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직장에서 20여 년간을 진료하다가 정년을 지내고 이 곳 수도권의 2차기관에서 근무한지 1년이 넘는다.

이곳에선 아침 8시 30분이면 각 진료실에서 거의 외래가 시작된다. 몇 방은 특수검사를 먼저 하기도 하지만 병실 환자를 회진하고 내려오면 이미 몇 명의 환자는 급하다고 서두르며 재촉하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그러나 중소병원이라 해도 그날 와서 진찰하여 웬만하면 검사와 결과를 보고 처방과 처치를 다 할 수 있는 OCS· PACS 시스템을 갖춰 놓았고 특수검사인 내시경검사, 방사선검사, CT나 MRI도 다 판독하여 "결과소견서"를 대부분 당일 발부하고 있다.

그만큼 빠르고 편리하게 환자를 진료하고 처리하지만 환자들은 너무 일방적으로 "빨리빨리"를 바라며 이런 절차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2차 병원의 고충이 바로 이런 일인 것 같다.

1차기관인 의원처럼 대하고 3차기관의 고급진료를 바라는….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병원은 지역사회 공헌,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국내외 선교와 봉사활동, 의료보호 1종 2종환자도 적극 진료, 공휴일과 일요일에도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의 외래진료, 근무시작전 친절교육 등의 시행으로 환자들에게 잘해드리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환자들은 별로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병원에는 술과 관계되는 만성질환이 유난히 많은 것을 경험한다.

가족들도 아주 지쳐버린 상태로 병원에서도 힘들어 한다.

입원을 하고도 밤마다 몰래 나가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심지어는 병실에 들어와서도 술을 마시고 큰소리를 치고 소란을 피워서 다른 환자들을 괴롭힌다.

폐쇄 병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날엔 또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런다고 용서를 바라니 다른 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퇴원을 시킬 수도 없고….

며칠 전 진료실에 중년의 아주머니 한분이 방문하여 어느 환자의 기록을 보아달라고 한다. 관계를 물으니 남편이란다. 바로 일주일 전에 술에 만취한 상태로 입원했다가 다음날 오후에 딸이 각서를 쓰고 억지로 "자의 퇴원"을 했던 환자다.

기록을 보니 당뇨, 고혈압, 알콜성 지방간 등 검사를 다 하지 못하였으니 그 이상은 모르겠고 그런 정도인데 웬일인가 하여 "어떻게 본인은 안 오시고?" 물으니 오히려"우리 남편인데 병 증세가 어땠어요?"하고 반문한다.

기록에 있는 대로 대답을 하며 음식 주의 등 설명을 하니 "5일 전에 갔어요"란다. 전혀 예상치 않은 대답이라 다시 "어디로요?"하고 물었다.

"아주요, 저 세상으로 갔어요. 퇴원하고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 훌쩍 나갔는데밤중에 연락이 왔어요, 돌아 가셨다구요"

나도 놀라서 다시 살펴보며 왜 그랬을까? 갸웃거렸다.

식사를 안하고 다시 술만 마신 상태로 당뇨성 코마로일까, 간성 혼수인가, 아니면 너무 취하여 어디에 넘어진 건 아닌가, 뇌졸중으로 출혈이 되었나, 심근 경색이 광범위하게 진전된 건 아닌가…?

"사망원인은 급성 알콜 중독이래요… 그 때 좀더 병원에 있었더라면 안 죽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제야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숙이고 깊은 한숨을 쉰다.

"글쎄요. 저도 너무 뜻밖이군요. 본인이 완강히 입원을 거부하고 따님이 함께 모시고 간다기에 가서 어느 정도 주의를 하고 치료를 계속할 줄 알았는데…"

담담히 일어서는 그에게 오히려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동안 그들 가족들 마음에 큰 상처와 회환을 남기겠지.

"술이 도대체 뭐길래…"

언제나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까.

좀더 사회와 가정이 모두 안정되면 가능할까? 그렇게 아득한 일보다 먼저 좀 더 편리하게 수용되고 치료받고 개선되어지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을까.

당면한 과제이면서도 어렵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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