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원발성간암 전문가모임(APPLE)

간암은 다른 암종에 비해 치료 방법을 정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때문에 어떤 의사건 폭넓게 다 이해하기 쉽지 않고, 간암 환자가 많지 않은 병원에서는 제한된 경험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다. 같은 아시아 지역이라도 국가별로 중심이 되는 치료법이 달라 이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논의할 자리가 절실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아시아태평양원발성간암전문가모임(APPLE)이다.

APPLE은 2010년 연세의대 한광협 교수(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와 일본 긴키대 Masatoshi Kudo, 중국 푸단대 Sheng-Long Ye 교수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간암 전문가 3명을 주축으로 발족됐다. 제1회 대회는 인천 송도에서, 2회는 일본 오사카, 3회는 중국 상해에서 열렸고, 올해 다시 우리나라에서 4회 대회가 개최된다.

5~7일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리는 네번째 모임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한 교수는 "APPLE은 트레이닝을 위한 발표 공간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 논의를 나누는 자리"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내용만 짧게 발표하고 논의 시간을 길게 가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참석자 상당수가 초청 연자다.

다른 학회와 달리 간암 진료에 관여하는 모든 진료과 의사들이 모인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한 교수는 "간암과 관련된 논의는 간학회, 암학회, 외과학회, 영상의학회 등 여러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학술대회의 주요 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정보를 주고받기 어렵고, 늘 같은 진료과 의사들끼리만 모여 논의의 폭도 좁았다"고 말했다.

덕분에 관련 전문가들의 호응도 높다. 첫 대회에는 300명이 참석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수가 늘어 올해는 사전등록인원만 550명이 넘었다.

매 대회는 특별한 주제로 토론하는 모닝 브렉퍼스트 워크숍을 시작으로 아시아 의사들끼리 합의된 의견을 제출하는 컨센서스 미팅으로 마무리된다. 세션은 병기별로 나눠 시간대에 따라 관심이 비슷한 사람들이 같이 모여 논의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첫째날은 주로 간암 예방과 초기 간암 치료 및 재발 예방에 대해, 둘째날 오전에는 수술 치료와 기초 분야, 오후에는 수술이 어려운 케이스, 마지막 날에는 새로운 치료법을 다룬다.

한 교수는 "이번 대회에서는 특히 1차 치료에서 실패를 줄이는 방법과 실패한 경우 2차 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학술대회로 끝나지 않고 논의가 지속될 수 있도록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Liver Cancer라는 공식 잡지도 만들었다. 대회에서 다룬 내용을 모두 실어 참석하지 않은 사람도 참고할 수 있다.

한 교수는 "유럽이 주도해 만든 세계간암학회(ILCA) 학술대회가 구미권 관점에서 철저히 근거 중심으로 논의되는 것과 달리 APPLE은 아시아 관점에서 경험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져 학문적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던 아시아의 경험 많은 의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ILCA에서 잘 정리된 치료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지나치게 단순해 간암 환자가 많은 아시아 지역의 의사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종양의 갯수는 물론 크기와 위치 등에 따라 최적의 치료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유럽은 건강보험 특성상 근거를 매우 중요시 여긴다. 그러나 근거만 추구하다 보니 ILCA에서는 매년 같은 모범답안만 제시한다는 한계가 있다"며 "근거가 없다,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보다 앞으로 가능성이 있으니 검토해 보자고 말하는 것이 더 희망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전문가에게는 다양한 메뉴를 제시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APPLE에서 그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목표는 논의의 장을 한·중·일 중심에서 아시아 전체로 확대하고 간암 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 혜택을 나눠주는 것이다. 똑같은 간암인데 어떤 지역에서는 충분히 치료 혜택을 제공하는 반면 어떤 지역에서는 손쓰지 못해 그대로 사망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아시아에서 간암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논의하는 세션이 따로 마련됐다. 아직 간암 관리가 미흡한 여러 아시아 국가의 입장을 듣고,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간암 관리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자리다.

한 교수는 "APPLE이 개최되는 도시에는 모두 긴 다리가 있다"며 "이는 APPLE이 하나의 메시지를 모아 간암 진료의 합의점을 이끌어나가는 교량 역할을 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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