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질병발생의 예측지도 '접종 기록'
개인 접종유무 파악 등 공동체 건강관리 위해 기록관리 필수


지난 6월 귀한 문화유산 하나가 우리 품으로 돌아와 나라가 떠들썩한 일이 있었다. 145년 만에 귀환한 조선왕실 의궤가 그 주인공으로 이는 왕실과 국가의 주요행사 절차를 소상히 적은 보고서인데 조선시대 기록문화유산의 정수라 부를 만한 서책이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기록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그 역사 또한 깊은데, 실제로 유네스코지정 세계기록유산에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등 9건이 등재돼 있어 아시아에선 최다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몇 손에 꼽히는 나라라 한다.
 
기록은 선사와 역사를 가르는 기준점으로 기록은 곧 문명의 시작을 뜻한다. 기록의 중요성은 역사와 문화영역에서 뿐 아니라 의과학 분야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이 지면을 빌려 얘기하고 싶은 공중보건사업에서도 기록의 진가는 빛이 난다.

감염병에 대한 유일한 보호막 '예접'
 
역사상 가장 심각한 감염병인 두창(천연두)이 전 세계에서 박멸(선언)된 게 1980년도이니 우리 인류가 감염병의 치명적 위협에서 벗어나 산지는 겨우 3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두창의 치명률에는 미치지 않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감염성 질환이 존재하고 오늘도 글로벌하게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감염병으로 인한 고통과 장애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바로 예방접종이다.
 
과거 예방접종은 유리주사기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접종을 하던 때라 주사기를 알코올램프에 달구어 현장에서 소독을 해가며 했었다. 그나마 백신이 보급되는 것에 감사해야 했던 시절이었는데 이때 과거 예방접종 여부는 어께에 나있는 불주사 상처로 기록확인을 대신했다.
 
예접정책 '서비스 질' 향상 초점
 
그 시절 우리를 괴롭히던 폴리오(소아마비), 백일해 같은 감염병은 이제는 이름조차 생소해졌고 지금은 예방접종 상처는 물론이고 통증까지 거의 없는 일회용 주사기부터 6종류 이상의 질병을 예방하는 혼합백신에 이르기까지 예방접종 역사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또 예방접종의 공중보건학적 목표도 단순히 접종자의 양적인 증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방접종을 통한 감염병의 퇴치나 질병부담 감소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이는 예방접종 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최근에는 서비스 질 향상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방접종 서비스의 질적인 향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은 필요한 예방접종을 '적기'에 '모두' 맞아야 하는 것인데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과거 예방접종 '기록'이다.
 
기록관리로 접종 누락 없애야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할 때 각종 검사치를 참고하는 것처럼 감염병 예방접종을 시행할 때 아이가 이전에 어떤 접종을 어떻게 했는지를 알아야 다음 접종을 결정할 수 있다. 기록의 본질이 그렇다. 현상을 기술하고 보존하여 효과성을 높이는 근거를 제공하고, 공유와 분석을 통해서는 공동의 이익을 이루고 미래 예측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준다. 감염병 예방접종 기록이 갖는 의미 역시 다르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효과적인 면역력 획득을 위한 적기 예방접종을 돕고 나아가서는 공동체 전체의 접종률 파악을 통해 질병발생을 예측하고 취약계층을 찾아내 맞춤지원을 가능케 한다. 또한 접종 기록 공유를 통해서는 백신의 적정 생산과 수급을 가능하게 하고 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르는 백신부작용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도 기록관리는 필수적이다.
 
국내 접종 기록 세계 최고 수준
 
다행히 우리나라의 예방접종 기록관리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지난 2002년부터 '예방접종 전산등록사업(Immunization Registry, IR)'을 도입해 질병관리본부의 전산시스템에 전 국민의 예방접종기록을 통합관리하고 있다. 이제 서로 다른 병의원에서 접종 받은 기록을 통합으로 관리, 열람, 증빙할 수 있게 되었다. 의료인과 피접종자 모두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기록 전산등록에 다소 불편함이 있음에도 의료계가 이를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 사업 시행 10년째를 맞는 올해 약1억3000만 건의 국민 예방접종기록이 관리되고 있다. 이는 전체 예방접종 시행 건의 약90%가량으로 추정된다. 또한 IT강국의 명성에 어울리게 최근에는 스마트폰 앱으로도 예방접종기록을 언제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게 서비스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 공중보건 분야에서 기록유산을 선정한다면 우리나라의 예방접종 기록이 뽑힐 수 있지는 않을까.

전 국민의 예방접종 기록이 보존·관리되고 있어 세계기록유산으로도 전혀 손색없을 자료가 아닐까 생각한다. 남은 과제는 나머지 10%의 빈 조각까지 모두 채워질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노력하는 일이다. 예방접종 기록이 쌓이면 감염병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 있다. 노력여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쩌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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