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내분비외과와 이비인후과, 세부 전문의 명칭두고 갈등

갑상선암이 급증하면서 이 분야의 원래 터줏대감 격인 외과와 새로운 진출자인 이비인후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와 대한이비인후과학회가 갑상선 세부전문의에 대한 명칭 사용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최근 대한의학회가 외과가 신청한 갑상선내분비외과 세부전문의를 보류하면서 상황이 더욱 뜨거워졌다. 갑상선내분비외과측은 위장관, 소아외과, 간담췌, 대장항문 등이 인정되면서 유독 갑상선내분비외과 세부전문만이 보류된 배경에 이비인후과의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
갑상선내분비외과 세부전문의가 거부당하자 외과 의사들의 불만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초 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홈페이지에 박정수 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박 교수의 글을 단지 회원 한명의 의견으로 치부하기엔 학회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막강하다. 갑상선 수술 전문 외과의사 1호라 불리는 그는국내에 갑상선 수술의 기틀을 잡은 이 분야의 거목이다.

그는 "갑상선내분비외과 세부전문의가 이비인후과학회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며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며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라는 소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주객전도 아니면 적반하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가시 돋친 목소리를 쏟아냈다.

또 "갑상선수술은 이비인후과 영역이라고 공공연히 외치고 있다"며 "갑상선 내분비외과 의사든 이비인후과 의사든 갑상선 수술만 잘하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할 수 있지만 원조는 밝혀야 된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비인후과학회를 이처럼 직설적인 화법으로 비판할 수 있는 근원에는 갑상선수술을 시작하고 개발 발전시킨 것이 외과라는 자신감이 자리자고 있다.

1909년 갑상선수술로 노벨의학상을 받은 스위스의 Theoder Kocker도 외과의사였고, 전 세계적으로 갑상선수술은 외과의사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갑상선수술 방법을 이비인후과의사들에게 강의해 준 사람도 바로 그다.

그래서 이비인후과 의사들 때문에 갑상선 세부전문의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쉽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소의영 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장은 "갑상선수술을 누가 하든 그것은 상관 없다. 판단은 환자들의 몫이다"며 "이비인후과 교수들과 연구도 하고 논문도 발표하는 등 갈등은 없다.

단지 세부 전문의에 대한 명칭 사용을 두고 이견이 있을 뿐이다. 이비인후과와 논의해 잘 해결될 것으로 본다"라고 문제의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비인후과 학회는 잠잠
갑상선내분비외과의 격앙된 분위기에 대해 이비인후과학회는 표면적으로는 잠잠하다. 일단은 갑상선수술을 외과에서 배웠기 때문에 맞대응을 하기에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인 듯 했다.

박 교수가 올린 글에서 자신이 갑상선 수술을 알려줬다고 실명을 밝힌 최종욱 원장(관악이비인후과)에게 전화를 했다. 최 원장은 "박정수 교수는 내가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분에게 갑상선수술을 배웠고 또 존경하는 사람이다"며 "이번 사항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라고 극도로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두경부외과학회 갑상선위원장인 손영익 교수(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도 개인자격으로 무어라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손 교수는 "이미 두 진료과에서 갑상선수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술을 누가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며 "그런 글을 왜 올렸는지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해 내가 개인자격으로 말하는 건 옳지 않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갑상선 수술의 적임자

외과 의사들의 강력한 저항에도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갑상선암 수술의 적임자로 주장하는 이유는 수술 후 목소리 보존 등에서 외과보다 낫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이비인후과의 한 교수는 "두경부외과 의사들의 갑상선 수술 실력은 세계에서 최고일 정도로 우수하다"며 "갑상선 수술에서 중요한 후두신경을 잘 보존해 목소리를 잘 지키는 점이나, 목에 있는 다양한 신경절을 보존하는 것은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또 "겨드랑이 등을 통한 내시경 수술로 수술후 흉터 문제도 깔끔하게 해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비인후과학회는 몇 년 전부터 차곡차곡 갑상선수술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진입시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외과 교수들을 설득해 "이비인후과 & 두경부 갑상선센터"라고 진료과 명칭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갑상선 수술을 시작했고, 갑상선수술을 이비인후과의사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도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펼치고 있는 "갑상선암 바로알기" 대국민 캠페인은 갑상선에 대한 최신 정보를 비롯한 전국의 이비인후과 병원의 의사들이 링크돼 있고, 갑상선암 바로알기 QR코드, 갑상선암 수술 전문병원 찾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과거 의사들은 모두 같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젠 옛말일 뿐이다. 진료과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역 다툼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볼성 사나운 모습도 종종 보인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그야말로 의료계 내의 혜안이 필요한 시기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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