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부족·진료량 모니터링 미흡땐 "수익 집착" 뻔해

최근 복지부가 건강보험재정 안정책의 일환으로 총액예산제의 시행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이 제도는 과연 어떤 것이며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제도도입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2001년 5월 국민건강보험재정안정 및 의약분업 정착 종합대책에서 언급돼 있다.
조기 재정안정과 국민 불편해소를 위해 "진료실적에 기초한 총액 예산제를 국공립병원에 시범적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시범사업이 시행되지는 않았다.
그간 정부는 의료비 억제를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해왔지만 주로 의료제공자의 과잉, 부당 진료행위와 의료소비자의 불필요한 의료이용 등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수요측면에 비중을 두어왔다.

그러나 전국민의료보험이라는 명제에 맞지 않게 광범위한 비급여 항목과 급여항목일지라도 높은 본인부담률 등 으로 인해 전체 보건의료지출중 환자에 의해 부담되는 의료비 비율이 외국의 20%에 비해 상당히 높은 20∼55%나 되고 이러한 부담에도 불구 진료비는 증가추세가 지속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물론 공급측면에 중심을 둔 다양한 의료비 억제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병상과 고가장비에 대한 규제 및 건강보험수가통제도 활용됐다.
병상과 고가장비에 대한 규제는 신고나 허가사항에 불과할 뿐 선진국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의료계획과는 차이가 있고 따라서 실제적인 병상 및 장비 억제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가통제도 그 수준이 서비스 생산의 한계비용 이상일 때 공급량을 늘여 수입을 증대시킴으로써 진료량을 증가시켰고 결과적으로 의료비 억제에 기여하지 못했다.

행위별 수가체제 하에서 진료량에 대한 감시는 진료내역 심사로 가능하지만 심사지침이 의사들에게 공개돼 있는 현실에서는 심사에 의한 진료량 통제도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의 보험재정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의료비증가로 인한 손실위험을 의료공급자가 부담케 하는 예산설정방식의 의료비억제책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미 선진국의 경험으로 수요측면의 관리보다 공급측면의 관리가 의료비 억제에 효과적이고 보건의료부문의 예산제 도입이 비용절감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는 사실이 설득력을 가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총액예산제는 진료행위량에 따라 소요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서 실제로 시행된 진료행위의 양과 관계없이 사전에 예산을 정하는 형태와 실제 시행된 행위량에 근거, 사후에 지급하는 형태로 구분된다.
여기에 병원의 진료기능이나 DRG 등 진단명, 의료의 필요도 등을 감안하는 방법을 유럽 등 외국이 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대개 지불자가 하나일 경우 가능하며 일단 시행되면 가장 간단한 진료비 보상방법으로 평가된다. 제도에 따라 예상된 것 이상의 지출증가를 허용 또는 불용 할 수도 있지만 예측이 가능해 복잡한 계산 없이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 정해진 예산 내에서 모든 의료서비스를 공급해야 하므로 의료공급자들의 비용의식과 함께 의료공급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특히 비용이 보험자와 병원간에 고정됨으로써 병원이 인력채용 등 사전에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을 계획할 수 있다는 점, 병원의 진료량 및 성과지표로 질병의 중증도나 포괄수가제를 이용, 예산이 생산성을 반영하도록 할 수 있고 높은 생산성을 보이는 경우에 대해 예산조정을 할 때 비용절감 요인이 커지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하게 책정되거나 진료량 제공을 적절히 모니터링 하지 않으면 병원들이 수익창출에 집착, 입원환자에 대한 서비스 제공량은 줄이고 현재의 서비스 향상을 위한 자원의 확충 없이 그대로 유지하려하거나 신기술 도입을 억제,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등의 비효율성을 낳는 것이 단점이다.

또 의료이용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고 소비자에 대한 반응이 늦을 뿐더러 장점으로 평가되는 비용절감이 실질적이 아니라 미래 혹은 다른 부문으로 이전될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복지부는 이 제도를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한다.

그러나 공공병원 이용률이 저조한 현실로 미뤄 볼 때 과연 보험재정안정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 후 민간병원 확대여부를 평가하겠지만 수익창출이 생존을 좌우하는 민간병원생리로 미뤄 볼 때 이미 지적된 서비스의 축소, 신기술 도입억제 등 의료의 저질화와 이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는 명약관화 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따라서 외국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도입한다는 시대에 뒤진 공식의 적용을 배제하고 국내현실을 성찰하고 시행효과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평가가 선행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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