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음주운전의 중요한 증거인 채혈된 혈액에 대해 수사기관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음주운전에 무죄를 확정하는 판결이 있었다. 만일 법률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판결 결과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범죄 영화에서 흔히 범인을 체포한 경찰관이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미란다 원칙이라는 미국연방대법원의 1966년 판결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의 판결에서 범죄예방이나 범죄피해자의 권리보다는 범죄자의 권리가 더 중요하지 않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나, 형사소송법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절차의 정당성’이라는 확고한 원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법원도 2000년 이 원칙을 확인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응급실로 내원한 운전자의 음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의료인에게 환자의 혈액을 요구하는 경우 정당한 절차가 무엇이며, 환자의 혈액을 중요한 증거로 사용하려고 한다면 원칙적으로 환자의 명시적인 승낙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의료기관에 교통사고 등으로 내원하는 환자가 의식이 없거나 명시적으로 음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채혈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료인들이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대법원 2012년 11월 15일 선고 2011 도 15258 판결에서는 ‘피해자가 의식불명이고 호흡조사에 의한 음주측정이 불가능하며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상태로 법원으로부터 압수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피해자의 신체 내지 의복류에 주취로 인한 냄새가 강하게 나는 등 형사소송법 제211조 제2항 제3호가 정하는 범죄의 증적이 현저한 준 현행법인 요건과 더불어 교통사고 발생 시간으로부터 사회통념상 범행 직후라고 볼 수 있는 시간 내’라고 명시하고 있다.

바로 이송된 응급실에서는 범죄 장소에 준하기 때문에 영장 없이 의료인에게 혈액을 체취하게 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사법당국이 지체 없이 법원으로부터 압수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 것은 사법당국의 몫이 된다. 만약 환자가 응급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위에 판결이 열거한 조건 중에서 의식이 있거나, 음주에 대한 강한 의심 될 만한 사항이 없으며, 사고 발생 후 많은 시간이 경과하거나 최초진료를 담당한 병원이 아닌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때는 반드시 환자의 명시적인 동의가 있거나 또는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만 환자의 혈액을 사법당국에 의료기관이 건네 줄 수 있다.

특히 혈액에 대한 개인정보지배권은 환자에게 있으며, 환자는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의 주체이며, 헌법의 최고 이념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이해된다. 하지만 이런 기본권도 절차의 정당성에 의한 강제 채혈이 가능하고 이 조건이 판결에서 제시한 원칙이 된다.

의료기관은 긴급채혈의 조건에 만족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법당국에 대해 법원의 영장을 지참하도록 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료기관인증평가를 받은 의료기관의 경우 응급의료를 위한 진단 등을 위해 채혈한 혈액(전혈)을 최소 1주일 이상 의료기관이 보관하고 있으므로, 적법한 절차에 따른 음주운전자의 혈액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사법당국에 설명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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