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에 관한 국내 연구 거의 없지만 대부분 심각한 수준

1. 외과 의사의 스트레스를 잡아라

2. 환자 예후 나쁠 때 스트레스 최악

3. 삶의 질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 시급



어떤 내과 의사는 만약 세상을 둘로 나누면 의사와 적이라고 말한다. 매일 수많은 환자를 보다 보면 체력이 딸려 자연히 말을 최소화 하게 되고 환자와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내과보다 하루 진료하는 외래 환자 수는 적지만 매일 생과 사의 경계를 다루는 외과 의사들의 정신적, 육체적 부담감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외과 의사의 번아웃에 관한 국내 연구는 거의 없으나 대부분 심각한 수준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과도한 업무량도 스트레스

외과 의사의 가장 큰 보람은 환자가 수술 후 합병증 없이 무사히 퇴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환자 예후가 좋지 않을 때를 가장 스트레스적인 상황으로 꼽는다.


고령의 고위험군 환자나 응급 환자를 주로 상대하는 흉부외과 A 전문의는 "이들 환자는 주위 장기나 조직이 약해 수술 도중에 악화되기도 하고 수술을 무사히 마친다해도 다른 고비가 많아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부담이 크고 체력 소모도 많다"고 말했다.


때문에 처음 수술을 시작했을 땐 환자가 마취를 깨고 의식이 회복되는지, 신경학적 합병증이나 하반신 마비가 없는지, 출혈은 없는지, 간이나 콩팥 기능이 유지되는지 불안해 수술이 끝난 후에도 환자 곁을 꼬박 지키기도 했다고 한다. 3일 연속 밤을 새고 수술하고 회진을 돌았던 적도 부지기수다.


전문의는 "되돌아 생각해보면 환자 곁을 지킨다고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2~3년간 집에도 가지 않고 중환자실에 머물렀다"면서 "그러나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지금은 출혈이 없고 생체 징후가 안정적이면 다음 수술을 위해 몸을 추스른다"고 말했다.


인력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업무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도 외과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다. 수년간 지속적으로 외과 정원이 미달되면서 남은 인력들의 업무량이 지나치게 늘어나고, 또 지원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A 전문의는 "1년에 25~30명 가량이 흉부외과에 지원하고 있는데 이 중 중도탈락이 10%"라면서 "이 인원으로 전국의 흉부외과적 응급환자를 어떻게 다 볼 수 있겠냐"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적은 인원을 쪼개 수술실에도 들어가고 수술 후 환자 관리도 해야 하는 전공의의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


"보람 없어진 외과는 3D 업종"


대한전공의협의회가 2010년 전국 전공의 7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2.2%가 주 100시간 이상, 26.2% 80~100시간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절반이 넘는 67%가 주 7일 근무를 하고 있었고 74.4%가 자신의 업무량이 과다하거나 매우 과다하다고 응답했다.


A 교수는 "전공의들은 하루에 3~4시간 겨우 수면을 취하고 전문의들도 5~6시간씩 자며 부족한 공백을 채우기 위해 환자 침대 옆에 붙어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며 "10년 전 전공의 시절 "10년만 지나면 좋아질 것이다"라는 말을 늘 들었었는데 지금도 변한게 없다"고 말했다.


혈관외과 B 전문의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간단한 시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져 고난이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줄어들고 있다"면서 "이는 결국 환자 피해로 돌아가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과를 "3D 업종"이라 표현하며 한탄하는 의사들도 있다.


지방에서 봉직의를 하고 있는 일반외과 C 전문의는 "과거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환자를 치료하는 보람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환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은데다 경제적인 보상도 없고 스트레스가 쌓여 일에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 발달로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환자들이 의사의 전문 지식보다 온라인 상의 출처 없는 지식을 더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C 전문의는 "다른 의사와의 상담 없이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온 환자들은 자신이 마치 전문가인냥 의사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다"면서 "환자와 의사간에 서로 믿음이 무너지니 좋은 관계 형성이 어렵다"고 말했다.


지방 병원이라는 한계도 발목을 잡는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2011 주요 수술 통계"에 따르면 요양기관 소재지별 수술 건수는 서울과 경기도가 각각 26.6%, 19%를 차지해 가장 많고 나머지 지역은 모두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C 전문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환자들은 무조건 서울에 있는 병원만 고집한다"면서 "막상 서울에 갔다가 대기 시간이 길어 다시 돌아오는 환자들을 보면 허탈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지역에서 봉직의로 일하고 있는 흉부외과 D 전문의는 우스갯소리로 "불편함이 적으니 환자 스스로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이동하지 않겠냐" "서울보다 지방 병원에 오는 환자 중에 오히려 고난이도 환자가 더 많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사명감에 맞는 보상도 있어야

언제 응급 환자가 발생할 지 몰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새벽에 장시간 서서 수술할 때도 있지만 이에 대한 보상이 매우 낮다는 점도 외과 의사들을 기운 빠지게 한다.


C 전문의는 "80년대 초반 전공의 시절에는 외과 의사가 선망의 대상으로 경쟁률도 5 1 정도로 매우 높았다"면서 "그러나 보험수가가 그때와 비교해 거의 달라진 게 없고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면서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직업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리 고생해가며 수술해도 일반 서비스보다 가격이 저렴해 외국에 살고 있는 교포들도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돌아간다"면서 "한국에서의 체류 비용과 왕복 비행기 값을 포함해도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한다"고 말했다.


소아외과 E 전문의는 "소아외과를 하려면 일반외과를 마치고 추가 수련이 필요하지만 보험수가는 소아를 수술한다는 이유로 성인보다 낮게 책정하고 있다"면서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원가는 더 열악하다. 기본적인 수술실 운영을 위해 들어가는 시설과 전담인력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감안하면 외과 개원 자체가 불가능하다.


중앙대병원 외과 박중민 교수는 "레지던트 기간동안 힘든 것보다, 레지던트를 마치고 난 뒤 전망이 나쁘기 때문에 외과 지원자가 없는 것"이라면서 "외과는 가장 기본이 되는 분야이므로 실질적인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 전문의도 "부푼 꿈을 안고 졸업해도 수술 외 비급여 진료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데 누가 외과를 지원하려 하겠냐"고 따졌다. A 전문의는 외과 의사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다른 스트레스 요인을 최대한 줄이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타과에 비해 변화 속도 빠르다

예를 들어 응급 환자가 발생해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비어있는 중환자실이 없다면 이 또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경제적인 요인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월급을 많이 준다고 전공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 전문의는 "최근 거의 의무적으로 펠로우 과정을 거치면서 수련 기간이 2~3년 늘어, 남자는 40세나 돼야 수술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면서 "출발점이 지나치게 늦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외과 의사들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중앙대병원 외과 박중민 교수는 "외과는 다른 과에 비해 변화 속도가 빠르다" "예를 들어 전공의 시절에 없었던 수술이 최근 몇년 사이에 일반적인 수술로 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빠르게 변하는 만큼 외과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보이는 것보다 더 많다"면서 "현재 상황보다 전망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봉생병원 외과 허 길 과장은 "비록 어려운 현실이지만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일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돌아오기 마련"이라면서 "당장 눈앞에 그 목표가 보이지 않겠지만 한 우물만 파면 그 우물속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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