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오픈시대의 위기관리 2.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소통, 공감, 이해, 위기 상황 막는다

요즘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여인의 향기'라는 드라마에 의사 역할로 출연하고 있는 배우 엄기준 씨는 일명 '왕재수' 의사다. 항암제를 써도 더 이상 소용없다는 등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서도, 환자 기분에 대한 공감이나 힘이 될만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환자들이 보면서 희망을 잃어 갔고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결국 실력자 의사라는 평가에서도 외래환자 숫자 꼴찌를 달리게 됐다.

이처럼 병원은 끊임없이 환자와 만나고 환자와 대화하는 공간이다. 접수와 수납 창구, 진료실 등의 모든 공간에서 함께 온 보호자들까지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환자들은 몹시 불안하고 예민해진 상태이다. 여기서의 환자와의 말 한마디,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얼마든지 위기의 순간이 될 수 있다.

사고 발생하면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 보여라
 
각종 기업경영, PR이론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공적인 위기관리 사례는 바로 존슨앤존슨(J&J)의 타이레놀 사건이다. 1982년 9월 30일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을 먹고 사망한 사람이 시카고에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약병에 독극물을 주입한 것이다. 첫 사고가 신고 된 후 같은 이유로 불과 48시간 내에 7명이 죽었다.
 
당시 J&J CEO 짐버크는 곧바로 문제제품의 해당 공장에서 제조된 타이레놀 9만3400병을 즉각 수거토록 지시했다. 전국의 의사, 병원, 도매상에게 주의 환기를 위한 50만통의 편지를 보냈고, 각계 전문가 및 주요 신문사 임원을 비행기로 사고 장소까지 급히 데려와 조사를 의뢰했다. 사고 후 일주일이 안되는 10월 5일에는 다른 공장에서 생산된 타이레놀 전량을 회수 파기하기로 결정했으며, 회수된 전체비용을 따지면 무려 2억 5000만달러에 이른다.
 
J&J측은 "우리가 진정으로 소비자를 보호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취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상황이 정리된 이후에도 소비자를 속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이름을 바꾸지 않고 내용물은 그대로 둔 채 독극물이 들어갈 수 없는 포장을 만들어 판매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도 타이레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1983년 Time지가 “Tylenol's Miracle Comeback”이라며 찬사를 보낸 것도 위기관리 능력이 결정적이었다.
 
환자 정보·불만 제기 등 사소한 것도 주의
 
특정 병원이 유독 곳곳에 이름이 오르내릴 때는 특정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입원했을 때다. 관심의 대상이 있는 이 순간에서 오해와 위기가 발생하기 쉽다. 유명인이 입원한 A병원은 해당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가 소속사로부터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반발하는 곤혹을 치렀다.
 
이럴 때는 우선 해당 환자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 이후 대화채널을 일원화해 원장인지, 주치의인지, 아니면 담당 부서인지 정해 당사자만 설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각 다른 이야기들이 여러 경로로 새어나가면서 당사자나 대중에 혼란을 주기 쉽다.
 
B대학 게시판에는 한 학생이 몇 년전 해당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난 뒤 비싼 검사비 등의 불만을 적었다. 이후 부정적인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자 병원장이 직접 나서 부족한 부분은 항상 겸허한 자세로 시정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니, 언제든 불편한 사항은 지적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해당 학생은 원장이 직접 답변을 한 것에 감동하고 뒤늦게 오해가 있었다며 감사의 글을 올렸고 이후 칭찬의 댓글이 연속으로 올라왔다. 이처럼 기관을 대표하는 빠르고 적절한 대응으로 비난의 게시판이 오히려 훈훈한 칭찬의 게시판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진료실 안에서도 공감의 자세로 즉시 대처
 
진료 현장에서도 순간순간의 위기 상황은 쉽게 발생한다. 의과대학에서 의료커뮤니케이션을 강의하고 있는 중앙대병원 내분비내과 안지현 교수는 "위기 상황에서는 우선 공감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 '빨리 빨리'를 원하기 때문에 진료실에서 대기시간과 관련된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 예컨대 3시 예약 환자가 2시에 병원에 도착해 기다리다 방금 도착한 2시 10분 예약 환자가 자신보다 먼저 진료실에 들어가면, '왜 늦게 온 사람을 먼저 들어보내느냐'며 불만을 제기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3시 예약환자를 먼저 들여보내면 2시 10분 예약환자는 '제 시간에 진료를 하지 못하면 예약은 무슨 필요이냐'며 불평한다.

안 교수는 "이럴 때는 '많이 기다리셨죠', '오시느라 힘드셨죠', '다음번엔 좀더 일찍 봐 드릴께요' 등으로 이야기한다"며 "병원 쪽에서 잘못이 없는 경우에도 무조건 사과하기보다는 환자의 불편한 마음을 공감해주고 그 심정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먼저"라고 설명했다. 암 진단 등 나쁜 소식에 대해 부정하고 좌절하는 심리 변화 과정도 이해해야 한다.

안 교수는 "실제로 미국의 의사면허 실기시험에는 화난 환자, 의심이 많은 환자, 공격적인 환자 등 다양한 모의환자 사례가 출제된다"며 "의료커뮤니케이션 교육에서도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각종 드라마 촬영으로 불편해 하거나 시설 공사, 뜻밖의 사고 등으로 인해 불만이 폭주하는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고객의 소리나 전화, 메일 등으로 온 불만도 개선의 여지를 보여주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부재, 의료분쟁까지 야기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의료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의료분쟁은 의료진의 잘못보다는 말 한마디에 의해 생기는 경우가 더욱 많기 때문이다. 대학병원법무담당자협의회 강요한 회장은 "의료분쟁은 소통, 공감, 이해가 부재해 생긴다"며 "의사가 최선을 다해 진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때 과실여부와 상관없이 양 당사자의 싸움으로 번지기 쉽다"고 밝혔다.
 
만약 말기암 환자에게 "치료가 잘 될 겁니다"라고 말하게 되면, 보통은 의사가 환자 자신을 응원하기 위한 말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말기 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뒤따르지 않고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 결과로만 해석하는 가족들로부터 항의와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의사, 병원과실의 사고도 많지만 환자 주장에 의한 의료사고도 많으며, 병원으로서는 치명적이다.
 
의료분쟁은 믿을만한 전담부서를 갖추고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해 해결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강 회장은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감성적으로 대응할 수 없으며, 진료적인 이해와 동시에 법률적인 이해, 제도에 대한 이해와 함께 곧바로 판단할 수 있는 내부 실무자들이 양성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현장에서 의사나 직원들과의 싸움만 부추기게 된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원장이 직접 나와 책임을 져라"는 큰소리가 나기가 쉽다. 실제 원장실 표기가 숨겨져 있거나 찾기 어려운 위치에 두는 일도 많다. 강 회장은 "현재 병원들이 위기관리 능력 장애 상태에 있다는 문제 자체를 인식해야 한다"며 "병원 차원의 시스템과 위기관리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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