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와 함께 하는 암 예방 건강강좌”, “뇌졸중 치료의 최신지견”, “아토피 질환 바로 알기”...
병원에서 실시하는 건강강좌 같은 행사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끊임없이 실시되고 있다. 진료과별, 증상별, 질환별로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의료진은 진료실 안에서 부족한 정보 제공에 나서고, 병원은 환자, 지역주민들과의 유대관계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강연자 중심에 쏠려 일방적이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쌍방향 소통과 공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지금, 환자 눈높이에 맞춘 건강강좌 사례에 대해 살펴봤다.


강연 형식 깨고 토크콘서트 시도

우선 기존의 건강강좌 형식 자체를 깰 수 있다. TED 등에서 흔히 사용하는 형식으로 단상을 없애고 무대 위에서 환자의 눈을 마주보며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토크콘서트를 기획해 볼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이 20일 코엑스에서 개최한 건강강좌는 병원계에선 이색적으로 토크콘서트 형식을 취했다. 암병원 출범을 기념해 암을 극복하고 건강 기원 희망 메시지를 전하는 '암극복 희망 건강콘서트‘다.

심영목 암병원장은 “지난 2008년 암센터 출범 이후 올해는 새롭게 암병원으로 도약하면서 환자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암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 위한 자리”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날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최신 암치료 방법과 전략, 암예방을 위한 생활습관, 10대암에서 흔히 생길 수 있는 오해 등에 대한 강연이 이어졌다.

특히, 대장암센터장 김희철 교수의 강연에 많은 환자들이 공감하는 듯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환자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수년간 수술받은 환자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라디오에서 사연 소개하듯 읊어나갔다.

드라마에서 많은 배우들이 암 환자 역할을 통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곤 하지만, 그가 직접 만난 환자 한명 한명이 모두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내용이다. 슬픈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 특별한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힘이 되는 이야기 등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가족을 등지고 세상을 뜬 사례도 있지만, 씩씩하고 건강하게 암을 극복해 나가는 환자들로 인해 의사인 자신도 많이 배운다”며 “갈수록 암 완치율이 높아지는 만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자세를 갖자”고 당부했다.

환자이자 유명인의 치료 경험도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3년 전 위암수술을 받은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 씨는 “암이 갑자기 찾아와 마지막 1분을 후회하면서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에 비하면, 오히려 젊은 나이에 암에 대해 고민하고 인생을 아등바등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우칠 수 있었다”며 “삶의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는 지금 순간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삼성서울병원 설문조사 결과, 환자들이 꼽는 Best의사는 ▲잘 고치는 의사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치료하는 의사 ▲정성과 진심어린 치료 ▲친절하고 배려하는 의사 등을 꼽았다.

반대로 ▲전문용어를 너무 써서 이해가 잘 안되는 의사 ▲환자 이야기를 안듣고 눈을 안마주치는 의사 ▲진료와 상관없이 검사를 지나치게 권유하는 의사 ▲무표정한 얼굴 등은 Worst 의사로 꼽힌 만큼, 더욱 환자 눈높이에 맞는 소통이 필요함을 보여줬다.

물론, 이같은 행사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기 위해서는 1000명에 달하는 청중을 모으기 위한 사전노력이 필수.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수도권 암환자에 문자와 초청장을 발송하고, 홈페이지 회원등에 사전 안내공지를 했다. 관련 문의 전화가 거의 폭주 상황이었다”며 “환자들과 병원에 관심있는 이들을 1차 고객으로 하고, 그들을 위한 하나의 축제의 장처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입원병동도 좋은 무대로 활용 가능

흔히 병원 내에서는 1층 로비, 대강당 등만 행사의 무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병동도 좋은 무대가 될 수 있다. 환자들이 직접 참여하면 더욱 큰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명지병원은 14일부터 오는 24일까지 ‘마음의 소리와 만나다’라는 주제의 '제2회 예술치유 페스티벌 행사'를 진행 중이다. 특히, 환우들이 입원해 있는 입원실을 음악치료사들이 직접 찾아가는 병동음악회 ‘Bedside Concert’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후문이다. TV를 보거나 누워있기 일쑤인 입원 병동에서의 무료함을 달래는 동시, 치료의 고통을 달래는 시간으로 채우고 있다.

