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봉생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경외과의원으로 출발해 60여년의 역사를 가진 김원묵기념 봉생병원이 의료 소외지역이었던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에 개원한 종합병원입니다. 이곳에서 환자들과 만나 울고 웃고 한 세월이 어느 새 20년이 흘러갔네요."



동래봉생병원 구대영 원장(내분비내과)은 병원의 역사 속 산증인이다. 1990년 개원할 때부터 함께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김원묵기념 봉생병원에서 진료를 해왔다.
 
환자를 위한 병원
"환자로부터 생긴 이익은 환자를 위해 쓰여져야 합니다. 이 말은 정의화 의료원장(국회의원)이 늘 주장하던 말로 처음 봉생병원과 인연을 맺을 때도 양심있는 의료인들의 병원을 만들자는 뜻이 마음에 와 닿아 봉생병원에서의 삶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병원을 통한 수익은 다시 환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저소득층 지원사업, 지역사회 교육 지원사업, 문화사업 등 여러 봉사활동과 지원사업을 진행해오고 있지요."
 
구 원장은 특히 기업화된 영리재단의 의료계 진출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여긴다. 영리를 위주로 하는 한 과잉진료와 약물 오남용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허용범위 안에서 최대한 수익을 내야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말 그대로 소신진료가 불가능해 진다는 얘기다.
의료행위는 그야말로 인술이고 소신이다. 환자를 위한 병원을 항상 강조하는 것은 환자가 있기에 병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의료행위는 환자를 위해 이뤄져야 한다. 참으로 간단명료해 보이는 이 원칙이 영리적인 목적을 만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병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만이 의료인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 모두가 의료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환경미화원이나 안내직원까지 다함께 의료인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일하자는 뜻이죠. 직원 조회 때마다 얘기하곤 합니다. 신입직원들에게는 특별히 더 주지시키고요. 매년 8주에 걸쳐 전 직원이 교육과정을 거칩니다. 교육을 통해 친절한 의료인의 자세라던가 직장인 자세 등에 대해 강의를 들어요, 하지만 교육에서 또 한 가지 얻을 수 있는 것은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병원의 교육은 소통을 위한 교육이자 병원의 방침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장이 되고 있습니다."
 
최소의 경비로 최상의 진료를…
동래봉생병원은 "신경중풍센터"와 "척추질환센터"를 통해 뇌혈관계통질환과 척추질환을 치료하고 있다.
"신경중풍센터는 발병과 함께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뇌혈관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응급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지역주민들이 대학병원까지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시키고 있습니다.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내원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어요. 그 명성에 걸맞게 24시간 신경계통 응급수술이 가능토록 운영되고 있어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는 동시에 열심히 진료에 임하는 의사선생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아울러 동래봉생병원은 원훈인 "정직·성실·박애"의 정신을 되새기며 의술보다 인술로서 환자를 먼저 생각하고 참사랑을 실천하는 병원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代를 잇는 평생 주치의
구 원장은 어릴 때부터 의사가 꿈이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초창기 때 한학을 하시던 조부가 이를 받아들여 그 뒤로 3대째 기독교 집안으로 이어져 왔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남을 위한 봉사나 나눔의 실천이 낯설지 않았으며 당연하게 생각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 이를 위해 의사가 되었다.
 
"진료실에 있는 것이 제일 편하고 행복해요. 환자들과 얘기 할 때 환자들 말 다 들어주면 병의 50% 이상은 해
결된다고 느껴요. 길게는 20~30년 만나온 환자들의 경우 집안 얘기까지 속속들이 할 때도 있지요. 그러면서 마음에 쌓였던 것들을 풀고 가는 거예요. 부모대에서 끝나지 않고 자녀까지 찾아올 때 가족주치의라는 자부심과 보람을 느낍니다."
당뇨병환자를 많이 만나다 보니 중학생 때부터 오던 환자가 있었다. 구 원장이 진료를 보고 나서 "야야, 너 왜 이리 많이 먹었노…"하고 있는데 밖에서 꼬마아이가 들어왔다. "니 딸이가…"했더니 맞다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어찌나 당황스럽고 미안했는지 모른다. 하도 아이 때부터 봐왔던 환자들에게는 존대를 하려해도 잘 되지 않는다. 중학생이 어느 새 아이 엄마가 되는 세월 동안 함께 했기에 환자들도 오히려 존대를 불편해 하기도 한다.
 
구 원장에게는 유독 전화로 상담하는 환자들이 많다. 심지어 외국으로 출장을 가서도 국제전화로 현재의 몸 상태를 전하고 조언을 구한다. 환자들이 이렇게 구 원장을 의지하면서 주치의로 인정하는 것의 이면에는 구 원장이 평소 "혹시 문제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해라"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의 번호를 알려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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