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기관 부당청구, 무조건 부당한 것이었을까?

"법의 무지는 용서받지 못한다"라는 법언이 있다.

법을 위반한 다음 단순히 "몰라서 그랬다"라는 것만으로는 해명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절도, 사기, 횡령 등 굳이 법조문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일반인의 시각에서 볼 때 '잘못된 행위'라는 것이 분명한 경우에는 위 법언의 적용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행정 관련 영역으로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개월이 멀다하고 새로이 제정되거나 변경·폐지되는 수많은 법령들을 일반인들이 다 알고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법조인들조차도 생소한 법령들이 부지기수이다.

기준이 되는 법규 내지 행정규칙의 해석이 불분명한 경우는 어떨까?

관련 법령의 해석이 둘 이상으로 갈리는 경우, 어느 하나의 해석이 사후적으로 법원에 의해 잘못된 것으로 판단됐다고 해서 그 해석에 따른 행위를 무조건적으로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심지어 법원의 해석마저도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의 해석이 대법원의 해석과 다른 경우가 허다한데, 이 경우 누군가의 행위가 대법원의 해석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를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임의비급여 사건에서 예를 들어보자.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하여금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해 요양급여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대법원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이라 함은 요양급여비용을 받기 위해 허위의 자료를 제출하거나 사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할 것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법령에 의해 요양급여비용으로 지급받을 수 없는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청구해 지급받는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요양급여비용의 환수에 있어서 요양기관의 청구 의도 내지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취해 왔다(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8두3975 판결 등).
또한 법에는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실무상 거의 예외 없이 해당 요양급여비용 전액에 대한 환수처분을 내려 왔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른바 '임의비급여 사건'으로 유명한 여의도성모병원 사건에서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대한 그 동안의 해석을 일부 변경했다.

즉, 대법원은 이른바 임의비급여 진료행위의 경우 원칙적으로 "속임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가입자 등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받거나 가입자 등에게 이를 부담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해 볼 때 관련 절차를 회피했다고 보기 어렵고, 의학적 필요성이 있으며, 환자 등에게 충분히 설명했다면 이 경우까지 "속임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이를 부담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12. 6. 18. 선고 2010두27639, 27646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은 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요양기관이 건강보험의 가입자 등에게 요양급여를 하고 그 비용을 징수하는 경우 반드시 관계 법령에서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야 하며 이와 다르게 그 비용을 징수하는 경우 예외 없이 '속임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가입자 등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기존의 판결들을 모두 변경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는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함이 없이 단지 비급여항목에 기재돼 있지 않은 사항에 대해 환자에게 비급여비용을 청구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속임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의한 비급여 청구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대한 요양기관의 급여 청구가 '속임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의한 것인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사정을 십분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법의 기본원칙 중의 하나인 평등의 원칙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요양기관이 의도적으로 허위청구를 했는지, 단순 착오청구인지, 아니면 관련 고시의 해석상 요양급여 대상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인지 등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해당 요양급여비용 전액에 대한 환수처분을 내려 왔다.

이는 지나치게 행정편의적인 것으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법의 기본원칙에도 어긋난다.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계기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관행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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