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세종과학기지가 생긴지 20여년. 그간 남극 생태계와 각종 기상연구에 등에 관심을 쏟았다. 벌써 25차 월동대원이 활동을 마치고 돌아왔고, 26차 대원들이 남극에 가 있다. 내년에는 제2의 남극기지인 장보고기지가 건설예정에 있다. 이 시점에서 대원들이 사전에 어떤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지, 또 현지에서 어떻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의 장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마련됐다.

대한극지의학연구회,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고려대구로병원 의료기기임상시험센터 등은 공동으로 27일 고대구로병원 연구동에서 ‘제1회 극지의학 심포지움-극지의학 연구의 출발점’을 개최했다.

극지의학연구회장 김한겸 회장(고려의대 병리과 교수·사진)은 “세종기지를 통해 극지 연구는 많은 업적이 있었지만, 극지의학에 대한 이해와 연구는 부족했다”며 “장보고기지 운영을 앞두고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의료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이 대두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지난 2007년 고려의대는 극지를 동경하는 교수들이 모여 극지의학연구회를 결성했고, 극지연구소와 MOU를 체결해 극지에 파견되는 의사들에 대한 사전교육과 지원 등을 해왔다.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연구회를 대외적으로 오픈, 극지의학에 관한 연구를 시작해보자고 공식 발표했다.

장보고기지, 수술실·응급실 등 설비 한창

장보고과학기지는 세종기지와의 환경적인 차이로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남극기지를 통해 각종 빙하연구, 기상 관측, 장기 생태계 연구, 우주기상 연구, 태양계와 행성물질 탐사 등이 가능하다. 세종기지에 이어 2번째 남극기지가 되는 장보고과학기지는 2014년 6월 남극 로스해 테라보바만에 4458㎡규모로 조성된다.

그러나 세종기지의 경험으로 건강관리에 대해 안심할 수 없다, 일단 기온부터 차이가 난다. 세종기지는 평균 영하 1.7도이지만, 장보고기지는 영하 14.13도를 기록하고 최저 영하 35.9도에 이른다. 또한 세종기지는 30km이내의 월동기지가 8개 있지만, 장보고기지는 근거리에 월동기지가 없다. 최근접 기지인 미국 맥머도 기지는 350km에 이르며, 이마저도 동계에는 접근할 수 없다.

극지연구소 대륙기지연구소 김지희 연구원은 “남극기지는 대부분 1~2명의 의료진에 의해 진료를 받게 된다.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질환과 부상은 후송을 특별히 고려하지 않으며, 겨울에는 후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원 선발 시 철저한 건강검진과 예방접종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장보고기지의 의료시설 기본방향은 외과 진료, 내과 진료, 수술 가능시설, 극지방에서 발생하기 쉬운 저체온증·동상·설맹 등의 응급치료, 기본적인 치과 진료 등이 가능하도록 구성한다.

설계돼 있는 장보고기지 진찰실 및 분석실에는 자동혈액 분석기, 자동혈구계산기, 초음파 진단기, 자동 뇨검사기, 드레싱카트, 심전도기, ENT 유닛, 덴탈 유닛, 자동혈압계, 원심분리기, 롤링기, 전동진찰침대 등을 둔다.

수술실 및 준비실에는 수술대, 스크럽, 전기수술기, 무영등, 제세동기, 석션 키트, 마취기, 환자감시기, EO가스 소독기, 증기소독기, 튜브투입기, 응급산소치료기 등을 구비한다. X-ray실에는 고주파 X-ray촬영기, 판독기 등을, 물리치료실에는 링거대, 산소발생기, 파라핀 치료기, 적외선 치료기, 초음파 치료기, 경피신경 자극기 등을 준비한다.

철저한 사전 검진에 심리·수면 연구도


극지에서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고립돼 있는 환경 탓에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 다양한 사건사고도 뒤따랐다.

1957년부터 2005년 10월까지 독일, 프랑스, 미국, 중국, 영국, 호주 등 13개 국가의 18개 남극기지 비교 연구에 따르면, 해빙으로 인한 크레바스 실족사 5명, 눈보라로 인한 방향감각 상실 5명, 헬리콥터 추락 3명, 익사 2명, 급성 심근경색 2명, 폭발 1명 등이다.

특히, 여객선과 어선의 빙산 추돌사고, 비행항로 미인지로 인한 항공사고, 건물 전소 화재 등의 대형사고 위험도 도사린다. 자칫 전원사망할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동물들의 위협도 받는다. 2003년에는 표범해표 습격, 북극곰의 습격 등으로 사망 사례가 있다.