명지병원 관계자는 “중증 환자들의 경우 행사가 열려도 서서 들을 기운이 없거나 사람이 많아 북적북적하는 로비까지 왔다갔다 할 정신도 없다”며 “비록 웃을 일이 많지 않지만, 이런 행사를 통해 환자들에게 병원이 좀 더 가깝고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아예 병동에서의 건강강좌도 기획해볼 수도 있다. 건국대병원 대장암센터장 황대용 교수는 대장암 병동에서 한달에 한번씩 입원환자들과 만나 음식, 생활습관, 주의해야 할 내용을 소개하는 ‘정담회’를 마련하고 있다. 주제는 굳이 정해두지 않는다. 대신 환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채워진다.

황 교수는 “환자들이 입원 병동에서 직접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데서 의미있다”며 “매달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지만,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설명해주고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담당 의료진의 의무이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역설했다.

제목·장소부터 바꾸고 스토리로 말하라

환자 눈높이에 맞춘 건강강좌를 기획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목부터 바꿔야 한다. 굳이 의학학술 행사와 같은 '치료와 예방', '최신지견' 등 딱딱한 제목일 필요는 없다.

다행히 최근 일부 사례에서 이런 변화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민병우 계명대 동산병원장은 지난 10일 ‘뼈나이를 속이자, 건강한 뼈 지키는 법’이란 주제의 강좌를 실시했다. 골다공증의 위험성과 예방을 알리기 위한 주제였다. 지난 15일 경희의료원이 실시한 ‘엄마가 된다는 것, 기쁨과 두려움의 공존(共存)’에서는 산모를 대상으로 ▲병원에서 시행하는 검사와 시기 ▲임신 중 음식과 건강관리 등을 강연했다.

장소도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병원 내에서도 굳이 로비, 강당이 아니더라도 병상, 옥상정원 등도 가능하다. 병원 밖에 환자를 찾아갈 수 있는 공간도 가능하다. 지역주민을 위한 노인회관, 보건소, 구청 등이 흔한 장소로 활용되지만, 좀더 부드럽게 만날 수 있는 장소도 괜찮다. 이대목동병원은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찾아가는 건강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청중 동원도 중요하다. 많은 병원들은 간단한 검진이나 기념품을 통해 청중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호소하곤 한다. 여타 건강강좌에 빈자리가 넘치는 이유도 사전작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에 기본적인 청중 타깃을 확정, DB를 확보하고 문자메시지나 초청장을 발송하면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는 형식을 깨야 한다. TED 가이드라인을 보면, 이야기로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주문하고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밖에 ▲무대에서 노골적인 광고는 금물 ▲슬라이드나 원고를 보고 읽지 말고, 청중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라 등도 중요 요소로 꼽힌다.

특히, 스토리텔링은 아직 병원에는 미약하지만, 지자체, 기업 등에서는 다각도로 연구되고 있다. 서울시는 한강·한양도성·동대문·세종대로·한성백제를 5대 대표지역으로 선정, 지역의 과거·현재 이야기를 발굴해 관광 명소로 만드는 스토리텔링 개발사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전의 관광 패러다임이 인공적인 랜드마크를 만들어 사람을 끌었다면, 이젠 콘텐츠가 가장 매력적인 자원”이라며 “스토리텔링은 트렌드에 적합하면서도 기존 자원을 새롭게 재구성한 작업으로 예산이 적게 든다”고 말했다.

넥슨게임 박범진 팀장은 최근 열린 스토리텔링 강연에서 "일단 초반 짧은 시간 내에 커다란 재미를 보여줘 참여하고 싶단 생각이 들게끔 해야 하고, 이후 의외의 반전을 통해 기억에 남는 결과를 이끌어내면 좋다“며 ”스토리를 그저 말로 풀려고만 말고, 행동 하나하나를 엮어 스토리텔링이 되도록 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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