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대한민국 의료정책에 '중소병원'이 보이지 않는다. 대형병원은 막강한 자본과 규모를 앞세워 승산없는 경쟁으로 중소병원을 내몰고 있고, 숨 돌릴 틈 없이 급변하는 의료환경은 중소병원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중소병원, 희망은 없을까? 이에 본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한계를 극복한 작지만 강한 병원, 대한민국 강소병원을 찾아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열혈 원장, 지역을 넘어 세계를 품다

'물의 도시' 여수는 내년 열릴 '2012 여수 세계박람회'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는 건물들이 손님 맞을 채비를 끝내고, 바다 위 첨단기지처럼 웅장한 박람회장이 그 위엄을 드러내면 전세계의 관심 속에 명실공히 국제적 도시로 거듭날 터이다.
 
한려엑스포병원은 여수 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만큼 국내를 넘어 국제적 의료기관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꿈을 품은 대한민국 대표 '강소병원'이다.
 
맨 주먹으로 시작해 사채까지
 
2008년 5월에 문을 연 한려엑스포병원은 3년 3개월이란 짧은 시간동안 내적, 외적으로 빠른 성장을 이뤄가며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정대관 대표원장은 지역민들과의 신뢰 덕분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에게 3년 3개월의 시간은 30년에 견줄만큼 길고도 치열한 시간이었다.
 
어려워진 병원을 도와달라는 부탁에 학교에 남으려던 꿈을 접고 여수로 내려왔다. 9년 3개월 동안 밤낮없이 일하며 병원을 정상궤도에 올려놨지만, 더 이상 경영자의 거수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좋은 병원을 만들기로 결단을 내렸다.
 
의기충만한 그였지만 처음에 같이 하겠노라 한 선후배들이 불안감에 돌아서면서 이미 매입한 병원 부지 잔금을 치를 돈이 없어 사채를 끌어오기도 했다.
 
암담했지만 목표가 정해진 이상 되돌아 갈 수는 없었다. 우여곡절 끝 6명의 의사들이 뜻을 모아 2007년 9월 첫삽을 뜨게 되고 다음 해 5월, 지하 1층, 지상 6층에 250병상 규모로 개원을 했다.
 
지역 최초 심혈관센터를 열기까지
 
병원이 승승장구 할수록 터줏대감 병원들의 견제가 심했다. 작은 지역에서 서로 헐뜯으며 경쟁하기 보다는 더 넓은 곳으로 눈을 돌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서울 양재동에 분원인 건강검진센터를 열었고, 곧 청담동과 부천에 메디컬 스파를 도입한 안티에이징 클리닉도 오픈, 프리미엄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 게 비결이죠. 공동투자한 6명의 원장들이 각각의 법인을 만들어 투자 받는 방법으로 빠른 확장을 할 수 있었구요."
 
현재 한려엑스포병원은 2009년 신관동 신축, 2010년 별관동 증축으로 총 300병상의 입원실을 갖춘 지역종합병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지역 최초의 심혈관센터도 노인 인구가 많은 이 지역의 건강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정 원장의 '십고초려' 끝에 마음을 움직였다는 경북의대 장귀련 교수를 센터장으로 초빙해 대학병원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PET-CT를 도입하는 등 첨단 의료장비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최첨단 장비와 우수 의료진들의 수혈로 의료서비스 수준이 높아지자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이는 환자들의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정 원장이 가장 큰 성과로 꼽는 점은 다른 병원들도 뒤이어 장비를 교체하는 등 재투자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무리수를 두고 병원에 투자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지역의 의료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분명한 건 앞서 나가야지 뒤에서 따라가면 발전도 없다는 겁니다. 가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반칙'과 '변칙'의 다름을 알아야
 
정 원장이 병원 경영에 내세운 나름의 철학은 '원칙에서 변칙을'이다. 원칙을 추구하는 것을 기조에 두되 이에 벗어나지 않는 변칙은 수용한다는 것이다.
 
여수 지역 최초로 재활치료를 전면에 내세운 '사랑재활요양병원'은 변칙 경영의 대표적 사례다. 사랑재활요양병원은 보호자들이 환자의 위치와 상태를 24시간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해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최첨단 IT 시스템을 갖춘 요양병원이다.
 
정 원장이 계획한 첨단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했다. 결국 외부 투자를 결심, 국내가 아닌 싱가폴에서 투자를 받았다. 병원 부동산 소유는 싱가폴 투자자지만 운영권은 한려엑스포병원이 갖고 있는 이원화된 구조로 병원이 임대료를 내는 형태이다.
 
"아마도 국내 의료기관 중 외국인 투자의 첫 사례일겁니다. 영리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합법적인 수준에서 투자를 받고 운영할 수 있도록 변칙에서 방법을 찾은 거죠."
 
여수엑스포가 해외환자 유치의 기폭제가 되서 국제적 병원으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바람을 담아 병원명도 한려엑스포병원이라 지었다.
 
또 직접 발로 뛰며 엑스포를 홍보, 지역 발전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매년 전세계 화교들의 네트워크인 세계화상대회에 참가해 홍보부스를 설치하고 여수와 엑스포를 홍보했다.
 
교포가 많은 미국도 접근성과 시장성이 두루 갖춰진 곳이다. 이에 미국 교포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들과의 교류도 지속하고 있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그이기에 한번 맺은 인연을 절대 놓지 않는다고. 대형병원이 따라오지 못하는 정 원장만의 노하우이기도 하다.
 
원장실, 꼭 필요한가요?
 
정 원장은 원장실도 없는 병원장이다. 원장실 자체를 불필요한 공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환자도 보고 행정업무도 보고 연구도 한다.
 
병원의 모든 시설과 구조는 설계부터 환자중심으로 출발했다. 병실은 최대 공간으로 설계, 각 병실마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갖춰놓았고 환자 편의시설도 왠만한 대학병원 못지 않다.
 
정 원장은 '직원'이라 쓰고 '가족'이라 부르며, 자신은 경영자가 아닌 그들을 어깨 위에 짊어진 '가장'이라고 말한다.
 
직원들보다 몇 배 더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 어떻게 보답을 할까 고민하다 매년 개원기념일과 연말에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이 병원의 간호사들은 이직률이 거의 없고 심지어 대기자까지 있는 상황이라고.
 
자신이 세운 병원에서 직원들이 꿈을 이루고, 가족을 이루고, 그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꿈이라는 정 원장은 그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에 취해 보였다.
 
의사의 길을 택한 것을 한번도 후회한 적 없고 다시 태어나도 의사의 길을 가겠다는 정 원장. 병원 경영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그 답다.
 
"언제나 의사라는 점을 잊으면 안돼요. 의사의 본분에 충실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지만, 결과를 빨리 또 쉽게 얻기 위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면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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