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들, 일관성없는 정책 강력 비판

"임상연구는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 논문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정부가 처음으로 국가 R&D 예산으로 지원한 임상연구 과제가 예산 문제로 조기 종료 되면서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한 연구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당초 목표했던 과제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의 원성이 더욱 높았다.

국립암센터 암정복추진기획단은 13일 오후 국립암센터 행정동에서 '차세대 암 임상연구'를 주제로 제40회 암정복포럼을 열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암 분야의 대표적인 장기 사업 중 하나인 성인고형암치료 임상연구센터의 성과가 발표됐다.

이 사업은 국내에 호발하는 성인고형암에 대한 공익적 임상시험의 수행과 임상진료지침 개발을 통해 보건의료정책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정부가 2004년 12월 야심차게 출범시킨 9년짜리 프로젝트다. 김흥태 센터장(국립암센터 폐암센터)을 중심으로 △위암(책임자 경희의대 김시영 교수) △간암(서울의대 이효석 교수) △흉부 및 두경부 종양(서울의대 김동완 교수) △대장암(성균관의대 박영석 교수) △유방암(순천향의대 박희숙 교수) 등 5개 세부과제가 진행됐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예정보다 7개월 이른 5월 사업을 종료하는 것으로 결정, 예산 지원을 그만두면서 사실상 모든 연구가 중단됐다.

김흥태 센터장은 "임상시험 평가 도구(tool)가 없는 상황에서 인프라 구축사업부터 어렵게 시작했다"면서 "시작 당시 정부는 상대평가를 하지 않고, 매년 예산을 증액하겠다며 희망찬 제안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업 시작과 동시에 상대평가가 시작됏고 예산은 점차 감액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세부과제 하나하나가 하나의 센터 기능을 할 정도로 연구를 많이 해왔음에도 다른 사업에 비해 성과가 저평가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우리 센터에서 발표한 지침만 9개가 되고, 연구 밑거름이 될 인프라도 구축했지만 연간 발표한 논문 수가 적다는 이유로 다른 곳에 비해 평가를 잘 받지 못한 점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평가 면에서도 손해를 봤고 마지막엔 예산 부족 이유로 조기 종료 됐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성토했다.


논문 수 적으면 성과 없다?

제2세부과제의 책임자였던 경희의대 김시영 교수(경희대병원 혈액종양내과)도 마찬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김시영 교수는 "연구 시작 당시 위암에 대한 논문이 많지 않았고 임상시험대행(CRO) 역할을 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면서 "때문에 3년간 인프라 구축에 매진했지만 그간 논문이 한건도 발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가에서 꼴지를 받았다. 이후 연구자주도임상연구(IIT)를 진행하고 논문을 발표하니 평가가 좋아졌지만 그래도 다른 분과에 비해 예산도 적게 배정받았다"고 말했다.

분과 1년 예산이 5000~6000만원에 불과해 직접적인 임상 진행은 어려웠지만 다국가 연구 등에 참여하면서 꾸준히 연구를 이어갔고, 지난해 '노인 재발성 및 전이성 위암의 보존적 항암화학요법'과 '재발성 및 전이성 위암의 2차 보존적 항암화학요법'에 관한 진료지침을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는 '근치적 절제술 후 위암의 보조 항암화학요법'과 '재발성 및 전이성 위암의 1차 보존적 항암화학요법'에 관한 진료지침을 개발 및 배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산이 끊기면서 현재 권고사항 도출에서 중단된 상태다.

김시영 교수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임상연구를 활성화하는데 쏟은 6년간의 노력은 진료지침 제작에 많은 힘이 됐다"면서 "그러나 남은 주요 질문(key question)에 대한 답이 사업 중단으로 나오지 않게 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분과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제4세부과제 책임자인 서울의대 김동완 교수(서울대병원 종양내과)는 "위암분과가 적은 재원으로 네트워크에 주력했다면 흉부 및 두경부종양 분과는 조금이라도 임상을 하는데 주력해왔다"면서 "덕분에 전향적 다기관 임상시험 시스템을 확립했고, 진료지침에 반영될 수 있는 임상자료를 생성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재원 한게로 더 많은 임상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종료하게 된 것은 매우 아쉽다고 전했다.

이에 플로어에서는 그간의 연구성과가 공중분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김흥태 센터장은 "센터의 연구 성과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면서 "그래도 앞으로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안이 없어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익 연구는 정부가 지원해야

김흥태 센터장은 "예산이 일관되게 나오기 위해서는 정부가 매년 평가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면서 임상 연구가 하루만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님을 지적했다. 따라서 장기적인 예산을 마련하고 다기관 비영리 기관에 기금을 맡기고 운용하게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국립암센터 방사선종양학과 조관호 박사는 김 센터장의 의견에 적극 동의하며 대한방사선종양학임상연구회(KROG) 사례를 소개했다. 연구회는 2001년 국립암센터 설립과 함께 9000만원 가량의 연구비 지원을 약속받으며 출범했다. 국내 51개 기관이 참여하는 것으로 시작해 현재 81개 기관으로 확장됐으며, 방사선종양치료그룹(RTOC)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그 능력을 인정 받고 많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조 박사는 "우리나라는 대개 과제 중심으로 연구비가 지원되지만 이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해도 과제 종료와 함께 그 인프라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비용효과적이지 못하다"면서 "반면 연구회 중심으로 자금 지원을 받으면 지원이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 비용효과적이고 반영구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연구회라는 우산 아래 여러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야 계속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의대 허대석 교수(서울대병원 종양내과)는 또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공익적 연구는 보험재정에서 커버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미국 종양학 역사를 보면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고, 지금도 그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면서 "정부에서 공익적 임상을 왜 지원해주지 않냐라는 비판은 적절하지만 동시에 왜 아무도 정부에 잘못된 것을 따지지 않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2012년 기준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의 암 임상연구 예산은 약 2185억원으로 우리나라 지원과 비교가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그와 만만치 않은 비용이 암 연구에 소요되고 있다.
허 교수는 "현재 바이오의학에 사용되는 예산은 1조원으로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어디에 돈을 쓰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예산은 대개 신약개발에 집중돼 있다. 허 교수는 "문제는 수십년간 세금을 엄청나게 쏟아부었음에도 성과가 얼마나 있었냐는 것"이라면서 "사실상 우리나라 R&D 정책은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또 암 보장성을 높이면서 암 치료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금은 줄었지만 그만큼 비급여에 지출하는 비용이 늘면서 총액 측면에서는 변함이 없다.

허 교수는 "제도에 반영할 수 있는 근거(evidence)에 대한 임상연구를 해달라는 것이 사회적인 요구"라면서 "제도의 틀 속에서 결정(decision making)하는데 필요한 것이 임상자료"라고 말했다.
또 제약사에서 산업적 측면과 관련 없는 내용에 재정 지원을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누가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질문은 정부에 있다.

가톨릭의대 전후근 교수(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는 "국내 데이터는 좋지만 포장이 잘못된 점은 있다"면서 "지금 장애물은 무엇인지 정부를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허 교수는 "공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IIT는 의료 제도와 맞물린다"면서 "한정된 의료재원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대한 분재의 정의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임상연구를 통한 근거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보험재정을 줄이는 연구이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오바마정부의 건강보험개혁(ACA)의 로드맵에서도 나온다. 결국 신약 개발도 중요하지만 암 임상연구의 국가지원은 공익적 임상연구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공익적 임상연구는 환자를 위한 것이며, 또한 궁극적으로 국가의 재정절감과 연관돼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읜견이 우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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