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건수 보다 높은 생존율이 더 큰 가치"


장기이식은 종합예술과도 같다. 여타의 수술처럼 수술 받을 환자와 수술을 할 의사만 있으면 가능한 수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여장기가 전제돼야 하고 집도의가 있어야 한다. 또 수술 못지않게 수술 전 검사과정과 수술 후 면역관리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과 의사의 역할이 크다. 때문에 장기이식의 성적을 판가름할 때는 몇 례의 수술을 시행했는지 보다는 이식장기 및 이식환자의 생존율이 성과의 기준이 된다.


"Is it true?"
 
'신장이식 600례 달성', 최근 부산 메리놀병원 신장이식팀이 달성한 쾌거로 1990년에 신장이식을 시작해 22년 만에 일궈낸 성과이다. 메리놀병원 신장내과 공진민 과장은 이 병원 이식팀 최초의 멤버로 지난 22년간의 역사 어느 한 순간에도 그의 손길이 안 미친 곳이 없다.
 
"신장이식 600례 달성은 서울의 대형병원에 비하면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사실은 평면적인 이식 건수보다도 그 내실에 더 중요한 가치가 있어요. 메리놀병원은 신장이식 100례까지 이식환자와 이식신 생존율이 모두 100%였습니다. 당시는 그저 열심히 했을 뿐 국제 학회에서 놀랄 정도의 '기록'으로 인정을 받을 줄은 몰랐죠." 메리놀병원이 1994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세계이식학회에서 연구성적을 발표한 이후 학회장은 술렁였다. 공 과장도 세계적인 병원의 여러 석학들로부터 "Is it true?"라는 반문을 들으며 비로소 그것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기적적인 성과라는 것을 알았다. 신장이식 100례까지 생존율 100%라는 기록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경이적인 성과이다.
 
"이식팀 모두가 집중하고 열심히 한 결과죠. 지금까지 신장이식을 600례 하면서 100%까지는 아니지만 국내 최고 수준의 생존율을 지키고 있습니다. 최근 신장이식 500례까지의 결과를 분석한 결과 환자 10년 생존율이 91.7%, 이식신 생존율이 84.7%로 나타났어요. 이식학회에도 발표됐지만 메리놀병원이 주요 메이저병원과 견줘도 선두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혈액형 부적합 이식 분야 선도
 
독보적인 생존율 외에도 메리놀병원이 선도하고 있는 장기이식 분야가 있다. 통상 장기이식은 공여자와 수혜자 간의 교차반응이 음성이고 혈액형이 일치하거나 O형에서 A형 등 수혈이 가능한 혈액형 조합으로 이뤄지게 돼있다. 그런 이유로 가족 등 장기기증을 원하는 이가 있어도 이식이 불가능한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메리놀병원은 1997년 국내 최초로 혈액형 부적합 이식을 시도했다. 더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시도한 47건의 혈액형 부적합이식에서 100%의 성공률을 보였다는 점이다.
 
"혈액형 부적합 이식은 2000년대 이전에는 뇌사자가 부족한 일본에서 주로 시술됐고 2000년 대 이후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확산되는 추세죠. 혈액형 부적합 이식은 장기이식술이 진일보했다는 점 외에도 큰 의미가 있어요. 우리나라도 뇌사자 장기가 부족한 현실인데 이를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거든요. 가족 중에 신장을 제공할 의사가 있어도 혈액형이 안 맞는 경우가 1/3이예요. 이들에게 혈액형 부적합 이식이 제공된다면 지금보다 생체신이식을 30% 증가시킬 수 있는 거죠 ."
 
1997년에 메리놀병원에서 최초로 시작된 혈액형 부적합 이식은 이후 급속히 증가, 작년에만 국내에서 129례의 혈액형 부적합 이식이 이뤄질 정도로 보편적 술기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전체적인 생체신 이식술의 14%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 대비 수술 건수로 봤을 때 일본보다 더 많은 수치이다. 공 과장은 조만간 절대수도 일본을 앞지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계를 뛰어넘은 이식술이 만든 드라마
 
장기이식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면역억제제의 개발에 따른 것이다. 혈액형 부적합 이식술의 성공 역시 거부반응의 차단에서 시작된다. "혈액형 부적합 이식에서 거부반응은 이식 초기에 집중되고 수술 후 한 달 정도 지나면 거부반응 위험이 거의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수술 직후 면역억제제와 혈장교환을 통해 혈액형 항체를 2~3주 정도 낮게 유지시킵니다. 초기에 항체 조절만 잘 하면 혈액형 적합과 부적합 이식 간의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혈액형 부적합 이식의 성공률도 높은 편이죠. 후발 주자로 나선 다른 병원들의 성공률도 98% 정도로 매우 높은 편입니다."
 
작년 3월 메리놀병원은 인상적인 부부교환이식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남편이 말기 신부전증 아내에게 신장을 기증하고자 하는 두 부부가 있었다. 그러나 한 부부는 교차반응 양성으로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다른 한 부부는 혈액형이 안 맞아 혈액형 부적합이식을 해야 하는 경우였다. 한가닥 희망을 걸고 남편들의 신장을 교환해서 매칭을 해보니 한 쪽은 교차반응 음성이 되고 다른 한 쪽은 혈액형 부적합 이식 상태가 됐다.
 
두 부부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혈액형 부적합 이식술에 대한 경험과 교환이식이라는 조합이 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혈액형 부적합 이식이 가능해지면서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교환이식이 가능해진 것 이죠. 교환이식, 교차반응 양성이식, 혈액형 부적합 이식 세 가지가 장기이식의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포인트예요. 의료계는 많은 환자들에게 이식 기회를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계속 찾아가야 합니다."

장기이식 후 심혈관질환 중요 이슈
 
장기이식술의 발달로 이식기회가 많아지고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기적을 만들고 있지만 앞으로의 중요한 화두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문제들이다. "요즘은 60대 후반이나 70대도 신장이식을 하는 등 수술 연령에 크게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평균 연령이 높아진 만큼 환자들의 여명도 길어졌기 때문이죠. 과거와 달리 장기이식 후 주된 사망원인은 거부반응이 아닌 심혈관질환입니다. 당뇨병으로 인한 말기신부전이 많다는 점과 고령이 맞물리면서 문제가 되고 있죠. 이제는 수술 후 심혈관질환의 관리가 환자 생존율을 가르는 중요한 가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완벽에 가까운 높은 생존율, 혈액형 부적합 이식의 선두주자, 교환이식 등 메리놀병원이 써내려간 장기이식의 놀라운 기록들은 적지 않다. 서울의 대형병원과 물량 경쟁을 하기보다는 차별화 전략을 추구한 메리놀병원의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앞으로 의료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질지 모릅니다만 지금처럼 한 분야에 집중해 더욱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죠. 양보다는 질적인 측면에서 최고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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