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기증 허용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돼야



마치 소녀처럼 말간 웃음을 지닌 안규리 교수를 만난 건 창밖 풍경이 좋은 연구실에서였다. 2008년부터 서울대학교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을 맡고 있는 안 교수는 환자들이 긴 시간 애태우며 이식을 기다리지 않고 장기 이식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했다는 소식이나 이식을 위해 중국으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장기이식 분야에 평생을 바쳐온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깝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안 교수가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이 되었을 때 역점을 둔 부분은 뇌사장기이식을 보다 활성화 하는 것이었고, 그 첫걸음이 뇌사이식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외국 수준의 법과 제도를 도입하는 작업이었다.

대한이식학회와 함께 안교수는 정부 등 관련 단체를 상대로 몇 년 동안 열정적인 활동을 펼칠 결과 최근 그 결과물을 얻었다.
 
지난 6월 1일부터 효력을 발생하는 개정법의 주요 내용은 뇌사추정자를 장기구득기관에 연결하여 장기구득기관에서 장기를 구득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 구득기관(求得機關)제도와 뇌사 판정 절차를 보다 용이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의료진은 뇌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뇌간반사 검사 중 5개 항목 이상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는 환자를 뇌사 추정자로 규정할 수 있어 시름을 한 가지 던 셈이다.

독립장기구득기관, 생명잇기 운동 펼쳐
 
그동안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는 뇌사자의 장기를 관리할 수 있는 전문기관을 만드는 것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지금은 여러 병원에서 각각 장기이식센터 중심으로 장기구득을 하고 있지만, 장기구득을 전국적으로 할 수 있으려면 어떤 병원에 뇌사자가 있더라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이를 이식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적이고도 효율적인 전담기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대병원 하종원 교수가 맡고 있는 한국장기기증원(KODA)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한편 장기구득은 사회적 동의가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전 김수환 추기경께서 안구를 기증하셨을 때 일시적으로 장기기증 희망자가 늘어났듯이, 장기기증은 한 국가의 국민들이 이를 기다리는 환자들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생명 나눔에 동참을 해야만 가능하다.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는 이식학회와 함께 장기기증 문화 확산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안 교수는 "장기기증이 제대로 흘러가려면 사회적 동의가 필요했는데, 그래서 고안한 것이 '생명잇기'다"라며 "2009년 출발한 생명잇기는 의료인 중심의 장기기증 문화 활성화 단체로서 우리나라의 다양한 NGO들과 관련 기관에게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한 홍보, 교육, 정책개발 등 건전한 생명나눔 운동을 정착시키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설명한다.
 
뇌사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의료인이라고 강조하는 안 교수는 환자에게 뇌사를 통해 장기기증을 얘기하는 의사는 30% 안팎이라며 의대에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전방위적 노력 덕분에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최다 뇌사자 관리를 할 수 있었으며, 심장이식과 간이식도 덩달아 늘어났다고 한다. 여기에 그동안 사용할 수 없었던 장기를 관리하여 이식하는, 확장범주 공여자 장기의 활용 빈도도 15% 증가했다.
 
이러한 성과는 서울대병원 통계에도 나타났다.
 
지난 해 간이식 156건, 신장이식 130건, 심장이식 17건, 폐이식 3건이 이뤄졌고, 간이식은 3년 연속 연 20% 이상, 심장이식과 폐이식 역시 3년 연속 80% 이상 성장 곡선을 그렸다. 지난해 서울대병원에서 최다 뇌사자 장기이식이 이루어진 것 역시 주목할만 하다.
 
미래 장기 개발에 대한 연구 필요
 
미국보다 이식 환자의 생존율도 높고, 세계에서도 인정할만한 수준을 갖고 있다는 우리나라 장기이식술.
 
하지만 문제는 현재 이식할만한 장기가 부족하고, 이런 문제는 갈수록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점이다.
 
고령화되면서 당뇨나 고혈압 등을 앓는 사람이 많아지면 결국 뇌사자의 장기는 쓸 수 없어져 앞으로 장기이식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올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이 이종장기다. 안 교수는 이종장기 이식에 대한 연구를 몰입하고 있는데 최근엔 지식경제부의 연구과제로 당뇨병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이종 췌도 이식 연구를 하고 있다. 안 교수는 "형질전환 돼지를 이용한 췌도 이식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지난해는 구제역 때문에 고생했다. 영장류 실험도 하고 싶은데 사실 연구비도 문제 등 어려움이 많다"라고 말한다.
 
임상의가 임상연구를 하는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은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연구에만 빠져 있을 수 없고, 환자도 진료하고 회진도 해야 하는 등 부가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 시간적으로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연구팀과의 공동연구가 필수적인데, 안 교수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현재 이종장기 연구가 흩어져 있어 제대로 된 시너지를 내지 못한다는 부분이다.
 
"임상시험을 충분히 이해하는 연구팀과 임상연구병원 등 다양한 분야가 합쳐져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연구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즉 이종장기 연구는 여러 연구팀이 모여서 같이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연구 클러스터 형태를 가질 때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임상 교수들이 성장하려면 미국처럼 의과대학 졸업 후 7년 동안 지원해주는 제도적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안 교수의 생각이다.
 
"의대에 들어온 친구들 중 7~8% 정도만 임상연구 전담 교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다"
 
"이식 환자 위한 최소한의 징검다리라도 만들고파"
 
미국에서 공부할 때 두 갈래 길에서 갈등했다는 안 교수는 결국 사람들이 못 고치는 질병에 도전하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임상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연구하면서 어려움에 부딪히더라고 꿋꿋하게 이겨나기는 게 중요하다. 징검다리를 하나를 놓다 힘들어 잠시 쉴 수는 있어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안 교수는 "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하고 싶고, 후배와 환자들을 위해 최소한의 인프라라도 만들어 놓고 싶다"라고 말한다.
 
울퉁불퉁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안 교수를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이유는 안 교수가 개척해내는 길이 사람들이 쉽게 다닐 수 있는 편안한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걸려 있기 때문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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