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학과 정의 : 인간능력 증강과 사회적 불평등


의료윤리연구회(회장 홍성수)는 지난 4일 제 27회 연구모임을 개최했다. 대한의사협회 동아홀에서 열린 이날 연구회는 ‘의사와 정의의 만남’을 주제로 한 마지막 시간으로 강명신 국립 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교수가 ‘첨단의학과 정의-인간능력 증강과 사회적 불평등’ 에 대해 강의했다. 참석자들은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직면하게 된 인간 능력의 증강과 윤리에 대한 문제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했다. 강명신 교수는 치과의사로 보건학박사이며, 철학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최근 마이클 샌델의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를 번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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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원 배분은 치료분야에 먼저
전문가로서 발전 방향에 관심 가져야


윤리에서 가장 큰 두 개의 줄기는 옳음(the right)과 좋음(the good)이다. 정의(the justice)는 옳음에서도 특별히 사회시스템과 제도의 미덕으로서 중요하다. 강명신 교수는 "제도가 정의롭다면 개인은 그 제도를 지켜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며 "문제는 제도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의료와 관련된 결정, 미시적인 것에서부터 거시적인 데 이르기까지 어떤 근거로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해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공개된 공유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 원칙은 어떤 이유가 합당한 것인지 가름해주는 것이어야 하며, 결정자나 수혜자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의료의 각 수준의 의사결정에서 어떤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또 어떻게 그것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가. 이 부분에서 전문가들은 비전문가들이 납득할 내용을 제시하고, 필요하면 대중을 교육하고 또 대사회적 설득 노력도 기울이면서 사회로부터의 비판에 개방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을 담당해야 한다.

강 교수는 전문가 단체라면 해당 분야의 제도가 정의로운가를 연구 검토하고 근거 있는 제안으로 정책입안에 관여해야 할 윤리적인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사회는 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의료분야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정책이 정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강의의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증강의학'이라는 말은 생소한데?

증강의학(enhancement medicine)은 질병예방이나 질병치료가 아닌 외모나 능력을 개선(증강)하는 데 목적이 있다.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증강 치료와 질병 치료를 나누려면 건강과 질병의 구분이 필요하다. 그러나 건강함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의 개념상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벽한 웰빙이지, 단지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정도가 아니다. 건강이 ‘질병이 없음’으로 규정되지는 않기 때문에 굳이 전에는 '치료'하지 않던 것을 의학적으로 개입해 '개선'하는 일도 개념상 용납되는 셈이다. 예를 들면, 원래 ADHD를 치료하기 위한 약제를 주의집중에 문제가 없는 아이에게 써서 집중력을 높이고 더 얌전하게 하기 위해서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의료화' 비판의 대상이 된다.

- 증강의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나?

미용성형이 가장 익숙한 예가 될 것이다. 이전에는 노화의 정상적 과정이라고 여겨진 문제에 대해서 미용적인 개선을 꾀하는 기술이다. 또, 약물 증강이 있다. 방금 말한 ADHD 증후군 치료약제를 집중력을 더 높이기 위해 쓰는 경우가 그렇고 운동선수들이 스테로이드 등 약을 써서 운동수행능력을 증강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그런가하면 도핑 테스트로 걸러내기 힘든 유전학적 증강이 있다. 체세포 유전자에 증강을 위한 유전자조작은 당 세대에 머물지만 생식세포 계열의 유전자에 유전학적 증강을 하면 세대를 걸러 이어진다. 사실 그 외에, 망원경을 끼고 천체를 보는 것이나 인공지능도 사실 증강기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 증강에 대해 찬·반 논리가 있을 텐데?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해 스스로 자기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은 자율성의 영역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인 찬성론이다. 또, 막아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는 논리도 찬성 쪽으로 가세한다. 여기서 막으면 다른 곳에 가서 증강시술을 하고 또 받을 것이니 막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이 여론을 피해 다른 나라에 가서 받고 오는 예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찬성론은 인간의 역사를 들춘다. 증강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증강과 관련한 기술은 인간의 정상적인 욕구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역사 속에 있어왔다는 주장이다.

반대하는 측의 논리는 아무래도 안전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사실 증강기술이 원래는 치료를 위한 것이었는데 부가적으로 이익이 되겠다고 해서 개선목적에 쓰여지는 경우가 많아서 안전문제로 증강기술의 발전을 막기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과용에 의한 안전문제는 늘 따르게 마련이기 때문에 무분별한 발전에는 규제가 필요하다. 너도나도 증강을 이용하게 되면 애초에 증강을 선택한 목적에 따라 소위 '증강경쟁'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미 실제로 부작용을 심하게 겪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아이들에 행하는 유전학적 증강에 대해서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 아이를 도구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하며, 본래 의과학의 목적이 아니었다는 비판도 있다. 소위 주어진 것으로 봐야할 인간의 조건 자체를 바꾸려고 한다는 것이다.

-'증강 치료(enhancement therapy)'가 정의의 차원에서 논의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의 평등 이념은 법 앞의 평등이나 기회의 평등이 주가 되지만, 본인 책임이라고 하기 어려운, 자연적 이유로 인해 사회경제적 조건이 열악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에 더해서 인위적으로 증강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게 될 것이다. 증강 받은 사람이 제 돈 주고 비보험으로 증강을 받았다고 해도 받지 못한 사람이 불이익으로 고통 받는 것은 정당한가? 자연적 이유로 조건이 열악해서 사회경제적 여건이 안 좋아 증강을 받지 못했다면 말이다. 이렇게 집단간 정의 문제가 불가피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월한 유전자만 선택해 자녀에게 물려주는 일이 가능해짐에 따라 ‘이전 세대가 다음 세대에 대해 강한 통제권을 가지는 것은 정의로운가’ 라고 하는 세대간 정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것이다. 특히 유전자적 증강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고 "자연적인" 사람들 사이에 세대를 이어 사회적 불평등이 이어지는 파국이 일어날 수 있다.

'Chance에서 choice로' 라는 말 자체는 자유주의적 사고에서 증강과 정의를 연관지을 수 있다. 기술이 자연의 개선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 증강의학의 발전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 그런데 발전이라는 단어가 그 자체로 사회적으로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정치철학이나 정의론을 견주더라도 사실 생각해야 할 요지는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라는 이념의 가치를 어떻게 보는가, 그 이념을 추구할 의지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사회가 지향할 방향이나 어떤 사회를 추구하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보통의 삶의 질을 상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보통의 수준보다 낮은 상태인 사람들의 삶의 질을 보통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과 보통의 수준을 보다 나은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일을 나눠 볼 수 있다. 언뜻 생각해봐도 직관적으로 자원을 전자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의학의 본래 목적이 될 수도 있고 의료전문직의 우선적 의무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사회적 연대가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공적지원에 있어서는 연구비나 시술비 등이 질병치료 쪽에 우선 배분되어야 한다는 쪽에 손을 들고 싶다. 사실 이 외에도 유전학적 증강을 포함한 증강 전체에 대해서, 그리고 인지과학의 발전 그리고 융합기술에 대해서 철학적 논의가 필요하다.

- 증강의학의 발전으로 의사들은 임상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윤리적 문제들과 부딪히게 될까?

과학과 사회 사이에 위치한 의사들의 입장에서 기술이 자기통제 하에 있을 때, 기술의 사용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뿐 아니라 집단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마케팅 파워에 취약한 소비자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소비라고는 하지만 다른 재화나 서비스에 비해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의료이고, 증강기술이다. 합리적인 의료소비자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단지 ‘술자’로서만이 아니라 사회 속의 전문가로서 의학 전반의 전개 양상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정리·김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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