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에볼라·조류독감·웨스트나일·사스…

라임병(Lyme Disease)·에이즈(AIDS)·에볼라(Ebola)·조류독감바이러스·웨스트나일바이러스·한타바이러스·사스(SARS).
지난 수십년 사이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망자를 야기하며 인류의 새로운 위협으로 부각되고 있는 신종 전염병들이다.
최근 미국에서 처음으로 인간에게서 발병한 원숭이천연두(monkeypox)에 이르기까지 이들 전염병에는 공통점이 있다. 동물에 의해 인간에게 감염됐다는 것이다.
이중 명확한 전염경로가 밝혀지지 않은 질병도 닭이나 돼지 등 인간생활과 밀접한 동물이 주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동물·인간 사이의 이종감염을 통한 유행성전염병이 급격한 확산 추세에 있다고 보도, 시급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보도에 인용된 관련 전문가들은 이들 신종 전염병의 종류가 다양해지는 것은 물론, 발생빈도 또한 놀랄 만한 속도로 빨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은 향후 치명적인 신종 병원체들의 출현이 더욱 빈번해 질 것이며 그 피해는 인류대란의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러스학분야 세계적 석학인 로버트 웹스터 박사(세인트주드어린이병원)는 "지구상에 아직 확인되지 않은 바이러스만 수백만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나, 특정 경로를 통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 그 존재조차 규명하기 힘들다"며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바이러스의 태풍에 비하면 사스는 산들바람(gentle breeze)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인간과 동물의 접촉이 다양한 종으로 확대되면서 이들에게는 해를 미치지 않는 바이러스·세균·해충이 인류에게 잠재적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빈번한 동물원성(原性) 감염증 발생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인간세계의 반응도 민감해졌다.

사스의 위력을 실감한 美 보건당국은 지난 7일 원숭이천연두 감염사례를 발표한지 하루 만에 전국에 주의보를 발령, 전염 매개체로 알려진 프레리독(prairie dog) 구입자 115명을 격리하는 등 민첩한 초기대응 모습을 보였다.
사실, 동물을 통한 전염병은 인류역사와 함께 해 왔다. 최근까지 인류를 괴롭혀 온 천연두는 낙타에서 전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14세기 중엽 전 유럽을 공포에 몰아 넣었던 흑사병은 쥐가 원인이었다.
한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만들어 내며 위용을 자랑했던 로마의 도로공사가 각국의 질병을 들여오는 경로가 돼 로마제국멸망에 기여했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주장도 꾸준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리 등 물새류에 의해 발생한 독감바이러스는 수많은 변종을 만들어 내며 인류의 숙적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최근 들어서는 이같은 질병의 종류가 다양해 지고 있다. 에이즈는 지금으로부터 75년 전 SIV(Simian Immunodeficiency Virus)를 보유한 침팬지 사냥과정에서 인간에게 옮겨졌을 것이라는 이론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출혈로 사망을 야기하는 에볼라 또한 1976년 이 경로를 통해 아프리카 지역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외에도 1977년 美코넥티컷주 라임지역에서 사슴 등에 서식하는 진드기를 매개로 발생한 라임병·1993년 美뉴멕시코에서 발생, 젊고 건강한 성인들을 죽음으로 내몬 한타바이러스·올 여름을 앞두고 미국인들을 긴장시키고 있는 웨스트나일바이러스를 비롯 최근의 사스와 원숭이천연두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WP" 최근의 동물원성 감염병 증가의 원인으로 지구촌 환경의 변화를 들었다. 과거 미개척지였던 열대우림이나 정글에 인구가 밀집하고, 개발도상국의 도시화 정책으로 인간에게 생소했던 동물과의 접촉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엘리뇨·라니뇨 등 지구촌 기후변화로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 조류나 해충도 인간거주지역에 더욱 가깝게 접근했다. 특히, 야생에 서식하던 설치류나 양서류 등이 애완동물로 변신, 인간과 함께 거주하면서 감염의 위험성은 더욱 높아졌다.
美콜롬비아대학의 스테판 모스 교수는 "과거 생태계 속에 묻혀 있던 이종감염의 문제가 인간세계로 옮겨 왔으며, 교통의 발달로 인한 바이러스 트래픽의 확대가 이들 감염증의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서구 선진국들은 이미 설치·운영되고 있는 국가질병관리기구의 권한을 강화하는 한편, 외국산 동물 수입규제에 관한 법률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생활수준 향상으로 애완동물이 늘면서 외국산 동물 교역량이 정부당국의 통제가 힘들 정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美 전염병 전문가 웨인 파셀리 박사에 따르면, 동물교역량이 약물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는 지적이 있으며, 지금까지 이를 통제할 법규가 없거나 유명무실했다.
국내 사정은 어떠한가? 아직도 축산업이 1차산업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된지 오래다.
특히, 도시와 농촌 모두에서 각종 가축과 애완동물 한·두마리 안키우는 집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동물과의 접촉기회가 많아졌다. 그런데도 우리정부는 복지부의 "질병관리본부" 신설 요청과 관련, 정부조직 확대 불가란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본지 6월 12일자 3면>.

한국에서는 김치 때문에 사스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등의 과학적 근거조차 부족한 가설에 안주하고 있다가는 크게 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이종욱 차기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의 경고성 발언을 되새겨 봐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