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풍당당 프로젝트-선정민 광주광역시 양산동 선내과의원 원장




"수 많은 세월을 거침없이 살아온 / 인생에 대해서 / 후회는 없노라고 하시면서 / 등 돌아 누우시던 당신의 눈에는 / 삶의 애착이 잠시 스쳐갑니다. / 평생 동안 받아온 고통을 합친 것 보다 / 더 힘들었을 나날들. / 손자 녀석들에게 그 모습 보여주기 싫어 / 애써 태연한 척 하시던…// 노란 삼베옷을 입고 / 참으로 평온해 보이시는 / 당신의 마지막 모습 / 눈물이 어른거려 앞을 가려도 / 한없이 더더욱 또렷해지기만 합니다. // 첫 눈 오는 날 / 하늘나라에 계신 할아버지의 선물이라고 / 재잘거리며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 잠시 눈시울을 적시며 / 하늘을 바라봅니다.(할아버지의 선물. 선정민)"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위치한 선내과의원에 가면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환자들을 맞아주는 선정민 원장이 있다. 모나지 않은 둥글둥글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선 원장이 있어 이곳을 찾는 환자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물리치료실 운영…시골의 정 가득
 
선 원장은 1997년에 개원했다. 개원 14년차 답게 여유 있는 모습으로 환자들을 대한다. 보다 세심하게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환자의 얘기에 귀 기울이며 환자의 불편함을 찾아 해결하는데 집중한다.
 
환자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의원 곳곳을 둘러본다. 그래서 선내과의원에는 있고 다른 내과의원에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물리치료실이다. 따로 정형외과에 가야 받을 수 있는 물리치료를 선내과에서도 받을 수 있다. 환자 서비스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개원하면서부터 물리치료실을 두고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무래도 노인 환자들이 많은데다 내과적 질환과 동반된 것이 많다는데서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지요. 환자들이 내원해 잠깐 있다 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면서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며 물리치료까지 받고 가는 모습을 보면 동네 사랑방 같이 느껴져 정겹습니다. 이런 정이 있어야 사람 사는 곳 같잖아요. 이곳은 광주 외곽이라 도시와 농촌의 모습을 반반씩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시골인심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할머니 환자들이 김장김치는 물론이고 김치를 담글 때마다 맛깔스런 김치를 가져다 주셔서 김치는 안 떨어지고 먹는답니다. 이것이 시골이 가진 매력 아니겠습니까."
 
문학소년에서 글 쓰는 의사로
 
선 원장은 개원 전 대전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일했다. 아무래도 도심이었던 대전이 살기에는 훨씬 좋고 편리했지만 이를 뒤로 하고 고향인 광주로 돌아와 안착했다. 당시 부모님이 편찮으셨기 때문이다. 의대나 법대 둘 중에 선택해서 가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들이니 만큼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귀향해 왔다.
 
부모님 말씀대로 의사가 됐지만 초중고 시절 모두 문예부에서 활동하면서 문학을 했고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예창작과를 가겠다고 했더니 집에서 난리가 났어요. 하지만 쉽게 뜻을 굽히진 않았었죠. 그런데 당시 너무나 좋아했던 국사 선생님께서 말리시는 거예요.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국사는 항상 백점을 받을 정도로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랐어요. 선생님 말씀이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면 배가 고플 거라는 거였죠. 그러니 의사가 되어서 글을 쓰라고. 결국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학생 잡지에 글이 실려 팬레터도 받고 직접 찾아오기도 했던 영광스런 시절을 뒤로 하고 말이죠."
 
주말엔 시 쓰기·사진찍기에 열중
 
의대로 진학하고 의사가 된 후 꿈은 40세에 시집을 내는 것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세월은 너무나 훌쩍 지나가 버리고 빨리 흘러버려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그래서 50세에 시와 사진을 함께 엮어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준비하고 있다.
 
진료가 없는 주말에는 사진 찍기와 시 쓰기 작업에 열중한다. 2년 간 준비해 왔으며 시간 날 때마다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항상 감각을 곧추세우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아름다움 또는 정겨움을 담았다.
 
"시간이 주말밖에 없어 주말에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공연 사진을 많이 찍게 됐어요. 공연을 많이 다니다 보니 이젠 공연사진 전문가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공연 장면은 미동이 없는 풍경이 아닌 움직임이 많은 만큼 순간 포착을 위한 감각과 기술을 필요로 하거든요."
 
'내 환자는 내가 책임진다'는 각오로
 
선 원장은 소화내시경전문의로서 내시경 검진은 물론 환자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모두 갖추려고 한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쉽지 않은 것이 있다. 입원실을 마련하는 것이다. 개원 내과의원에서 입원실까지 갖추는 것이 드물고 쉬운 일은 아니다. 좀 더 많은 인력과 장비 투자는 물론 시간까지 몽땅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병을 완치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병원으로 보내야 할 때, 내가 치료해 주고 싶은데 입원실이 없어 보내야 할 때 너무나 안타까워요. 나를 믿고 찾아온 환자인데 말이죠. 제가 환자에 대한 욕심이 좀 많아요. 종합병원에 있을 때는 일요일에도 나가 내 환자는 꼭 확인하고 들어왔습니다. '내 환자는 내가 책임진다'라는 생각으로 하다 보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더 신중하게 되지요. 실력과 함께 진중함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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