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근본 원인은 비현실적 수가
의사 개개인 윤리의식 향상에 노력해야


최근 의료계는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처방을 포함한 환자 진료행위와 관련해 제약업체로부터 재정적 지원, 소위 리베이트를 받았다며 사회적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들도 할 말이 있다. 그동안의 관행이었다는 주장은 접어두고라도, 요구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강의나 번역같은 노력의 대가로 받은 것에 대해 돌팔매를 당해야 하는지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급기야 올해 초 불거진 대형 국내 제약사의 리베이트 사건으로 의사들은 참고 있던 억울함을 터뜨리고 나섰다. 제약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회사와 계약을 맺고 강의 동영상 제작에 참여했던 의사들이 대거 리베이트 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되자, 더이상은 환자를 담보로 댓가를 바라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매도당할 수 없다며 '리베이트 쌍벌제'의 개선을 위한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움직임이다.

리베이트는 의사들이 진료·연구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이해상충'이다. 기업 마케팅의 한 방법인 리베이트로 인해 의료계는 지금 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걸까?
고윤석 울산의대교수의료윤리연구회(회장 홍성수)는 지난 1일 열린 제28회 연구모임에서 '이해상충'이라는 주제로 이 문제를 짚어봤다. 이날 강사로 나선 고윤석 울산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전 한국의료윤리학회 회장, 사진)는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 정리에서부터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 이해상충이 특히 의사에게 문제가 되는 이유가 뭘까?

모든 전문가 집단에게는 전문가적 규범이 부여된다. 의료인에게는 의료행위에 대한 독점적 권한이 부여돼 있는데 이는 의사에 대한 공적신뢰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의료 전문가에게 부여한 이러한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료윤리적 규범이 요구된다. 그런데 의사들에게 이해상충은 이러한 공적신뢰를 흔드는 요인이 된다.
이해상충이란 본질적인 목적이 부수적인 목적 때문에 훼손되는 상황으로 의사의 전문적인 판단이나 행위가 환자의 이익이 아닌 개인적 이득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해상충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결국 의료인이 전문가로서의 지위와 특권을 잃고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해상충은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가 집단이 겪게 되는 필연적인 상황이다. 의료에서의 이해상충이 특히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의료인들에게 부여된 공적신뢰 때문이다.

- 우리 사회가 의료계 리베이트에 주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해상충은 단순히 재정적인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 의사와 관련한 이해상충에 대한 규제는 재정적인 면이 너무 강조되고 있다. 리베이트 쌍벌제의 입법 배경을 보자. 이는 국내 건강보험 지출액의 비중에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OECD 국가의 평균과 비교해서 클 뿐 아니라 갈수록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에서 시작됐다. 약제비 비중이 높은 이유가 리베이트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이에 대한 규제로 입법된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은 리베이트의 근본원인에 대한 고민이 결여돼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료수가로 인해 의사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나쁜 부분만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합의되지 않은 기준에 의한 적발을 불법으로 몰아 의사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세우면 환자들은 의사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의사를 믿지 못하면 환자는 이병원 저병원 찾아다닐 수밖에 없고 이왕이면 더 큰 병원을 찾게 돼 진료체계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의사와 환자와의 신뢰관계가 깨지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환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의사들에게는 문제가 없는건지?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 의학저널의 대부분은 이해상충에 대한 공지에 있어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연구논문 투고 규정에 이에 대한 규정(COI disclosure)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발간된 논문들의 절반 정도에서만 이를 공지하고 있다. 상업적인 이해상충이 명백한 논문들 조차도 이 규정을 지킨 경우는 절반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는 인용지수 상위 10%에 속하는 국제 의학연구논문들의 89%가 이해상충에 대해 공지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얼마나 미흡한지 알 수 있다(Jared A. Blum et al. JAMA 2009;302).

- 의료계는 이해상충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

CME의 장인 학회에서 이뤄지는 학술활동의 대부분은 의료산업계의 지원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학회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의사들이 학회 활동에 참석할 수 있도록 등록비 등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학회의 재정 상황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CME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질병예방과 홍보를 위한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하는데 이 역시 학회 자체 예산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하다. 학회지 발행도 마찬가지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각 학회들은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 이해상충 관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에 대해 얘기하려면 의료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원가 이하의 수가구조에 대해 거론해야만 하지만, 이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얘기하겠다.
의료인들이 가진 제약사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윤리적 인식은 매우 낮다. 볼펜하나 생수 한 병 정도는 아무 문제의식 없이 받아왔다. 받아도 되는가 반문하기에는 너무 소소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보는 시각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렇게 의료인들이 윤리적 민감도가 낮은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교육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의대 교육과정에서 의료윤리에 대한 교육이 점차 확대되고는 있지만 이해상충에 대해서는 현재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전공의 교육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학회 활동에서의 낭비적 요소는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반성해보고, 수익자 부담 원칙을 보다 확대해 적용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 대한의사협회와 같은 전문가집단이 보다 강화된 의사윤리강령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를 의사 개개인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대학, 병원, 연구소,학회 등은 이해상충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고 각 위원회는 정기적으로 이해상충 문제에 대한 통계 보고를 통해 소속원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특히, 제도적으로 이해상충을 다룰 때는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형평성과 투명성, 책임소재, 이익의 공평성이다. 우리 정부가 의료에서의 이해상충 관리에 이러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지 묻고 싶다.
한국의료윤리학회는 지난 2011년 이해상충 관리에 대한 단계적 접근 방법을 제시한 바 있다. 우선 개별적으로 윤리적 민감도 향상과 부당한 이해상충을 회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 기관·단체 내에 이해상충위원회를 구성하고 이해상충을 밝힐 수 있는 체계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이후에 전문가단체가 나서서 윤리문화를 증진시키고 정부는 의료수가 현실화와 같은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윤리지침의 수준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 의사 개인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우선은 '나는 다르다'는 생각이 가장 큰 문제 요소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개원하고 있는 의사들의 경우, 이해상충의 상황을 환자나 다른 동료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짚어보고, 제안하는 상대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아울러 내 동료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의사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연구자들은 자기의 이해상충을 밝혀야 한다. 연구에 개입돼 있는 이해상충의 요소를 당당하게 밝히라는 것이다.
다른 집단과 마찬가지로 의사 역시 사회라는 공동체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의료 여건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세계 모든 의사들이 처한 공통적인 상황이다. 더구나 경제적 측면이나 진료환경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의사 개개인 그리고 의료단체들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부당한 이해상충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 이로써 의료전문인으로서의 공적신뢰를 회복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의사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김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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