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질환, 병원규모 보다 가까운 곳으로 가야"

응급실 콜. 급성심근경색 환자다. 심전도 상 ST분절이 예사롭지 않게 올라가 있다. 서둘러 심장혈관센터로 침대를 돌려 PCI를 준비한다.
 0.3 mm 가느다란 철선이 환자의 혈관을 따라 들어간다. 막혀 굳어져가는 심장혈관에 가까이 가까이…. 스텐트가 자리를 잡자 좁아진 혈관이 열리고 다시 피가 흐른다. 머리카락 한가닥까지 긴장시키며 집중했던 김성훈 센터장의 심장에도 이제야 뜨거운 피가 돌기 시작한다.



심혈관 불모지 개간 전문 의사?

 
심장혈관질환은 증상이 있을 시 큰 병원이 아닌 가까운 병원으로 빨리 가는 것이 진리다. 청주 하나병원 심혈관센터 김성훈 센터장은 수련의 시절 지방에 있는 환자들이 병원을 빨리 찾지 못해서 생기는 안타까운 일들을 보며 서울의 대학에 남으려던 생각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심장내과 전문의로 인정을 받을 즈음, 포항성모병원에서 심장혈관센터를 열고자 하니 모든 준비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고 포항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4년,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심장'만 생각하고 온 힘을 쏟았다.
 
센터가 자리를 잡으며 제 몫을 하기 시작하니 그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병원이 많아졌다. 고심 끝에 또 다른 불모지 개간을 위해 청주하나병원으로 오게 됐고 작년 8월 하나병원 심혈관센터가 문을 열게 됐다.
 
김 센터장에게 청주는 연고지 하나 없는 낯선 곳인데다 인근에 충북대병원이나 청주성모병원 등 이미 심혈관센터를 운영하는 병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후발주자라는 벽도 넘어서야 했다.
 
"우선은 하나병원에 심장내과 전문의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부터 해야 했어요. 충북 지역 개원의들에게 심혈관센터 개소 소식을 핑계삼아 제 이름을 알리기 위한 편지를 썼죠. 고맙게도 개소식에 오시기도 하고 축하인사도 해주시고, 이후에 환자 이송도 하면서 환자 풀을 늘리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지역 심혈관센터 견제보다 공생
 
후발주자로 나선 심혈관센터의 입지를 다지고 위상을 세우는 방법은 기계처럼 환자를 받고 진료하는 '숫자'에 집착하는 병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또 지역의 심장혈관 치료 수준이 함께 발전해야 궁극적으로 지역민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두달에 한번 꼴로 충북지역 심혈관센터 의사들이 소모임을 갖고 case study도 하고 연구활동도 공유하면서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곧 하나병원 심혈관센터 1주년 및 PCI 100례 달성을 기념하기 위한 국제학술심포지엄도 개최할 계획이다.
 
"대학병원들은 국제적인 학술행사를 열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중소병원은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많죠. 그렇지만 못 할 이유는 없어요. 규모가 작더라도 학술교류의 장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아직까지는 일본 오사카와 요코하마 등 인접한 나라의 심장내과 전문의들 위주로 학술교류를 하고 있지만 향후 참여하는 국가의 수도 늘리고 규모도 키울 계획이다.
 
환자를 기억하는 의사 되고 싶어
 
모든 관계맺음에 있어 윤활제가 되는 것은 적극성이다. 누가 먼저 손을 내밀길 기다리기 보다 자신이 먼저 내민다는 김 센터장. 이는 환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환자가 기억하는 의사이기보다는 환자를 기억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두 세달에 한 번씩 외래에 오는 환자들에게 아들이 공부는 잘 하고 있느냐, 다친 팔은 나았느냐, 이렇게 안부를 꼭 물어요. 환자를 가족이라 생각하고 진심으로 대하면 너무나 당연한 작은 관심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이런 마음은 전공의 시절부터 확고하게 자리잡은 의사로서의 신념이다. 그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배움을 얻은 시간은 서울성모병원 수련의 시절 호스피스병동에서의 3개월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의사의 길을 가는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환자에 대한 진실된 마음가짐이 가장 근본이 돼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기암 환자에게 눈물나게 고마웠어요. 의사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알게 해줬기 때문이죠. 정작 히포크라테스 선서 할 때는 무덤덤했었는데 환자를 통해 제 내면이 변화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죠."

5년 후 심장전문병원 건립 계획

 
현재 대한민국 대다수 병원의 의사들은 실적과 인센티브 속에서 멈출 수 없는 쳇바퀴를 돌고 있다. 그러나 김 센터장은 인센티브를 거부하는 소수의 봉직의다.
 
"병원도 수익이 필요하지만 당장의 내일을 고민하는 근시안적 사고는 버려야 합니다. 의사가 인센티브를 받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환자의 숫자를 염두에 둘 수 밖에 없어요. 인센티브제는 의사를 혼란에 빠뜨리고 환자와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의 심혈관센터 개소 경험을 기반으로 5년 후에는 하나병원 내 심장전문병원을 세울 준비를 하고 있다.
 
"환자가 편안하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동선을 정비하고 공간을 만들어야죠. 내년이면 심장내과 전문의가 한 명 더 올 예정이고 전문병원이 세워지면 저를 도와줄 후배들이 더 많아지겠죠? 심장내과가 힘들기 때문에 많이 지원을 안 하는데 의사로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과라는 점을 말해주고 싶네요."
 
고 이태석 신부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의 숭고함과 의사로서의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눈물을 흘렸다는 그는 뜨거운 심장을 닮은 영락없는 심장내과 의사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