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현재 병력 청취" 환자 진단의 기본 자세


류마티스 질환은 대부분이 자가면역체계 이상에 의해 발생하며 관절·근육·피부·신경계·눈·귀·내분비계·폐·신장·혈관 등에 두루 나타날 수 있다. 류마티스관절염을 비롯 100여가지가 해당되는데 이 질환은 조기에 정확한 진단과 적극적인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지는 이 질환의 적절한 치료를 통해 관절의 파괴와 변형을 예방하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전하고 있는 젊은 류마톨로지스트를 발굴 소개한다. 많은 애독 바랍니다. <편집자>


 "흔히 말하지만 성취하기 어려운 최고의 목표는 진료ㆍ연구ㆍ교육의 균형을 잡으며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의학자로서 항상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좋은 논문을 많이 쓰고 싶은 거죠. 늘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만나는 임상의사로서 환자들의 작은 호소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의사가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제게 진료 받는 환자분들 모두에게 최선의 의학적인 도움과 따뜻한 위로로 건강을 되찾아 주고 싶습니다."

 경희의료원 류마티스내과 이연아 교수는 이러한 소망을 마음에 품고 환자들과 만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실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이연아 교수는 과거에 비해 류마티스 질환에 대한 인식이 그냥 내버려 둬도 되는 질환이 아닌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질환으로 바뀌고 있고 이에 따른 '조기진단ㆍ진료'가 차츰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Q: 전문 진료 분야와 함께 최근 연구 중인 분야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A: 환자가 많은 류마티스 관절염과 골관절염 외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진료하고 있는 분야는 전신홍반루푸스(Systemic Lupus Eerythematosus, SLE)와 섬유근육통(Fibromyalgia)입니다. 루푸스는 류마티스 질환의 대표 질환으로 천의 얼굴을 갖고 있다고 표현할 만큼 다양한 증상과 함께 전신적인 장기 침범이 나타날 수 있는 질환입니다. 특히 여성 환자가 많기 때문에 마음이 더 쓰이기도 하지요. 환자들이 여러 가지 문제에 당면할 수 있기 때문에 궁금증 해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5년 전부터 루푸스 환우회의 의료상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섬유근육통은 특별한 근골격계 이상 없이 만성적인 전신통증·수면장애 등을 보이는 질환으로 루푸스·쇼그렌증후군과 같은 류마티스 질환과 동반되기도 합니다. 이 질환에 대해 관심이 있는 류마티스 전문의들이 구성한 연구회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류마티스 관절염의 심혈관 질환 위험증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고, 지난 5월에 개최됐던 유럽 류마티스학회에서는 최근 증가 추세에 있는 통풍 환자들의 신기능에 대한 연구를 발표 했습니다.
 
Q: 진료 현장에서 느껴지는 류마티스 질환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도는?
A: 종전에는 근골격계 통증이 있으면 민간요법이나 한방치료 등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의료 관련 방송이나 인터넷 등 정보매체의 발달로 환자들의 류마티스 질환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약을 먹는 것이 몸에 독이 된다고 생각해 치료를 게을리 하거나 양약보다는 건강식품이나 민간 비방 등이 몸에 이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류마티스 질환은 증상이 매우 다양하고 나타나는 개개의 증상과 달리 근본 원인은 면역체계 이상에 있기 때문에 의료인이 아닌 이상 이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건강강좌·캠페인 등을 통해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합니다.

Q: 류마티스 질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A: 류마티스 관절염·루푸스와 같은 류마티스 질환은 치료시기를 놓치고 방치하면 여러 합병증이 진행할 수 있지만 조기에 진단하고 초기부터 면역조절제 및 항류마티스 약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질병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입증돼 있습니다.
 
