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천의대 길병원 고광곤 교수


최근 학계에서는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환자에서 약물 병합요법의 효과가 광범위하게 인정받고 있다. 이는 고혈압 환자의 치료에도 그대로 적용돼 고위험군에서 항고혈압제 병합요법의 조기적용이 확대되고 있다. 항고혈압제 병합요법의 출현은 심혈관질환 위험인자 종합관리 패러다임과 맥을 같이 한다. 고혈압과 함께 여러 심혈관 위험인자가 동반되는 경우가 다발하면서 단일약제로는 적절한 혈압조절과 궁극적인 심혈관질환 예방이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1990~2000년대 들어 역학연구에서는 위험인자가 하나일 때보다 2·3개 동반될 경우 심혈관질환 위험도가 산술적 합산에 그치지 않고 배가된다는 점이 관찰됐다. 원인으로는 기초연구에서 각각의 위험인자가 상호 교차대화(crosstalk)를 통해 동맥경화를 더 악화시킨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의 고광곤 교수는 “고혈압, 이상지혈증, 당뇨병, 비만, 대사증후군, 만성 신장질환 등이 동시에 나타나면 혈압을 올리는 안지오텐신Ⅱ와 산화물질이 급증하고 혈관경직도가 악화된다는 것이 이미 기초연구를 통해 입증됐다”며 다중 위험인자 발현과 심혈관질환 위험도의 상관관계를 설명했다.

특히, 이같은 고위험군 환자들은 위험인자 간 교차대화를 통해 혈관의 구조적·기능적 변화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돼 있어 궁극적인 심혈관질환 예방이 더욱 어렵다.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고혈압 환자에서 단일약제를 통한 혈압조절은 이미 한계를 노출해 왔다. 유럽심장학회(ESC)에 따르면, 항고혈압제 단일요법은 제한된 환자군에서만 효과적인 혈압강하 성과를 나타낸다.

고광곤 교수는 “여러 약물을 뒤죽박죽 함께 사용한다고 다 병합요법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상호보완 작용을 통해 혈압조절은 물론 심혈관 보호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약물이 선택돼야 한다는 것이다. ESC 역시 “기전·혈압강하·표적장기 보호·부작용 측면에서 각각의 단일요법과 비교해 더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며 조건을 제시했다.

병합요법에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요인은 순응도와 비용 측면의 문제다. 두 가지 이상의 약물을 별도로 사용할 경우 비용은 올라가고 순응도는 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다. 최근 고정용량 병용 복합제들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약물 병합요법의 명확한 개념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병합요법을 적용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고 한다.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 등이 심혈관질환 위험인자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약물을 통한 각각의 위험인자에 대한 치료는 이미 진행돼 왔다. 그러나 병합요법은 서로 상관이 없는 약을 뒤죽박죽 쓰는 것이 아니다. 위험인자 간 교차대화에 의한 동맥경화의 발생 또는 악화를 막아주는 약물들을 함께 써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병합 개념이 성립한다.

약을 7~8개 쓰더라도 무의미한 병합은 비용면에서도 낭비일 뿐만 아니라,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관련이 없는 약물을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효과도 좋지 않다. 과거에는 개별적으로 위험인자를 조절하다보니 약물 사이의 상호보완이나 동맥경화 예방효과까지 고려하지 않고 여러 개를 무작정 처방했던 것이다.

또 병합이라고 하면 많은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10~20개의 약물을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환자들은 의외로 약을 많이 먹을 필요가 없다. 위험인자의 부담을 줄이는데 서로 연관돼 있는 중요한 약물을 선택하면, 쓸데 없는 다른 약까지 복용할 필요가 없다. 제대로 된 병합요법은 약물의 수가 기껏해야 3~5개 정도로 줄게 된다. 상품화된 폴리필의 약물 개수도 3~5개 정도다.

위험인자 간 교차대화를 차단하는 것이 병용의 목적이지만, 이같은 상호작용의 여부와 그 결과는 환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고혈압과 이상지혈증, 고혈압과 대사증후군, 고혈압과 당뇨병이 모두 다를 수 있다.
결국 환자 개개인의 맞춤형 병합이 요구된다. 이것이 진정한 병합요법이다.

