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환자 사이 '라포' 보다 중요한 것?
편안함·이해심에서 나오는 '호감'이 먼저


대상을 사랑하기 위한 가장 큰 전제는 이해다. 이 세상 모든 크고 작은 오해와 갈등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오는 것이 아닐까? 나와 다른 모습이라고, 내 생각과 다르다고 선을 긋는 것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참고, 이해한다면 사랑하지 못할 이가 있을까.
 
충주에서 만난 남재만 원장(남재만 내과)은 아침이 되면 일어나고 밤에 잠이 드는 것처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몸에 밴 사람이다. 고향인 충주에서 17년 동안 내과의원을 운영하다보니 어느덧 성격도 바뀌고 습관도 바뀌더라고.
 
"수련 마치고 충주의료원에서 6년 정도 근무 후 개원했어요. 의료원에서 너무 바쁘고 힘드니까 가끔 환자들에게 서운하게 대할 때도 있었겠죠. 그럼 어김없이 어머니 귀로 얘기가 들어가나 봐요. 하하. 한 마디씩 듣다보니 환자가 아닌 어른으로, 부모님 대하듯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개원 후엔 환자들에게 편안한 병원이 되겠다는 것 하나만큼은 실천하려 노력했어요. 병원에 오는 환자들이 편안해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제 성격도 편안하고 부드럽게 바뀌더군요."
 
"노인은 모든 이의 미래다"
 
남재만 내과에 오는 대부분 환자들의 평균 연령은 70세 전후다. 널찍한 로비에는 깊은 세월의 흔적을 얼굴 가득 머금은 노인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우리 병원은 동네 사랑방이에요. 대도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1차병원은 사랑방처럼 편안하고 환자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진료가 없는 노인들이 그냥 오기도 하고, 편한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어요."
 
모든 '관계'에서 신뢰에 앞서 호감이 중요하다는 남 원장, 호감은 편안함, 상대에 대한 이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신뢰는 그 다음이라고. 그래서 편안한 병원, 편안한 의사가 돼야 하고 특히 노인들은 더욱 더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노인은 우리 모두의 미래잖아요. 앞선 이들이 만든 환경에서 내가 누리는 것이고, 누구나 나이 들고 결국 노인이 될 것이구요."
 
"아~아~, 다음 진료 받으실 환자는"
 
그의 진료실을 보면 책상 한 가운데 있는 길쭉한 방송용 마이크가 눈에 띤다. 남 원장은 이 마이크로 환자를 직접 불러 진료한다. 환자 이름을 부르면 로비에 있던 환자들 중 한 사람이 진공관에 빨려들어 가듯 일어나 자연스레 진료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귀가 어두운 노인들에게도 그의 친숙한 목소리만큼은 또렷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진료실에 환자와 저 외에 다른 직원들이 있는 것이 진료에 방해가 될 수 있더군요. 오롯한 둘 만의 공간에서 진료하면 초진환자들도 편안하게 얘기를 해서 진단을 내릴 때 도움도 되고요. 처음에는 환자들 대기시간을 줄이려고 시작한 방법인데 지금은 대기환자 명단을 보고 환자가 많으면 좀 속도를 내서, 환자가 없으면 좀 여유 있게 진행을 하며 융통성 있게 진료를 하죠."
 
처음에는 진료보는 것도 힘든데 환자까지 의사가 직접 부르는 것을 이해 못하던 신경외과 부원장도 남재만 내과에서 근무한 지 한 달 만에 마이크 설치 청구서를 올렸단다.
 
우리 역사와 풍류 직접 보고 싶어
 
남 원장에게는 세 가지의 꿈이 있다. 재작년 11월에 신경외과, 정형외과와 더불어 입원실도 만드는 등 병원을 증축하면서 좀처럼 여유 없는 시간들을 보낸 탓인지 그의 소망은 사색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가득하다. 첫 번째는 좀 여유 있게 시간을 갖고 중국과 몽골에 다녀오는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나라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잖아요. 몽골도 마찬가지구요. 우리의 문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배우려면 가서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직접 봐야죠." 재작년 시간을 내 가족들과 서유럽에 다녀왔지만 고단함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서유럽 여행 이후 시차 적응을 위해 부지런히 산행을 시작했고 내친 김에 아내와 백두산까지 다녀왔는데 유럽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설레임과 흥분으로 가득 찬 즐거운 여행이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우리의 땅을 밟는다는 기쁨으로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는 여행이었죠. 유럽에 가기 전에 전국의 유명 사찰도 다섯 곳 정도 다녀왔는데 유럽보다도 좋았어요."두 번째 꿈 역시 우리의 역사와 관련된 것인데 우리나라 곳곳에 숨겨진 정자와 옛길을 다니며 옛 선인들의 풍류를 탐닉하는 것이다.
 
"특히 전라도 쪽에 아름다운 정자가 많죠. 또 진짜 풍류는 옛길이에요. 올레길, 둘레길이 아닌 진짜 옛길이요. 주로 절 근처에 많은데 숨겨진 옛길을 걷고 있으면 마음도 편해지고 억겁의 세월들이 걸음걸음마다 전해지는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할 때도 있죠."
 
추억 되새길 사랑방, 함께 하실래요?
 
마지막 소망은 사람 좋아하는 그의 성격답게 사랑방을 만드는 것이다. 병원 로비에 자연발생적으로 마련된 사랑방이 아닌 진짜 사랑방 말이다. "공간을 마련할 수만 있다면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사랑방을 꾸며보고 싶어요. 좋은 책과 추억들로 소박하게 꾸민 은은한 차 향기가 있는 공간이요. 어릴 적 우리가 공부했던 교과서, 문제집들을 지금 보면 얼마나 재미있어요? 살아온 것은 각자 달라도 어릴 적 공유하는 추억은 있잖아요. 사람 좋아하는 제 바람이지만 뜻이 맞는 사람도 찾을 수 있겠지요?"
 
자신은 내세울 것 없는 동네의사라며 인터뷰 간간히 "제 얘기만 해서 미안합니다. 그냥 얘기나 하는 자리로 합시다. 전 기사 안 나가도 돼요"라고 걱정을 하던 남 원장. 아마도 멀리서 자신을 찾아온 이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평범한 자신의 얘기를 각색(?)하느라 고생하지 말라는 뜻 일게다. 고백컨대, 어렵지 않았다. 상대방을 조금 더 이해하려는 배려와 여유에서 나오는 호감이 신뢰보다 앞선다는 메시지를 전해 준 남 원장과의 만남. 그것 만으로도 글을 쓸 거리, 새김꺼리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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