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시집살이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마시던 한잔 두잔이 어느새 폭음과 폭언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주부 이주현(가명, 49)씨는 가정불화로 인한 괴로움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집에 홀로 있는 시간 동안 맥주를 한두캔씩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편과 아이들 몰래 낮에만 조금씩 마셨으나 어느새 온종일 술을 마시게 됐다. 잔뜩 취한채 귀가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맞이했고, 급기야 술을 마시고 가족에게 폭언을 퍼붓는 지경에 이르렀다. 음주 후 자신의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씨는 전형적인 "키친 드렁커(알코올 중독에 빠진 주부)"다. 여성주간(7월 1~7일)을 맞아 가정 내 주폭(酒暴), 키친 드렁커를 조명하고, 해결책을 찾아본다.


키친 드렁커는 부엌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알코올 의존증에 빠진 주부들을 일컫는 말로, 최근 여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늘면서 나타난 신조어다.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한달에 1회 이상 술을 마시는 여성의 비율은 2005년 36.9%에서 2010년 43.3%로 증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5년간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여성 알코올성 정신장애 진료환자 수는 2006년 1만 1221명에서 2010년 1만 4097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0대 환자가 가장 많았고, 50대, 30대 순으로 나타났다.

다사랑병원 김석산 원장은 "최근 몇년 사이 여성 환자가 3~4배 늘었다"면서 "과거에는 100명 중 2.5명이 여성 환자였다면 이제는 10명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키친 드렁커가 알코올 의존증에 빠지는 원인은 대부분 가정 내에서 출발한다. 배우자나 자녀, 시집살이, 경제 문제 등에서 오는 우울증이나 불안증, 고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다. 특히 혼자 마시는 만큼 빨리 취하고, 술 자체를 자기 위안이자 친구로 삼게 돼 스스로 많이 마신다는 자각을 하지 못한다.

이처럼 자기 치료를 하기 위해 마시는 술은 오히려 우울증과 자살 위험도를 높일 수 있다.

디딤정신과의원 최상철 원장(노원구의사회 의무이사)은 "많은 사람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자살을 행동화한"면서 "알코올 의존자의 40% 정도가 자살을 시도하며, 7%는 자살로 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알코올 의존의 발병 연령이 낮거나 발병 기간이 장기화되고, 알코올 관련 내과적 질환이 있으며 우울증을 동반할 시 자살 위험성이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성 환자들은 병원을 쉽게 찾지 않고, 치료 순응도도 낮은 편이다.

김석산 원장은 "남성은 저항이 심하긴 해도 막상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가면 잘 따라오는 반면 여성은 저항은 거의 하지 않지만 치료 자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서 "이 경우 원인이 되는 심리적 요인에 어떻게 접근하고, 습관과 성격을 어떻게 바꾸는 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도 여성 환자들의 치료에 걸림돌이 된다.

김 원장은 "아직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여성의 음주 행위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다"면서 "따라서 가족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치욕을 느껴 음주 문제를 더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키친 드렁커는 아침에 가족들이 집을 나선 뒤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그러나 가족들이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면 양치질을 하거나 잠을 자는 등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 초기에는 가족들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감추기 어려울 만큼 의존성이 심해졌을 때 가족들이 알아차리게 된다.

김 원장은 "갑자기 집안일을 소홀히 하기 시작하거나 옷매무새가 흐트러지는 등의 변화가 있으면 알코올 섭취를 의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알코올 의존증은 병이지 그 사람의 인격이 아니다는 생각이 필요하다"면서 "가족들도 조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알코올 의존증이 정신이나 신체 문제에서 나아가 가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 홍보와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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