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력한 금연정책 요구하는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

호주는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정책을 펼치는 국가로 꼽힌다. 2011년엔 모든 담뱃갑 포장을 통일하는 "디자인 없는 담배(plain cigarette packets)" 카드를 꺼내들어 담배 업체와의 소송까지 치렀다. 호주 최고법원은 지난해 8월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담뱃갑 디자인을 규제하는 것은 지적재산권 침해나 국제상표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결했고,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제조회사의 로고와 색깔, 홍보 문구, 이미지가 완전히 배제되고 올리브색 바탕에 검은색 상표명만 쓸 수 있는 새 담뱃갑의 나머지 면에는 경고문구나 끔찍한 경고사진이 뒤덮고 있다. 더불어 2018년부터는 2000년 이후 출생한 사람에 대해 영구히 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시행, 담배와의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전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중순 담뱃갑 포장 규제 및 첨가물 금지를 골자로 한 금연 정책을 발표했다.

말레이시아는 한발 더 나아가 담뱃갑뿐 아니라 담배 개비 하나하나에 담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문구를 넣는 규제안을 제정하고 공공장소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서홍관 회장(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본부장)은 "담배는 뇌혈관질환과 심혈관질환, 10개 정도의 암과 연관성을 가지며 폐가 망가지고 위궤양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적극적인 금연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흡연 해악은 너무도 다양

서 회장은 지난해 11월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서울 총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담배회사 앞에서 그들의 부도덕성을 규탄하는 1인시위를 펼친 바 있다.

담배회사들이 대한민국에서 매년 8000억원씩 벌어들이는 동안 국민 5만 5000여명이 희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담배 회사의 이익을 위해 매일 150명 가량이 사망하는 꼴이다.

그는 "담배에는 60여가지의 발암물질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외에도 일산화탄소, 중금속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각각의 물질이 어떻게 작용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모두 알 수 없고 그렇게 많은 물질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임신 중 흡연은 태아사망과 유산, 태아의 저체중 등을 일으킬 수 있고, 여성 불임과 남성의 발기부전 등 다양한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흡연자의 역설을 보여주는 연구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하긴 무리다. 학문적인 측면에서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해석해야 할 이유가 있을지라도 국민들에게 "담배를 피라"고 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금연운동에서 지난해 가장 큰 성과는 금연구역이 확대된 것이다. 지난달 8일부터 음식점과 호프집, 카페 세 군데를 대상으로 150 ㎡가 넘는 영업점의 실내 완전 금연이 시작됐다. 그러나 면적에 관계 없이 금연이 시작되는 것은 2015년 1월 1일로 아직은 반쪽짜리 성과다.

서 회장은 "왜 국민들이 2년이나 더 간접흡연에 노출돼야 하는가. 면적을 기준으로 한 정책은 아무런 근거도 없고 이런 식으로 금연 정책을 펼치는 나라도 없다"고 비판하며 법률을 개정해 하루라도 빨리 완전 실내 금연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담뱃값 선진국 수준으로 인상해야”

다음 목표는 담뱃값을 인상하는 것이다. WHO Margaret Chan 사무총장도 FCTC 서울총회에서 "한국의 담배 가격이 너무 낮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담뱃값이 인상된 것은 2004년 12월로 당시 500원이 올랐다.

가격을 얼마나 인상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정과 계산, 현실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사람마다 가격 설정 기준이 달라 정확한 수치를 콕 집어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선진국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금연운동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서 회장은 "가격을 선진국 수준에 맞추되 우리나라와 소득수준이 다른 것을 감안, 구매력을 기준으로 보정해야 한다"면서 "대략적으로 계산해보면 거의 8000원 선이다. 여기에 맞추기 어렵더라도 최소한 4500원선은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FCTC의 기본 이행사항으로 담배에 경고그림 혹은 사진을 도입하는 것도 시급하다. 그림이나 사진의 경우 문구보다 담배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와 담배의 의존성 문제를 명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서 회장은 "현재 담배 포장에 경고그림을 삽입한 나라는 63개국이며, 그림의 크기가 담뱃갑 크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도 30개국"이라면서 "WHO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세계 197개국 중 경고 표기에서 거의 꼴찌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앞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디자인 없는 담배로 옮겨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금연 진료도 보험혜택 필수

더불어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나는 세금 수입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흡연 예방이나 흡연자들의 금연 진료 지원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배로 인한 세금 수입은 7조원에 달하고, 이 중 국민건강증진기금만 1조 6000억원이다. 그러나 금연사업에 사용하는 액수는 200~300억원에 불과하다. 서 회장은 "금연사업에 들어가는 금액은 담배세 총액의 0.5%에도 미치지 못하고 국민건강증진기금의 2~3%에 불과하다"면서 "흡연자들이 충분히 많은 세금을 지불해온만큼 이젠 이 세금을 활용해 금연할 수 있도록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흡연자의 70~80%는 금연을 원하고 있지만 1년에 금연 성공률은 5%에 머물고 있다. 담배를 끊을 경우 니코틴 중독으로 인해 불안이나 초조, 짜증, 집중력 장애 등의 금단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나라에서 금연 실패는 개인의 의지 문제나 생활습관의 문제, 기호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서 회장은 "니코틴 대체제와 경구용 금연 치료제를 사용하면 금단 증상을 줄여 금연 성공률을 2~3배 높인다"면서 "스스로 담배를 끊을 수 없는 사람에는 이런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 흡연자와 의사들이 금연의 약물요법을 잘 모르거나 약물요법이 보험혜택을 받지 못해 널리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서 회장은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이름이 "의료보험"에서 "건강보험"으로 바뀐 이유는 질병 치료뿐 아니라 예방적인 의료서비스에도 보험을 지불하자는 취지"라면서 "수명 1년을 연장하기 위해 드는 비용을 따져봤을 때 금연 진료가 고혈압이나 당뇨병 치료보다 비용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질병분류기호(ICD)에서도 흡연은 "담배로 인한 정신적 행동적 장애"로 분류돼 있다"면서 "전체 인구 중 1000만명 이상이 담배를 피우는 현실에서 흡연이라는 질병을 치료하는데 보험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의사라면 반드시 먼저 끊어야

서 회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발암물질 시판을 막는 것이다.

그는 "담배는 국민들이 병에 걸리게 할 뿐 아무런 이득이 없기 때문에 제조 및 매매를 금지하는 것이 맞다"며 "다만 하루 아침에 완전 금지가 어려운 만큼 중간과정이 필요하다. 몇가지 핵심적인 것을 달성하며 일단 급한 불을 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담배 성분을 분석하는 기구나 기관이 있어야 하고, 법망이 허술한 외국에서 국내 담배 회사들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행사를 주최할 수 없도록 여론도 형성돼야 한다. 담뱃값을 인상하면 밀수가 문제될 수 있기 때문에 대비책 마련도 시급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흡연자들의 인식 변화다.

서 회장은 "건강을 잃어버리면 가정은 물론 모두 다 잃어버리는 것"이라면서 "담배를 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 아직 금연에 성공하지 못한 의사들에게도 쓴소리 했다. 그는 "의사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소방관이 방화를 저지르거나 경찰이 도둑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건강을 지키는 의사가 담배를 끊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흡연하는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금연 권고에도 소극적이기 때문에 직업 수행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새해를 맞아 더 많은 사람이 금연에 성공하고 건강한 삶을 되찾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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