부딪히는 것은 복지부 산하기관인 심평원에 설치된 '의료기기유통센터'다. 업계는 센터를 식약처로 이관할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의료기기 허가부터 유통까지 아예 원스톱 서비스하는 부처로 만들자는 것이다. 식약처로서도 내년 인력이나 예산 할당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필수요건으로 보고 있다. 복지부는 현재 잘하고 있는 일을 옮기는 것은 얼토당토않다고 단언했지만, 식약처의 끝없는 야욕과 물밑작업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와 복지부의 알력다툼에 의료기기업계는 물론 의료계도 영향을 받고 있다. '매의 눈'으로 감시와 감독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병원이 환자를 위해 무상으로 만든 질병계산 앱에 대해 식약처가 '의료기기'라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취해왔다. 그간 전례에 없던 일이라 앱을 기획, 개발하는 의료진들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또한 한 업체는 허가를 취득하기 전 소규모 안내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경고공문을 받았다. 대중 대상이나 공식학회가 아니라 평소라면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식약처의 감시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복지부와 식약처가 싸우면서 눈치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중간에 끼어서 곤란하다"며 "부처간 힘겨루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제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부처간 그저 힘겨루기를 하다보면 서로의 감정의 골만 깊어져 결국 대화창구조차 닫힐까 우려된다. 결국 각종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리 만무하다. 부처의 덩치키우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국민과 업계를 위해 올바른 일인지 판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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