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검사의학회-수혈학회, 국립혈액관리원 설립 촉구

"혈액관리사업을 적십자로부터 분리해 혈액전문가 주도의 국립혈액관리원을 설립, 국가가 주도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와 대한수혈학회가 지난달 9일 충북혈액원 관할 충북대센터에서 발생한 헌혈자 사망사고와 관련, 대한적십자사가 혈액본부장을 비롯 3명의 고위 의무직 인사에 대한 문책성 인사를 단행하면서 후속 인사로 행정직 등 비전문가들을 대거 채용한 조치에 대해 강력 비난함과 동시에 국립혈액관리원(가칭) 설립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미흡한 혈액관리와 이로 인한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된 수천억 원의 재정은 적자 해소와 자산 늘리기에 사용됐으며, 혈액관리본부장 및 총재 등 핵심인사의 경우도, 전문성이 결여된 일반직으로 임명하는 등 혈액사업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전문가 확보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학회들은 공동의견서를 통해 ▶2004년 혈액안전관리 종합대책 중 독립성ㆍ전문성 제고 실패 원인 해명 ▶향후 종합대책 미이행시 지난 5년간 적십자에 투자된 3000억 원 환수 및 그에 대한 정부입장 표명 ▶혈액전문가 주도의 국립혈액관리원 설립 ▶관련학회, 복지부 적십자가 함께하는 국무총리 주관 대책회의 개최를 정부와 적십자에 요구했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 민원기 이사장(서울아산병원)은 "문제의 시작은 헌혈자 사망사고지만, 이번 움직임을 촉발시킨 것은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의무직 인사파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성명서의 근본적인 내용은 대한적십자사의 인사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혈액사업에서 전문인력이 배제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자는 것이다"고 분명히 했다.

진단검사의학회 엄태현 보험이사(일산백병원)는 "혈액사업의 전문인력 배제는 혈액의 안전성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적십자사가 국내 혈액의 95%를 관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혈, 헌혈에서의 안전성 문제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수혈학회 김현옥 부회장(연세의대 진단검사의학과) 또한 "20년 넘게 혈액관리에 매진한 전문가들이 외부 압력에 의해 도외시 된다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특히 인적 자원이 무엇보다 중요한 혈액관리에서 절대적인 노하우를 가진 인재에 대해 대안없는 인사 단행의 문제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천억 원의 재정 투입으로 혈액 안전성이 확보된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는 혈액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적십자사가 전문가 투입에 대한 안일한 태도와 지속적인 질적 성장을 위한 선순환 체계 마련에 나서고 있지 않은 점 등은 심각한 문제라는 것.

실제로 187개 세계적십자연맹 회원국 가운데 적십자사가 혈액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는 불과 21개국(약 11%)뿐일 정도로 정부 주도사업으로 점차 바뀌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김 부회장은 "학회가 건전한 내부고발로 나선 것"이라며, "이번 논란을 단순한 문제제기 차원을 넘어 혈액전문가에 의한 관리체계 구축을 심층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혈액사업의 전문성 결여 및 지속적인 혈액관리의 질적 업그레이드 등에 대한 의지가 없는 적십자사로부터 혈액관리사업을 독립해 국립혈액관리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정치적 문제를 떠나 국가가 주도하는 혈액사업체계를 만들어 혈액사업자체의 질적 향상을 통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선진 혈액사업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관련 학회들은 집단 사의를 표한 혈액관리본수 소속 의무직들에게 국무총리 주관 대책회의가 결정되기 전까지 집단행동을 유보하고 혈액관리 임무에 충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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