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중소병원들에게 대형병원이란 존재는 '우리 병원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중증환자를 이송하는 병원' 또는 '잘 치료할 수 있는 환자들까지 무조건 가고 보는 병원'이다. 이처럼 대형병원으로의 극단적인 환자 쏠림현상과 분절적이며 단절적인 의료전달 시스템은 지방 병원은 물론이고 대형병원 인근의 중소병원들에게 심각한 박탈감을 주고 있다. 서울시 송파구는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뿐 아니라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분당차병원까지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대형병원들의 초밀집 지역이다. 이런 정글과도 같은 지리적 입지조건을 가진 송파구에 '외과전문병원'을 기치로 내건 중소병원이 있다.


"대형병원에서 환자 보내는 중소병원"
'발상의 전환' 성공스토리 썼다


역발상에서 찾은 최고의 입지조건

송파청병원 정성학 원장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다. 수술 잘 하는 외과전문병원을 만들기 위해 모교인 순천향의대 선배 조성훈 원장(외과 전문의)과 의기투합해 2007년 6월 병원 문을 열었다.
 
개원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앞서 언급된, 대형병원이 환자들에게는 일단 가고 보는 병원이고, 의원에서는 일단 의뢰하고 보는 병원이 됐기 때문이다.그러나 환자들이 무조건 가더라도 대형병원에서는 곧 수술 할 수 없다. 암 수술 등 이미 일정이 잡혀진 계획수술만도 빈틈없이 꽉 차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엔 외과 기피현상으로 전공의도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응급수술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때문에 비교적 간단한 외과수술이지만 극심한 통증과 복막염 위험으로 응급수술이 필요한 충수돌기염이나 담낭염 환자들이 대형병원 응급실로 갈 경우 난감한 상황이 야기된다. 이런 의료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역발상이 송파청병원의 설립취지이다.

"대형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는 것이 아닌 역으로 환자를 이송 받겠다는 것이 차별화된 접근이랄까요. 대형병원을 타깃으로 하자는 것은 서울아산병원에서 10여 년간 외과교수로 재직한 조 원장의 제안이었어요. 기형적 의료전달체계의 허점을 공략한거죠.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환자들의 인식도 개선돼야 하지만, 의원에서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적절하게 환자를 의뢰하도록 해야 합니다."
 
수술환자 70~80% 대형병원서 이송
 
외과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만나 병원을 개원한다고 했을 때 '망한다'며 만류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고 한다.두 과는 상리공생의 관계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수술'이란 과정을 거쳐야만 수익이 발생하는, 즉 수익적 보완장치가 없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외래 진료나 검사만으로도 일정한 정도의 수익이 보장되는 여타의 진료과와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수술 잘 하는 병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흐리지 않고 실력으로 승부수를 던져보고자 결심했다. 병원홍보에도 특별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굳이 홍보활동이라면 인근 대형병원 응급실이나 외과에 병원에 대한 안내문을 전달하는 정도였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대형병원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송파청병원의 수술성과를 인정하면서 점점 더 많은 환자들을 이송하게 됐고, 이제는 전체 수술환자의 70~80%가 대형병원을 통해 온 환자일 정도로 적극적인 환자이송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전신마취 하에 시행하는 수술이 한 달에 90건에서 많게는 100건까지도 있어요. 이 중 대형병원에서 이송 온 환자들의 건수가 70건 정도니 적지 않죠?"개원 후 2년 동안 한 달에 26일 콜당직을 서면서 병원 당직실에서 살다 시피 했다. 3년 반 정도 지나자 병원경영도 안정궤도에 진입, 이제는 직원들 연봉인상도 후하게 할 수 있고 월급날이 다가와도 통장잔고 확인하며 골치 아파할 정도는 아니라고.
 
가장 중요한 가치는 '환자 안전'
 
송파청병원에서 주로 많이 하는 수술은 복강경을 이용한 충수절제술과 담낭절제술, 탈장, 갑상선, 유방종양 등의 수술이다. 개원 후 2년 만에 복강경 수술 1000례를 달성해 실력파 외과전문병원의 면모를 발휘했고, 현재 일 년에 무려 1000례 정도의 복강경 수술을 하면서도 문제가 생겨 개복을 한 경우가 단 한 차례도 없다.
 
마취과와 외과의 만남이 시너지를 내며 높은 의료수준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지만, 중환자실이 없는 병원인 만큼 환자의 중증도를 파악해 선별적으로 이송을 받는다는 점도 주효했다. 환자를 선별적으로 받는다는 것은 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환자의 안전을 위한 선의의 목적이자 최선의 방법이다. 고령, 심장질환 등 수술 후 예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반드시 중환자실이 있고 여러 진료과의 협진이 가능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환자들을 수술하지 못하더라도 안전하게 수술하고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병원의 방침입니다. 앞으로는 응급 담낭절제술 뿐만 아니라 검진 상 담석이 발견된 경우 등의 계획수술도 늘려가면서 잘하는 분야에 더욱 집중하는 전략으로 한발 한발 나아갈 생각입니다."
 
환자 쏠림현상, 전공의 수련에도 영향
 
척추질환에도 관심이 많은 정 원장은 수술실이 아닌 외래에서는 비수술적 척추·관절 치료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루 50~60명 정도의 외래진료를 보는데 환자들이 대형병원에서 갈증을 느끼는 부분인 자세한 설명과 친절한 진료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마취통증의학과 후배들에게도 향후 진로 결정에 있어 선택의 폭을 넓게 하기 위해 수련기간 동안 반드시 수술실에서의 무기인 마취 외에 외래진료에서 쓸 수 있는 무기도 단련하라고 조언한다.
 
"수련기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은데 대학병원에 워낙 수술이 많아요. 전공의들이 수술실이 아닌 외래에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4년 동안 고작 3~4개월에 불과하죠.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현상이 낳은 또 다른 문제겠죠? 다각적인 측면에서 모두가 노력해 빨리 개선되길 희망해봅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