어느 질환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조기에 진단받고 적극적인 치료와 생활습관 조절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많은 환자들이 얼마 동안 치료하면 완치되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대부분의 류마티스 질환은 만성적인 경과를 보이며 짧은 기간 동안 약을 먹고 완치될 수 있는 질환이 아닙니다. 근거 없는 소문 등에 현혹되지 않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최근 류마티스 치료 트렌드와 함께 향후 치료의 방향성을 전망해 주십시오.
A: 과거에는 부작용이 적은 약제부터 시작해 점차 강력한 치료로 이행하는 '피라미드 전략'을 사용해 왔다면 최근에는 진단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강력한 치료를 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생물학적 제제(biologic agent)들이 개발·사용되면서 류마티스 질환 치료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물학적 제제란 그 성상이 단백질을 기본으로 하는 약제로 염증반응을 매개하는 사이토카인(Cytokine)·세포 표지자 등 특정 물질만을 선택적으로 차단하거나 중화하는 작용을 하며 표적치료(Targeted therapy)를 가능하게 합니다. 항류마티스 약제와는 다른 기전으로 강력한 치료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최근 수년 동안 사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으며 현재도 새로운 생물학적 제제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생물학적 제제의 조기사용에 대한 연구 데이터도 축적돼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분간 류마티스 영역의 치료 방향은 생물학적 제제가 이끌어갈 것으로 생각되며 이들의 사용 영역이 더 확대되고 사용 시기도 좀 더 조기에 사용하는 쪽으로 나아갈 전망입니다.
 
Q: 류마티스내과 전문의의 길을 걷게된 계기는?
A: 석사학위의 세부전공은 심장내과였습니다. 우직하게 일생 동안 뛰는 심장을 다루는 학문에 매력을 느껴 내과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전공의 수련과정 중 류마티스내과 환자를 접하면서 자가면역질환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면역체계가 혼동을 일으켜 자신을 공격해 병을 만드는 자가면역질환은 특정 장기나 조직만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전신에 걸쳐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각각의 증상만을 보고 접근한다면 진단 내리기 어렵습니다. 각각의 나무만 봐서는 숲의 전체 모양을 알 수 없듯이 개별적인 증상뿐 아니라 환자의 과거와 현재에 걸친 전체적인 병력을 자세히 고찰해야 하는 진단과정이 마치 퍼즐조각을 맞춰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숙련된 류마티스 전문의가 아니라면 숨겨져 있는 질환의 본질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류마티스내과학의 매력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습니까.
A: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련해지는 환자가 있습니다. 두 아이를 둔 30대 젊은 여자 환자였죠. 둘째아이 출산 후 얼마 있다가 축농증 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았고 심한 입마름 증상과 얼굴홍반·관절통 등으로 류마티스내과에 의뢰됐던 환자입니다.
 
검사결과 루푸스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이후 호흡곤란이 발생해 입원했을 때는 심한 폐동맥고혈압에 의한 심부전 진단이 붙여졌습니다. 폐동맥고혈압은 전신경화증·루푸스와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혈관 합병증 중 하나로 이 환자의 경우 진단 당시부터 폐동맥고혈압이 매우 심해 1년 생존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였습니다.
 
가족들과 상의하에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치료를 하기로 했고 매달 면역억제 주사치료 및 폐동맥고혈압 치료제를 병합한 결과, 6개월 뒤 비정상적으로 커져있던 심장크기와 폐동맥압이 줄어 너무나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컨디션이 좋을 땐 틈나는 대로 아이들과 여행도 다녀오고 생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던 그녀는 1년이라는 통계학적인 생존 가능성을 훌쩍 넘어 3년 8개월을 살다가 작년에 운명했습니다.
 
환자가 떠난 후 환자의 남편은 고인이 제게 남긴 선물이라며 곱게 포장된 만년필을 전해주었습니다.
 
어느 병이든 최선의 치료는 조기 진단이라는 교훈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고, 아직까지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한다 해도 한계가 있음을 깨달을 때마다 생명 앞에 겸손해집니다. 유경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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