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등동물 연구과정 발견 유전자 기능 고등동물 적용되는 생물학 진리 근접

이들 세 과학자의 연구는 꼬마선충이라는 하찮아 보이는 동물모델을 이용하여 사람의 질병 연구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연구결과는 꼬마선충의 발생과 세포사멸 기전의 규명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이과정에서 발견된 유전자들의 기능이 대부분 사람을 포함하는 고등동물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생물학의 일반적 진리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수 있겠다.

대표적인 예가 세포 사멸 유전자들로서, 이들 유전자의 기능을 밝힘으로써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의 유전자 연구의 길을 열게 되었으며, 세포 사멸 과정의 이해는 당연히 세포사멸에 의해 촉발되는 인간 질병의 원인 및 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을 열어 주게 되는 것이다.

퇴행성 신경계 질환, AIDS, 심장마비, 심근경색 등은 세포사멸이 과다하게 일어나는 질병에 속하고, 암, 자가면역성 질환 등은 세포사멸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해서 일어나는 질병에 속한다.

이들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는 기초적인 세포사멸 과정의 연구가 필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의학적 적용 가능성을 노벨상 위원회는 주목한 것이라고 하겠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노벨상은 한 개인의 평생 업적에 대한 것이 아니고 특정 주제에 대한 연구의 임팩트를 기준으로 수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상이라는 것이다.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도 예외가 아니어서, 개체 발생의 과정에서 기관의 발생 및 세포사멸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발견하고 그 작용 기전을 밝힌다는 구체적인 연구를 수행한 것에 대하여 노벨상 위원회가 주목하게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시드니 브레너는 오래 전부터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그의 평생의 업적은 대단하지만 특정 주제를 놓고 평가하기에는 불확실한 부분들이 있어 지금까지 그의 수상이 미루어 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그의 연구를 기반으로 기관의 발생과 세포사멸이라는 현상이 구체적으로 규명되고 그 연구의 결과가 의학적 임팩트를 가짐에 따라 비로소 수상하게 된 계기가 된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을 받으려는 전략을 편다면, 연구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폭넓게 수행하는 것보다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여건의 조성이 필요할 것이다.

단적인 예로 시드니 브레너 박사의 경우 무려 10년 간의 연구의 결과를 단 한 편의 논문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연구를 허용하는 학문적 분위기가 그로 하여금 이 작은 모델동물 꼬마선충을 인간질병 연구의 주요모델의 반열에 올려 놓을 수 있게 한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올해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는 세 과학자는 모두 처음에는 발생유전학을 전공한 생물학 전공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시드니 브레너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였고, 존 설스턴 또한 유기화학자였다.

호비츠의 경우는 더 독특하여 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이들이 C. elegans라는 작은 모델 동물에 주목하고 연구에 몰입하게 된 것은 우연의 결과일까? 그렇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이들은 주변에 생물학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는 동료와 선배가 있었고, 생물학의가능성을 큰 그림으로 그려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시드니 브레너에게는 DNA 구조를 발견한 프란시스 크릭이라는 동료가 있었고, 존 설스턴에게는 시드니 브레너가 있었고, 호비츠에게는 앨 싱어라는 룸메이트와 제임스 왓슨이라는 교수가 있었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인의 능력으로만이 아니라 치열한 학문의 분위기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동료들의 존재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존 설스턴의 경우는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수상 소식을 들은 후 행한 연설에서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였고, 또한 "정보의 공유"가 얼마나 과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준 사례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실제로 C. elegans의 연구 뿐 아니라 게놈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항상 모든 정보를 모든 과학자가 자유롭게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역설하였고 실천에 옮긴 인물이기도 하다.

특정 연구집단의 연구성과가 그 집단에 독점될 때 과학의 발전은 더디어 질 수 밖에 없으며, 자유로운 정보의 공유가 설혹 단기적인 불이익을 초래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과학의 보다 빠른 발전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체적인 연구력이 세계 10위권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과학부분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고 있다.

모험적인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정보의 공유가 일반화되는 학문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도 자랑스러운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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