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 너무 낮고 사생활도 없어

5년후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하는 맹장수술을 받기 위해 아픈 배를 움켜쥐고 여러 병원을 돌아다녀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는 몇몇 대학·대형병원을 제외하고는 마취과 의사의 절대수 부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마취과 전문의는 숫자상으로는 2,481명이지만 은퇴한 원로의사, 일반의로의 개업, 그리고 500~600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 통증치료에 전념하는 마취 전문의 등 1,000여 명을 제외하면 수술현장을 지키는 마취 전문의는 1500여 명에 불과하다.

현재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는 4년차 92명, 3년차 150명, 2년차 174명, 1년차 184명으로 5년전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 최근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도 수련기관 중 마취과 전공의가 한명도 없는 곳이 전국에 33곳에나 달한다.

그렇다고 향후 부족한 마취과 의사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수련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마취통증전공의 중 절반 가량은 전문의 취득후 "통증클리닉" 등으로 개업할 계획이어서 수술마취 인력이 해결되기에는 거리가 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만 수련기관에서는 수술과 환자케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마취 전공의가 최근 다소나마 증가하자 우선은 숨통이 트였다며,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왜 의사들이 마취과 전공을 외면하고 있나.

마취과가 일은 힘들고 어렵고 의료사고에 크게 노출돼 있는 등 나쁜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다 보험수가마저 형편없는 현실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김종학 대한산과마취학회장(이화의대 동대문병원)은 "흔히 말하는 3D의 대표적인 분야다.

게다가 마취업무의 상당부분이 수가적용이 안되고 있다.

병원에서도 경영에 큰 도움이 안돼 다른과 전공 의사보다 대우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기피이유를 전했다. 이 현상은 일부 의료기관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슷한 상황에처해 있는 것이 마취과의 현주소이다.

그는 또 마취전문의들은 수술전부터 회복실에서까지 환자를 지켜보아야 하는데 최근엔고난도의 수술이 많고 과거엔 거의 수술을 하지 않았던 80세 이상의 고령환자 수술도 많아지는 추세로 높은 마취위험도 아래서 수술에 참여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야간 응급수술시 시도때도 없이 불려나가는 등 하루 24시간 사생활도 없는 긴장과 격무의 연속인 마취과를 누가 하겠느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이국현 서울의대 기획실장(마취과 교수)도 "수술건수 증가와 고난도 수술이 늘어 마취의사가 턱없이 부족, 최근 촉탁교수 3명을 가까스로 확보했다"며, 주5일제 근무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주말에도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마취과의사는 갈수록 구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이같은 현실은 마취에서 일반의사나 통증클리닉으로 진출 하는 등 이직률이 37.2%(중소병원협의회 조사)로 높아졌고 병원의 부족한 마취의사는 더많은 대우를 해 주고도 충원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병원을 떠난 마취과 의사의 약 70%는 개원을 하고 일부는 몇개 병·의원과 계약을 맺고 출장마취를 하고 있는데 이 경우 수술시간을 어기게 되는 경우가 적지않아 또 다른문제점을 야기하기도 한다.

보건산업진흥원의 전문의 수급현황 조사에 따르면 마취전문의는 2010년 4,300~5,300명이 필요하지만, 현추세라면 적정인원의 절반에 불과한 2,800~3,000명 가량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한마취과학회는 "마취에 대한 보험수가는 다른 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후 7~9%가 인하됐고 여기에 치료재료대가 포함돼 있어 실제수가는 상당히 삭감됐다"며 불만이 가득하다.

특히 병원경영자들은 포괄수가제(DRG)에서 마취수가를 외과의의 전체수입에 포함, 수술에 대한 기여도를 낮게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장성호 대한마취과학회이사장은 "마취통증의학과는 두통·어깨통증·3차신경통·신경통·허리통증 등은 통증분야에서, 중환자실·이식수술·심폐소생술·무통분만·수술후무통·암성통증·수술마취 등은 마취분야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현재의 수가체계로는 갈수록 수술현장에서 마취의사를 내몰게 될 것"이라며, 빠른 시일내에 합리적인 수가조정 등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대한민국의 수술실 마취 공백 사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세계적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우리나라의 의학. 지금부터라도 거품을 걷어내고 수술실의 무영등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확실한 진단과 처방이 산적한 의료현안 중 최우선 과제의 하나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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