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한국의학교육 100년 대계(5)
[기획특집]한국의학교육 100년 대계(5)
  • 송병기
  • 승인 2002.08.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사의 인성교육
의료윤리교육의 시작

한국에서 의료윤리교육이 공식적으로 일부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포함되기 시작한 것은1980년대 초부터이다.

1960년대와 70년대 정부의 강력한 인구억제정책으로 의사들에 의한 인공유산시술이 크게 증가하면서 생명윤리문제에 민감한 일부 개신교나 가톨릭계 의과대학에서 주로 이런생명문제를 포함한 의료윤리관련 강좌를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 현대 서양의학교육의 역사가 100여 년에 이르고 있는 것에 비하면의료윤리나 생명윤리 교육의 역사는 극히 짧다고 할 수가 있다.

물론 이전에도 이런 내용 관련 교육이 의과대학 교육에서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높은 윤리의식과 도덕적 행위는 언제나 의사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었고 따라서 형태는 다르지만 의사가 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윤리교육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전세계 많은 의과대학 졸업식장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이 선서하는 최고의 의사윤리 선언인 히포크라테스 선서 원문이 이미 기원전 6세기경에 만들어진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는 일이다.


의료윤리교육의 시대적 변화

인류를 위한 봉사와 양심적인 진료, 그리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환자의 비밀을 지키고 인간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존중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꾸며진 이 히포크라테스 선서야말로 가장 오래된 의료윤리 지침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의료윤리 지침은 기본적으로 의료행위가 인간생명을 대상으로 한다든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높은 윤리성에 바탕을 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실제로 오랫동안 의사직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의학이 본질적으로 요구하는 이런 윤리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을 뿐 아니라, 의사가 되면서 반드시 이런 윤리적 의료행위에 충실하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던 것이다.

의사들 스스로 의료직의 높은 윤리성을 주장하고 이런 윤리지침에 따라 살겠다는 것을다짐하는 형태였던 것이다.

이렇듯 "다짐하는" 수준의 의료윤리가 지금처럼 "요구되는" 상태의 의료윤리로 그 논의의 초점이 바뀐 것은 사실 최근의 일이다.

우리 나라보다 더 오랜 현대의학교육 역사를 가진 서구 여러 나라들에서도 의료윤리교육을 정규 의학교육과정에 포함한 것은 1970년대 초의 일이다.

즉 196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민권운동과 이를 바탕으로 한 도덕적 각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직업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이런 차원에서 사람들이 의사와 환자관계를 포함한 의학적 기술의 적용, 그리고 고가의 의료행위나 연구투자의 정당성 등에 관해 윤리적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의료윤리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로 의사들의 의학적 행위는 일반인들에 의해 그 윤리성 여부가 평가되기 시작했고, 이 일로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종종 법적·윤리적 긴장상태까지 발생했으며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의료윤리교육은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

의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의료윤리에 대한 논의의 초점이 이렇게 바뀐 것은 상당히 부담스럽고 마음 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이 일은 실상 의사들의 윤리적 다짐을 도와주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이 일이 이제는 더 이상 상식 선에서 판단할 수 없는 의료윤리 문제에 대해 의사들이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게 해 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윤리란 한마디로 인간 행위의 옳고 그름, 그리고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실천철학이다.

따라서 어떤 행위가 윤리적인지 아닌지는 그 행위 내용에 대한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여하에 절대적으로 좌우된다고 할 수가 있다.


별도의 교육과정 필요

의학적 행위가 비교적 단순했던 예전에는 의사가 달리 윤리적 딜레마로 인식할 만한 것들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

설사 의학적 지식과 기술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그것은 오랫동안 의사들의 행동지침이 되어온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의사 각자의 생활 그리고 교육과정에서 습득한 일반적 윤리·도덕 지식만으로도 해결이 되는 일들이었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의사들에게 요구되는 많은 의학적 행위들은 이들 행위의 윤리성 여부에 대한 별도의 판단이나 교육을 받지 않는 한 의사들 스스로도 그 행위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날 의학교육 과정 중에 의료윤리에 대한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고 의사들 사이에서 의료윤리에 대한 논의가 일상적으로, 그리고 좀더 심도 있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몇 해전, 미국에서 실시한 한 조사에 의하면 내과의 경우 입원환자의 30%, 외래환자의 21%에서 의사들이 치료방법 선택이나 환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적잖은 윤리적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질문형태가 달라서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에 의사들을 대상으로 이와 유사한 질문 조사를 실시 한 일이 있는데 역시 우리 나라 의사들도 최근 들어 많은 의료 윤리적 딜레마 상황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전국 수련병원 의사 94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어느 연구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7.2%가 환자진료 과정 중에 윤리적 갈등을 경험했다고 응답하고 있다.

문제는 의사들이 경험하는 윤리적 딜레마 상황들이 대부분 상식적인 일반윤리나 고전적 의사 윤리지침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다양해진 의료윤리적 갈등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아진 것은 복잡해진 사회구조와 여기서 비롯되는 까다로운 인간관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의료윤리적 갈등상황을 초래하는 의료적 상황이 예전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즉, 첫째는 이미 상당부분 의료화 되어 있는 의학기술, 특히 생식이나 생명관련 기술들이 최근 들어 크게 발달한 일이다.

예컨대, 여러 가지 생명연장 기술이나 초음파 진단기술, 그리고 인공적 수태기술과 사망시기에 대한 자세한 학문적 연구가 이루어진 것들이 바로 그것인데, 이런 새로운 지식과 기술들의 출현은 환자를 얼마나 더 치료해야 할지, 언제 치료를 중단해야 할지, 수정난을 어느 수준까지 연구 대상으로 해야 할지 등에 관한 복잡한 의문들을 제기함으로써 인간생명의 문제와 관련해서 의사들의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들은 이런 새로운 의학기술이 갖는 문제점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여러 가지 의료윤리 이론과 원칙에 따라 옳은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둘째는, 제한된 의료자원과 이를 정당하게 분배해야 하는 문제이다.

의료인력과 시설이 날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적절한 의료혜택을 못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있는 시설과 인력도 가령 의료비 지불제도나 의료전달 체계상의 제약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현실도 타당성의 원리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윤리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제한된 의료자원을 놓고 만성질환과 급성질환, 그리고 예방적 진료와 고가의 진단치료 행위가 벌여야 하는 경쟁을 해결하는 문제를 포함한 이들 자원 활용 결정을 올바르게 하기 위한 일도 오늘날 의사들에게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물론 예전과 달리 지금은 의료가 사회보장 차원에서 제도화되고 규격화되는 경향이기때문에 우선 제도적인 측면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의사 각자도 제도에 대한 이해와 올바른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하며 이 일 또한 적절한 학습을 거치지 않으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셋째는, 전통적 의사-환자간의 관계 변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으로, 환자는 일방적인 의사의 진단·치료 지시에만 따르도록 돼 있는 소위 온정주의적 모델로 유지가 되었었다. 예컨대, 전에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어떤 언행도 그것이 윤리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환자는 그들의 질병상태나 진단치료 과정이 정확히 설명되기를 원하며, 의사에게 복종만 할 필요가 없게 됐으며,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믿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환자 스스로도 그들의 건강문제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의식과 함께 점차 존중받는 생각으로 정착이 되어가고 있는 일이어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현상은 결국 의사들로 하여금 진실된 설명의 의무와 고지된 동의, 그리고 환자의 비밀보장과 같은 윤리문제에 대해 좀더 정확한 이론과 실제를 배우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이다.

이제 의과대학에서의 윤리교육은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누구나 필수적으로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안 되는 기본 필수과목이 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