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등로주의(登路主義)에 대해 알 것이다. 가장 쉬운 코스를 선택해 정상에만 오르면 된다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절벽 등 어려운 루트를 직접 개척해 가며 역경을 극복해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등로주의는 정상 등정이라는 결과보다는 얼마나 어려운 등반 과정을 거치며 등반했느냐에 참 뜻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등로주의에 가장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등반은 빙벽 등반이다. 빙벽 등반은 곤란을 추구한다. 무엇보다 등반의 본질과 과정을 중시하는 클라이밍이다.
 
의원급 최초의 심혈관센터
 
리하트내과 이재웅 원장은 잘 닦여진 쉬운 길보다는 곤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빙벽 등반도 그의 오래된 취미이다.
 
한양의대 재학 시절, 6년 내내 산악반 활동을 하며 모험 속에 스스로를 던져 놓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알았다. 겨울이면 빙벽 등반, 인수봉에서의 암벽 등반, 태백산맥 15박 16일 종주 등 이 원장의 도전은 거침이 없었다.
 
그의 등반은 늘 등로주의를 지향한다. 정해진 루트보다는 새로운 길, 정해진 방법보다는 새로운 방법을 추구한다. 삶의 여정 또한 등로주의를 따르는 그의 산행을 닮아있다.
 
한양대구리병원 심혈관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심혈관질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던 그가 작년 10월 경기도 구리시에 심장내과 의원을 개원했다.
 
의원급 최초로 심혈관조영기를 구비한 심혈관센터를 갖추고 1차 의료 영역에서의 전문적인 심혈관질환 치료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심혈관질환은 약물요법과 중재술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심혈관중재술을 하지 못한다면 약물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한계가 있죠. 결국은 심혈관중재술이 심장내과에서 할 수 있는 핵심이자 마지막 치료인 셈입니다. 심혈관센터가 있는 심장전문 의원을 만들어 일차 의료의 영역을 보다 확장시키고자 개원을 결심했습니다. 의원급에서의 도전이니까 주변에서 걱정과 우려도 많았고 잘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죠. 병원 영문명이 제 성을 딴 'Leeheart'지만 의미는 'Reheart'예요. 심장을 살리고야 만다는 제 마음과 의지랄까요."
 
안정된 자리보다 도전 의미 있어
 
진료실 윗층에 자리잡은 심혈관센터는 여느 종합병원 못지 않은 규모와 독일 지멘스사의 최고사양 심혈관조영기 등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심장 전문 PA 간호사, 방사선사, 서큘레이션 간호사까지 의원급에서는 볼 수 없는 인적 구성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수 년 간 한양대구리병원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환상의 호흡을 보였던 의료진들이 모였기에 의원이지만 대학병원과 같은 수준의 의료서비스와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심혈관센터에 심혈관조영실과 회복실, 입원실은 갖췄지만 중환자실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어요. 때문에 지역 대학병원과 연계하는 부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죠. 근거리에 한양대구리병원, 한양대병원, 건국대병원, 서울아산병원까지 포진해 있어서 유기적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원장 스스로도 개원은 모험이라고 말한다. 대학병원 교수라는 안정된 자리를 내어 놓고 결과가 불확실한 도전을 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대학병원이라는 조직에서의 비전과 심장내과 의사로서 저 개인의 비전이 같을 수는 없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심장혈관 치료에서의 목표를 스스로 실현해보기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한양대구리병원에서의 소중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런 도전도 가능한 거죠. 때문에 아쉬움도 접어 두었고 제가 갈 길이 명확하기 때문에 후회도 안 합니다."
 
환자와 '관계의 질'까지 향상해야
 
개원 후 달라진 점은 무엇보다 환자에게 할애할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대학병원에서의 시스템은 환자 한 명당 2~3분의 시간 밖에는 내지 못했는데 개원을 하니 시간을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진짜 훌륭한 의사는 뛰어난 의술에 더해 환자를 진심으로 위하는 믿음과 신뢰를 줌으로써 관계의 질까지 향상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원장이다. 개원 후 환자들에게 자세히 설명도 하고 문진과 신체검사도 서두르지 않고 할 수 있어 의사로서의 행복감까지 느껴진다고.
 
"진료에 있어 그 동안 바빠서 못 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점, 환자들과 보다 많이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이 있죠. 환자들과의 시간은 늘었지만 저 개인적인 시간은 훨씬 줄었어요. 개원 초기라 신경 쓸 일이 많기도 하고 심혈관조영술의 특성 상 시술 후 환자들의 컨디션이 좋아질 때까지 옆에서 봐야 하니까요."

대학병원 교수 시절 평일에는 정신없이 바쁘지만 진료가 없는 주말에는 어김없이 산행을 떠났다는 이 원장.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환자들에게 모두 내어 준 요즘, 시간이 좀 난다면 산에 가고 싶은 생각으로 간절하다.
 
그렇지만 잠시 접어 둔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 주니 말이다.
 
심장혈관전문병원으로 성장 꿈 꿔
 
지난 해 10월 말 개원, 지난 1월까지 진단은 120건, 시술을 20건으로 예사롭지 않은 숫자들을 써내려가고 있다.
 

이 원장의 목표는 우선은 지금의 병원을 의원이 아닌 병원급의 심장혈관전문병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보다 고도의 심혈관질환 치료를 하려면 의원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규모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기간은 5년. 너무 짧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답이 돌아온다.
 
"아니요. 짧지 않다고 생각해요. 더 늦어지면 목표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지금부터 한 발 한 발 조금씩 나아간다면 가능합니다. 만약 5년 안에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실패는 아니에요. 전 그 시간 동안 목표를 향해 정말 최선을 다 할거거든요." 최홍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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