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심평원이 공동으로 급여기준 개선이 필요한 88항목을 최종 선정했지만 제대로 시행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4대중증질환 정책에 몰두해 개선과제 검토를 후순위로 미뤄둔 상태여서 올해 하반기까지도 재정추계와 세부시행계획이 마련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3월 지나친 규제 등으로 민원·건의 발생, 외부 감사·지적 등이 끊이지 않는 급여기준들을 검토,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관련 학회 등에 의견을 물어, 지난 4월 총 279개의 항목을 선정했다.

이중 3개년 순차적 계획 검토와 의·병협에서 공통으로 지적한 것들을 추려 총 104항목으로 줄였고, 이어 지난달말 의료단체와의 간담회를 통해 최종 88개 항목으로 압축했다.

88개 항목에는 내과가 40개로 가장 많으며, 신경외과 8개, 재활의학과 5개, 흉부외과 3개, 외과 2개, 피부과 1개 등이 있다.

이들 중 미량알부민검사·전립선특이항원·임산부 경구당부하검사·트로포닌 동시 실시 인정 여부·뇌정위적방사선수술·물리치료항목 산정방법·신이식 전후 베타투마이클로글로불린검사·급속항온 주입·세포표지자검사·종양표지자검사·골밀도검사·정밀안저검사 등을 비롯한 44개 항목은 의·병협 두 곳 모두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합의를 본 사안으로, 다른 항목에 비해 다소 이르게 추진될 전망이다.

특히 불규칙적 항체검사는 '신생아 용혈성 빈혈 발생의 가능성을 예측할 때 유용하기 때문에 모든 산모에게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의·병협은 물론 감사원에서도 제기됐다.

CT산정기준도 정신분열병, 치매 등과 같은 정신과의 대표 질환에서 기질성 뇌병변 여부를 배제하기 위해 급여기준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갑상선자극면역글로불린검사, 인슐린&C-펩타이드 연속 검사 역시 '횟수나 간격 확대가 필요하다'는 합의점이 도출됐고, 골다공증에 실시한 생화학적 골표지자 검사는 농도변화나 반감기 등에서 차이가 있으므로 1종씩만 인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병협에서는 에이즈 검사의 인정범위, 신생아중환실 입원료, 두개강내 동맥 스텐트 삽입술 인정기준 등 의학적 타당성이나 가격적인 측면 등에서 더 중점을 뒀으나, 의협에서는 현장에서 바로 환자들을 대면하기 때문에 임상현실을 반영해달라는 주장이 비교적 많았다.

의료계는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규제와 삭감으로 심평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고착화돼 있는데, 이번에는 그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하니 반가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 오히려 의료계에서 지나친 완화로 오·남용을 우려해 규제를 그대로 가져가자는 항목도 있을 정도다.

이처럼 심평원-의료계가 합의한 거의 드문 사안임에도 정부의 검토와 시행발표까지는 갈 길이 멀기만 하다.

4대중증질환에 모든 관심이 쏠려 의학적인 검토나 세부시행 계획 등을 돌볼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하반기에는 정부에서 모든 검토를 마치고, 재정 추계 및 세부시행 계획을 발표, 내년초 바로 시행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의료계의 추가 답변도 남은 상태고, 복지부 역시 지속적으로 시행을 후순위로 미뤄두면서 언제 준비 작업을 진행할지도 가닥을 잡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급여기준부 배수인 부장은 "오랜만에 의료계에서 긍정적인 태도로 '빠르게 가자'는 목소리를 냈지만, 이번엔 정부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정에 있어서도 가닥이 잡히지 않아 시행을 더욱 뒤쳐지게 만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정부나 기재부에서 추계한대로 4대중증 정책에 10조원 안팎의 예산이 들어간다면 88개 기준 개선에도 재정을 투여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이 소요된다면 개선과제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의료계 바람대로 내년 초에는 수정된 급여기준을 받아볼 수 있을지, 아니면 재정상태와 국정과제 우선 추진으로 또 다시 미뤄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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