- 고혈압 환자 치료 시 혈압강하력과 심혈관보호 효과의 균형에 혼란이 야기되지 않나?
고혈압은 혈압이 높아 심혈관사건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과거에는 혈압조절이 핵심이었다. 1990년대 초반 일련의 연구에서 혈압이 잘 조절된 환자들의 심혈관질환 위험이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 더 감소했다. 혈압조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혈압조절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심혈관질환 감소의 폭은 그렇게 높지 않다는 연구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초연구를 통해 상당수의 고혈압 환자에서 높은 혈압이 유지되면서 혈관의 구조·기능적 변화가 야기됨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자들은 혈압을 낮추는 것이 힘들 뿐 아니라 혈압강하 만으로는 기대 만큼의 효과를 거두기가 힘들다. 결국, 혈압강하와 함께 혈관구조의 개선을 공동목표로 삼아야 한다. 학문이 발전되면서 과거에 둘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 치료인가에 대한 논쟁이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병합요법도 혈압강하와 함께 혈관구조를 개선해 주는 것이 최선의 치료전략이다. 특히, 고위험군 고혈압 환자의 경우 혈관의 구조가 많이 악화돼 있는 상태다. 그래서 무작정 여러 약물을 함께 쓰는 개념이 아니라 궁극적인 혈관구조의 개선에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는 약제들을 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 병합요법이 필요한 대상은?
JNC-7 등은 140/90 mmHg 미만을 일반적인 타깃으로 잡고 있다. 이들보다 수축기 혈압이 20 mmHg 정도 높은 사람(160 mmHg~)들은 처음부터 두 가지 이상을 병용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이 단일약제로는 목표치에 도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고혈압이 있으면서 이상지혈증, 당뇨병, 만성 신질환, 심혈관질환, 대사증후군(비만) 등이 있는 사람들도 바로 병합요법을 시작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학계 전반의 합의가 이뤄져 있다. 이를 뒷바침하는 주목할 만한 연구들이 최근 미국심장학회 고혈압 저널에 발표됐다.

과거에는 단일요법을 사용해 혈압 목표치 도달률이 25% 이하였는데, 병합요법을 적극 권고하면서 처음으로 목표치 달성률이 60%에 이르렀다. 또 한 연구는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병합요법을 사용해 목표치에 도달한 환자군이 나중에 병합요법을 사용해 목표치에 도달한 환자군보다 합병증 발병, 심혈관사건 발생 등이 월등히 적었다.

- 적절한 병합약물 선택은?
특정 항고혈압제들은 혈압강하와 함께 실제로 동맥경화의 부담을 줄이는 다른 작용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혈관 내피세포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항염증, 항산화, 항응고, 혈관이완 작용 등이 혈압저하와 더불어 확인된다. 어떤 약은 지방세포도 줄이고 지방을 연소시켜 인슐린저항성을 개선시키는데 반해, 다른 약은 혈압강하는 비슷하나 이 같은 작용이 없거나 심지어는 악화시키기도 한다.

결국, 혈압강하와 더불어 심혈관 보호의 상호보완적인 효과가 있는 약물들이 병합돼야 한다. ARB(로살탄, 발사르탄, 칸데살탄, 에프로살탄, 이르베살탄, 텔미사르탄…), 신세대 AECI(라미프릴, 페린도프릴, 타나트릴…), 3세대 CCB(에포니디핀, 암로디핀…) 등을 함께 병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JNC-7에서는 이뇨제를 일차약물로 포함시켰지만, 많은 연구에서 이뇨제는 인슐린저항성을 일으키고 고지혈증을 일으키기도 하므로 유럽 가이드라인에서는 일차약에서 빠졌다. JNC-8에서는 이뇨제 사용이 일차약에서 빠지고 심부전이 동반된 고혈압 환자로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 이외에 병합선택 시 고려돼야 할 점은?
유럽가이드라인이 병합의 요구조건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약물복용의 순응도와 비용적 측면이 추가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환자들은 평생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가급적이면 가격이 저렴한 병용약물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각각의 다른 약물을 별도로 병용하는 것보다,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약물을 하나의 정제에 혼합한 복합제(고정용량 병용요법)가 순응도나 비용면에서 더 효율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고위험군 환자의 비용효과를 따져 본다면 단일요법-용량증가-약제추가나 개별약제의 병용보다는 고정용량 복합제가 더 좋다고 본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