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

메디컬드라마 "골든타임"이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3회 연장, 25일 23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동안 응급실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의사, 심평원의 심사평가 기준 등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내며 많은 의사들의 공감을 샀다. 메디컬드라마는 그저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로 한정시키던 그간의 편견을 깨고 응급의료 현장에서의 생생한 위급함을 그려내며 호평을 받았다.

거품같은 인기는 그만…
새벽같이 달려와주는 의사가 필요하다!




"의사가 날아오는 피를 피해? 한번 피하면 끝인 것 같아? 피 피하는 바람에 기구 놓치고, 그 바람에 시야 놓치고, 새로 시야 확보하는동안 피는 더 나고, 출혈점을 못찾게 됐어. 몰라서 저지르는 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유치원생까지다. 피가 날아오는 곳이 출혈점이고, 피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잡아야할 상대야."

"좋은 타이밍이라는 게 따로 있을까? 모든 운이 따라주고 인생에 신호등이 동시에 파란불이 되는 때는 없어. 모든 것이 완전하게 맞아 떨어지는 상황은 없는거야. 그게 중요하고 결국 해야 할 일이면 그냥 해. 인생에 모든 것이 딱 떨어지는 타이밍은 없어. 다만 지금 네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


골든타임 주인공 해운대세중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인 최인혁 선생은 "최쌤앓이"라는 신조어와 숱한 명대사를 쏟아내며 환자를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의사로 그려냈다.

드라마의 한 장면 장면을 보면 현실과 어딘가 너무 닮아있다. 응급환자가 생기면 다짜고짜 달려가고 순간의 선택에 환자 생명을 맡기는 긴박감이 그렇다. 또한 평소에는 소홀하지만 유명인에는 각 진료과들이 알아서 컨설트를 자처하는 장면, 유명인 치료를 홍보도구로 이용하려는 병원 등이 불편한 현실 한 켠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드라마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자 최인혁 선생의 롤모델인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에도 덩달아 관심이 쏠렸다. 한달에 한두번 쉴까 말까 하면서 환자밖에 모르는 인물이 과연 실존하는지에 대해 집중 조명됐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한달에 두어번 집에 들어가 쉰다. 남들 퇴근하는 시간부터 환자가 많아진다. 취미 생활인 밴드공연을 보는 것도 일년에 손꼽힐 정도로만 즐긴다. 석해균 선장 치료 이후 유명인사가 됐지만, 묵묵히 제 자리에 있다.

이 교수에게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하는지 묻자 "사실과 다르게 지나치게 과장된 부분도 많다"며 별로 챙겨볼 시간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외상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였다. 마침 보건복지부에서 권역별 중증외상 특성화센터 지정 예고도 발표했다. 그러나 한순간에 불과한 인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드라마의 인기요? 석해균 선장 이후의 주목이요? 한순간의 거품이죠. 그 뒤에 나아진 게 뭐죠? 중증외상센터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저라고 이런 삶이 100% 좋다고 볼 수 있나요? 그저 지금 이 순간 행동에 따라 환자 생명이 오간다는 사실을 인식할 따름이죠. 어떤 경우에서도 환자생명이 우선시된다는 신념일 따름입니다. 의사로서 당연한 것 아닌가요?"

사실 그는 석해균 선장 치료 이후 과도한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렇다고 주장을 멈출 수도 없었다. 자신을 찾아오는 언론에 여전히 열악한 외상의 현실을 알리지 않으면 더 열악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반짝이는 인기를 앞세운 부작용도 많았다. 사람들이 외상에 대해 잘 모를 때보다 더욱 심각할 지경이다.

"외상이 인기를 끌자 난리도 아닙니다. 모병원, 모병원, 국공립병원조차 "까마귀"들이 가득합니다. 정부 지원금만 탐내는 까마귀요. 그들이 외상을 내세워서 정부 지원금을 받고 이를 하드웨어 구축 정도로만 쓰니 문제가 됩니다. 중요한 건 하드웨어가 아닌, 거기서 일할 사람, 즉 소프트웨어입니다."

이 교수 팀에도 정경원 선생과 김지영 간호사가 없으면 외상센터 운영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이들에게 술 한잔의 여유나, 전체 팀 회식, 가족들과의 오붓한 저녁식사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응급 환자, 생명의 사투를 달리는 수술 등이 있을 뿐이다. 남들이 즐겨찾는 골프, 여행은 사치일 뿐이다.

사실 일부 의료진이 5시에 맞춰 퇴근할 때 부럽기도 하다. 퇴근하는 발걸음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수익이 많이나는 진료과는 인센티브 액수가 최대 10배 이상 차이난다. 그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는 진료과이기 때문에, 열악한 적자 속에 허우적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고민을 할 때도 있다. 그것도 잠시, 위급한 순간이 다가오면 다시 외상센터에서 환자를 돌보느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지낸다. 사실 몹시 힘들다. 같이 일할 사람이 없어서다.

"외상은 이제 인프라의 문제가 아닙니다. 같이 일할 사람이 필요해요. 새벽 언제라도 달려와서 일해주는 사람 말이에요. 앞에서 외상센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람이 아니라 뒤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긴급한 환자를 살려내는 의사요. 권역별로 쪼갤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곳이라도 집중적으로 외상을 제대로 치료하고 외상전문의를 키워내야 예방가능한 사망률을 낮출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됩니다."

그는 열악한 현실을 주장하는 의료계에도 쓴소리를 냈다. 미국외과학회장은 국회에 직접 찾아가 외과의사가 왜 부족하고 얼마나 필요한지, 어떤 중요한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한국처럼 무조건 앓는 소리를 해봤자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왜 힘들다고만 하는거죠? 사회가 망했나요? 부모님이 돌아가셨나요? 안된다고 앓는 소리해봤자 얻는 것이 뭔가요? 국민들을 대상으로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정부기관도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곳 아닌가요?"

작은 체구에서 끊임없이 강한 어조가 흘러나왔지만 절망할 때도, 희망이 없다 느낄 때도 많다. 그래도 외상센터에 실려온 환자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저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저도 이렇게 해야 먹고 살죠"라며 겸허히 외상센터로 발 길을 돌렸다. 드라마 같은 현실, 현실같은 드라마 속 주인공 최인혁 선생, 이국종 교수가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한단 사실에 참 따뜻하고 행복하다 느껴졌다. 그리고... 나아진 줄만 알았던 외상센터의 현실이 너무나도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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