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병원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

창간 10주년 특집=이국종 교수 동행취재

소말리아 해적과 맞서싸운 석해균 선장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오만에서, 또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이국종 교수. 무사히 석 선장이 회복되고 퇴원한 이후에도 외상센터 관심을 이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하고, 정부 차원으로도 지원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난 7월 1일 그와 함께 동행한 일상에서는 관심 이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환자들, 헬기까지 동원되더라도 모자라는 응급실, 그리고 피곤한 기색으로 매일 새벽 응급수술을 강행하는 스탭들.

그들은 하나같이 관심이 오히려 거품이었던 것 같다며 몇천억원에 이르는 거창한 외상센터가 아닌 실질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제대로된 거점 외상센터, 그리고 외상외과 전담인력 등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늘내일도 여러 병원을 전전긍긍하며 죽어가는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이국종 교수의 오전 진료는 회진에서부터 시작됐다. 어제 응급수술을 하려던 할머니 한 분이 수술하려는 직전 심장이 멎어서 사망했다고 한다. 5명 수술환자 중 2명이 사망했다며 다소 무거운 분위기다.

헬기를 이용해 긴급하게 수송된 환자도 있었다. 응급실에 자리가 나지 않았지만,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한 켠에 어렵사리 환자를 받았다. 간신히 수술을 마치더라도 응급실로 되돌아갔다 관리가 되지 않아 욕창이 생기는 사례도 다수 있을 정도로 열악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전쟁 아닌 전쟁이었다.


상대적으로 중환자들이 자리잡고 있는 응급집중치료실에는 20병상 정도가 있는데, 그중 15명이 중증외상환자였다. 외상외과 전담팀은 상대적으로 소수정예인 듯했다.

몇 안되는 외상외과 스탭은 뜻한 바가 있어 이 어렵고 험난한 길을 택한 이들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응급수술이 생기면 누구 차례, 누구의 몫이랄 것이라 할 것 없이 하나같이 달려오니 말이다. 수술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이 교수의 역할은 더욱 크다.


2시간 넘는 수술은 거의 없지만, 긴장의 연속이다. 그들에게는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 뿐이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긴박함이 돌지만, 생명을 빨리 살리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고 수술에 임한다.

이 교수는 회진을 돌며 하나하나 환자 상태를 체크했다. 교통사고로 수술한 환자가 보인다. 폐가 제 기능을 하지 않아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신장 기능이 좋지 않아서 인공신장을 작동시키고 있다며, 이 정도라면 중증환자라고 말한다.

혹여 간기능이 저하되는 등 인공장기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곳이 파열된다면 상황은 종료되는 아슬아슬한 상황도 많이 연출된다. 이 교수는 "사고에 의해 몸이 으스러질 때 전체가 으스러지며, 내부장기는 다른 부품으로 대체할 수 없다"며 "폐에서 물이 쏟아지고 소변도 계속 외부로 별도 빼줘야 하는 환자들이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자살 사례도 많다. 심지어 칼에 찔려 입원한 환자도 상당수 보인다. 목의 경정맥이 잘린 한 환자는 목 근육을 잘라서 혈관을 잇는 수술을 했다. 창상 환자가 생각보다 많은 이유에 대해 '총을 소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섬뜩 놀라게 했다.


신문 사회면을 장식할 것 같은 여러 가지 사연이 그들에게는 똑같은 하나의 환자일 뿐이다.

두부는 신경외과 담당이지만 경부부터 흉복부까지의 다발성 골절은 외상외과의 몫이다. 교통사고나 작업 시 추락사가 대다수다. 이때 즉사하는 경우도 물론 많다. 간신히 빨리 후송되어 조치를 받는다면 그때서야 생명을 구하는 수준이다. 이마저도 몇 개 병원을 전전긍긍하다 간신히 치료를 받으면 그 환자는 '매우 운이 좋은' 것이다.

이같은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겉만 번지르하게 꾸며진 우리나라 병원의 속을 들여다보면 열악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석 선장은 우리나라가 아닌 오만에서 응급조치를 받았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오만에 직접 가보니 간호사와 환자가 1대 1수준이었고, 인공호흡기는 우리보다 훨씬 최신 버전이었다"며 "우리는 응급실의 책임간호사가 3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고, 장비는 수가를 생각해 구입하는 등 겉으로 보이는 병원 시설만은 전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환자는 목뼈부터 등뼈, 척추, 골반 모두 으스러졌다. 작업현장에서의 추락사였다. 한 가정을 책임지기 위한 가장의 역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족들이 면회를 와서 눈물을 글썽인다.

이 교수는 생명을 건진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다독인다. 가족들은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치지만, 환자의 온몸이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어 함께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안타깝게 했다. 비슷한 원인으로 외국인 근로자도 병원에 많이 실려온다. 무려 5%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입원환자들이 있는 중증 외상 병동도 찾았다. 기도 파열 환자, 내장이 바깥으로 빠져나온 환자 등 병동에 있는 환자들이라고 해서 증상이 가벼운 환자는 없는 듯 했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잘 낫고 있으니 이제 괜찮다. 너무 조급히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무사히 살아있는 게 다행이라며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주는 것이 또다른 치료법이 아닌가 싶었다.

중증외상센터가 갖춰졌지만, 여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응급환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이 교수는 "중요한 것은 몇천억에 달하는 헬기시스템이나 통신망, 거대한 여러개의 센터가 아니다"라며 "의료진, 인턴 하나가 아쉬우며, 여러 병원을 돌지 않더라도 확실히 치료받을 수 있는 거점 외상센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생명 하나를 살리기 위한 제도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거품이 형성되고 너도나도 외상센터만 구축해 실질적인 치료를 담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교수는 강의에서도, 현장에서도, 같이 일하는 팀원들에게도, 학회에서도, 정부에도, 국회에도 항상 이런 목소리를 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계속되는 수술 강행군에 무릎 상태도 좋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를 찾는 환자들을 생각해서 힘을 내보기로 했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제대로된 외상센터를 통해 예방가능한 사망률을 많이 낮출거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말이다.

사진=고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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