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5일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의료기기산업은 이렇다할 대응책 마련없이 긴 한숨만 내쉬고 있는 실정이다.

한미 FTA 협정문 "제 5장 의약품 및 의료기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한국 의료기기 관련제도가 보험적용여부 및 가격결정에 있어 미국 의료기기 회사에게 다소 유리한 제도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독립적 검토기구 구성을 통해 정부의 치료재료 보험 등재권한과 가격결정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했다.

의료민영화저지 및 건강보험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는 "이에 대한 피해 상황 파악과 파해규모 최소화를 위한 정부의 대응책이 요구된다"며 "일부 수혜를 보는 산업도 있지만, 의료기기, 화장품, 제약 산업 등에서는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식경제부도 관세 철폐에 따라 미국에서의 의료기기 수입 증가를 예상했다. 반면, FTA 체결로 인해 우리나라도 교역을 넓힐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경부는 "복잡한 협정내용과 절차로 인해 우리 기업의 FTA활용 역량은 높지 않은 편"이라며 "FTA 특혜관세 활용을 위해 필수적인 원산지증명 및 사후검증 등 활용절차와 방법의 복잡성이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무역협회가 조사한 중소기업들의 FTA활용 애로사항은 활용절차 복잡하고 어려워서 28.6%, 자체 시스템 구축 17.1% 등으로 나타났다. 또 기업이 FTA지원에서 바라는 점으로는 FTA 정보인프라 구축 30.1%, FTA 시스템 구축 29.4, FTA 교육 20.9%등을 꼽았다.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박희병 전무이사는 "한EU FTA 때처럼 당장 영향을 알 수는 없는 상황으로 6개월 이상 지켜볼 필요가 있으나, 관세 철폐로 인해 수입 의료기기가 더욱 몰려오게 될 것"이라며 "또 치료재료 가격을 수입의료기기회사가 관여할 수 있게 되면서 국내 시장이 장악하고 있는 소모품 시장까지 침범당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국내 의료기기산업 경쟁력 강화 시급

이런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경쟁력 강화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조사한 2010년 의료기기 사용현황 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3차병원에서 사용한 의료기기 중 수입제품이 95%에 육박했다. 만족도도 수입산이 1.5배 가량 높았다. 국산 의료기기에 대한 만족도가 낮고 구매를 기피하는 이유로는 품질 부족이 24%, 낮은 신뢰도 23%, 사후관리 열악 16% 등으로 나타났다.
진흥원은 "국산 의료기기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제품의 품질향상과 신뢰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국산 제품을 무조건적으로 독려하기 보다는, 특정 제품군에서의 우수한 경쟁력을 내세워 집중 육성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지경부는 올해부터 5년간 덴탈 CT, 환자감시장치, C-arm, 의료영상처리장치(DR) 등 핵심의료기기 13품목의 글로벌 명품화를 위해 총 300억원을 신규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우리 기업이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의료기기를 중심으로 추가 기술 개발, 신뢰성 평가, 연구자 임상 등에 250억 원을 투입한다.

또 의료기기 기업들이 글로벌 진출 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고 있는 해외 인증을 위한 평가기술 개발 등 인증도 지원한다. 여기에 개발자(기업, 연구기관), 수요자(병원), 신뢰성 평가기관이 연계된 "의료기기 상생협력 포럼"을 구성해 사업 실행력을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지경부는 "혁신 역량과 성장의지를 갖춘 의료기기업계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R&D, 인허가, 해외시장 진출 등을 포함한 의료기기산업 발전 전략을 올 상반기 중 관계 부처와 공동으로 수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산 품질강화는 업계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일부 지원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의료기기업계는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던 의료기기산업이 경기불황과 FTA, 대기업 진출 등으로 인해 갈수록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고, 오히려 대형 수입회사에 이익이 쏠리는 구조로 흐르고 있다"며 "정부에서 말로만 신성장동력을 외칠 것이 아니라, FTA 피해를 예측하고 이에 대한 경쟁력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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