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면 대응?…소송으로 번지기 전 의견수렴 과정 확대돼야

<행정소송 증가 원인과 대안>
1. 정책 대응 판도 변화
2. 법무법인 역할 확대와 현황
3. 태평양 헬스케어팀 인터뷰
4. 결론 ; "소송이 능사는 아니다"

의료계, 준법경영으로 부당정책 대비
정부, 입안과정 중 의견수렴 앞당겨 이견 좁혀야
 
"이번에 발표된 정부 정책은 부당합니다. 행정소송을 진행해 법의 심판을 받겠습니다."
 
올해 들어 의료계에 "행정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영상수가 인하 소송 승소를 시작으로 네트워크병원, 카바수술, 치료재료 원가조사 등에서 법률 검토가 한창이다. 이에 따라 올해 행정소송은 더욱 이슈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소송으로 이어지는 정책 대응이 올바른 것일까? 의료기관과 정부 간 행정소송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될 경우 나타날 부작용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행정력과 비용 지출이 심각하다.
 
영상수가 인하 소송을 예로 들면 정부에서 오랜시간을 들여 마련한 안이 모든 절차를 거친 후 시행됐음에도 불구, 다시 회귀하면서 막대한 행정력 낭비가 생겨났다. 항소를 위해 절차상의 하자를 보완하는 것은 물론, 1심 판결 후 심평원은 실무부서로서 고시 철회의 내용을 담은 공고를 낸 것도 그렇다.
 
또 소송으로 인한 비용 지출은 양측 모두에게 부담이다. 실제로 영상수가 인하 취소 소송에서 병원협회는 막대한 소송 비용으로 인해 1심에서 승소하고도 웃을 수만은 없었다는 전언이다. 병원계는 지난해 말 영상장비 수가인하 소송 승소에 따른 성공보수금(8억8000만원) 지급과 추후 항소심 비용(3억2000만원)을 충당하기 위해 총 17억원 규모의 기금 조성에 나선 바 있다. 항소를 준비하고 있는 복지부 또한 부담은 마찬가지다.
 
특히, 이 모든 절차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당연히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곳이니 말할 것도 없고, 병원계 또한 대부분이 비영리법인인 것을 감안하면 외부에서 조달하는 재원"이 있을 수 없다며 "매년 적자에 허덕인다는 병원의 또다른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문제가 터져야만 관심, 이제 그만
 
올해는 무엇보다 제약업계 약가인하 소송이 가장 핫이슈다. 일부 기업에서는 혁신형제약기업 선정 시 보복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선정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이익의 현실화는 어려운 수준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의 시장 확대에 기회라고 보는 법무법인에서는 각종 설명회를 진행하고 소송을 부추기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제약사로서는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라도 하면 이득을 보존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하면서도 수면 밑의 움직임이 가득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그간 국내제약사에서는 대응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다.
 
외국계제약사는 문제가 생기기 전부터 법적 검토를 하고 자료를 확보하지만, 국내에서는 문제가 터질 때만 관심을 가지며 법률 자문을 받더라도 사전질문이 거의 없다는 전언이다.
 
법률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의료계에서는 이슈가 생겨야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며, 입법 준비 시기에 업계의 의견을 받는 시기에는 무시하고 막상 닥쳐야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동안의 사법이 사후적인 것, 소극적인 역할과 소송을 맡아왔다면 이제는 법 자체가 위험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를 위해 내부 규약과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한다.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더라도 이제는 사내매뉴얼부터 정비하고, 정책 입안시에도 용역 보고서 과정부터 참여해야 한다.
 
시행령, 규칙, 운영, 기준 등도 고시화 작업 전부터 이를 알고 이해하는 과정이 시급한 상태다.
 
정부, 소통부족 과정 개선 필요
 
정부 역시 사전 소통과정이 부족했던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가 일방주도적으로 정책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의견수렴과 대책 강구가 부족하며, 업계로선 이유없이 따라가야 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법률전문가들은 정부 역시 사전에 문제제기를 하고 조정가능하도록 해야하며, 법을 만들기 전 업계에 교육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의료산업에는 규제가 많은 만큼, 복지부에 법적 전문성을 갖춘 인력보강을 해야 하며, 교육과 제도도 정비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주도면밀해 지는 행정소송에 정부 또한 조직적인 대응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소송 건이 발생하면 실무부서와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며 대응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면서도 "대형법무법인에 헬스케어팀이 별도로 조직되는 등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행정소송이 보다 조직적이고 본격화 되는 판도변화가 있다면, 정부도 그에 맞는 대응책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영상수가소송으로 큰 한방을 먹은 뒤 모든 경우에 반영하진 못하더라도 이번 건과 같이 상징적인 것에 대해서는 "전담하는 별도의 TF"를 꾸려 조직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준법경영이 곧 경쟁력 실현
 
이처럼 부당한 정부 정책을 바로 잡고, 정부 또한 관련 단체들과의 이견을 좁혀 나가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이어야 하는 소송이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가는 급행선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선 의료계는 준법경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준법경영이란 정책에 대한 여러가지 가능성을 대비해 충분한 경쟁력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업계도 공단, 심평원과 같이 하면 대화가 안된다는 고정관념을 해소하고, 정부는 입법 전 어느 단계에서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들을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 또 업계 의견수렴 과정을 좀 더 앞당겨야 한다.
 
대학병원법무담당자협의회 강요한 회장은 "행정소송이 늘어가면서 준법경영이 화두가 될 것이며, 무작정 법을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 실행 이전에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타당성의 논리를 이용해 대응하고 막기 위한 이해와 노력이 필요한 과도기적인 시기"라고 역설했다.
 
법무법인 더펌 조준현 변호사는 "법률적으로 판단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분명히 처벌에 있어서도 여지가 있기 마련"이라며 "소송전단계에서 정당성이 있으면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고, 협상안을 만들어 소송으로 100% 흐르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법무법인 태평양 이경철 변호사도 "행정소송의 증가는 선진화된 법률 시스템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보인다"며 "올해는 소송이 더 늘어나겠지만, 이 과정에서도 수동적이고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업계와 정부가 서로 소통하며 바람직한 정책 입안 방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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