세종기지의 월동기지 사고 사례를 보면, 2009년 관량의 철근 모서리에 머리가 부딪혀 대원의 두피 일부가 찢어지는 사례가 발생해 즉각 치료했다. 2010년에는 경사로에 쌓인 눈에 미끄러 넘어져 오른쪽 어깨 관절 염좌가 발생했다. 또한 같은 해 빙판에 미끄러지거나 남극올림픽 기간 중 축구경기로 오른발을 접질리는 사고도 있었다. 2011년에는 정리중인 우드박스가 바닥으로 떨어져 발중골 골절을 입고 중도 귀국한 사례가 있다.

극지연구소 극지안전팀 박하동 기술원은 “각종 질환, 사고에 대한 예방을 위해 극지에 가기 전부터 극지안전팀에 건강검진결과와 사전 설문서를 제출하면, 남극파견의사를 통해 1차적으로 검토한다. 이후 2차검토를 통해 특정항목까지 세밀히 검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세종기지 25차 의사 대원으로 다녀온 조경훈 공보의는 “맹렬한 추위, 낮은 습도, 제한된 외부활동, 고된 작업은 물론 사회와의 격리, 제한된 외부활동에 야간 당직근무 등과 싸워야 한다”며 “특히 최근에는 수면 및 심리상태의 연구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라이트박스를 통해 부족한 일조량을 보충하고 수면일지를 작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 가이드라인 참조해 개선점 보완

해외 남극기지의 의료현황은 어떨까. 장보고 과학기지에 앞서 정확한 정보 파악과 건강관리 매뉴얼을 작성하기 위해 학생들까지 나섰다. 올해 8월까지 완료되는 해외 현황 보고서 작성에 고려대 의대·의전원 학생 12명이 참여하고 있다.

극지의학연구회 손선경 학생회장(본2) 발표에 따르면, 영국은 별도의 메디컬 유닛에서 의료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한명의 의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병원과 MOU를 맺어 지원하거나 연결하게 된다. 가이드라인에는 자가건강질환 설문지, 의사검진 기록, 전염성 질환 검진 등을 통해 파견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호주는 각 기지에 의료를 담당하는 ‘AMP’를 별도로 두고 있다. 의사가 기본적인 응급 치료를 하는 동시에 한달에 한번 정기검진을 해준다. 여름이 끝나면 혈액검사를 실시해 겨울을 나기 적합한지 검사하고, 이를 철저히 기록한다.

뉴질랜드, 독일, 미국 등도 가이드라인을 통해 사전검사 항목과 극지 파견 의사의 역할에 대해 기술해 놨다.

최은호 학생은 “해외 사례에서 보듯, 극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은 최대한 예방할 수 있도록 출발 전 철저한 사전 검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직까지 국제적인 표준화가 돼있지 않고, 국가별로 자체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비교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역시 개선점을 찾고 매뉴얼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려의대 재활의학과 강윤구 교수는 “세종기지를 통해 극지파견의사 매뉴얼을 개발하고, 월동연구대원에 대한 다각도의 건강검진 해왔다”며 “극지파견의사 교육은 월동연구대원 건강검진, 현장 의료자문, 식단 개선, 운동 프로그램 개발 등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해가 갈수록 극지 상황에 맞춘 보완된 실습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차 실습스케줄은 가정의학과 2주, 재활의학과 1주, 응급의학과 6주 등으로 구성됐으나, 2011년 25차 조경훈 대원은 재활의학과 2주, 정신과 1주, 가정의학과 1주, 안과 피부과 1주, 산업의학과 1주, 정형외과 2주 등의 실습을 거쳤다.

이날 참여한 의료진들은 “생명에 가장 직결된 것에 최우선적으로 신경쓰고, 급사 우려가 있는 심장혈관질환, 뇌혈관 질환에 대한 사전 검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극지의학에 이해가 있는 의료진으로부터 건강검진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지의학 연구" 논의의 출발점

향후 필요한 과제는 극지연구소와 그간 파견된 의사 대원, 극지의학연구회 등을 통한 극지의학 공동 연구다.

우선 직무별, 파견기간 별로 필요한 검진 내용을 상세히 정해야 한다. 현재처럼 지정병원에서 검진을 받는 것이 아닌, 대원들의 개별맞춤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기록지만 보고 남극 파견 여부를 판단하는 일도 더러 있는 만큼, 정확한 대면검진의 필요성을 전했다.

이날 끝까지 자리에 함께한 극지연구소 이홍금 소장(사진)은 “극지연구소는 현재 건강관리와 안전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며 “극지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많이 생겨나 끊임없는 연구를 하면서 차세대 전문가를 배출하길 바란다. 극지에 나가는 한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극지연구소, 극지의학연구회 모두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극지의학연구회 김한겸 회장도 “현재까지 의사 대원 25명이 다녀오고 1명이 더 파견된 상태다. 극지연구학생회에 12명이 지원했고, 향후에도 더 많은 의사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늘어난 관심과 참여를 토대로 더욱 많은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 제공=SPORTS KU 황명호 전 사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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