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할수도...안할수도...

"기부" 확대로 학술대회 운영…업체는 부담

춘계학술대회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공정경쟁규약 시행이 업체들에게 또다른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학회 임원은 "당장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기부를 받을 수 있다는 측면이 오히려 합법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의해 지원받고 예산을 집행할 수 있게 됐다"며 업체들에게 기부를 통해 학술대회 지원을 할 수 있는 활로를 열어둬 투명성을 갖게 된 점에 반색했다.

다른 학회 이사회에서는 지원이 크게 부족해진 현실탓에 제 1안건으로 올려둔 사항이 기부금일 정도로 기부에 대한 관심은 매우 크다. 영수증 처리 등을 위해 법인화를 미리 해둔 학회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기부"의 측면을 놓고 제약업계와 의료기기업계에서는 오히려 부담을 갖기도 한다.

공정경쟁규약에 명시된 내용에선 승인된 학회라면 기부가 가능하다. 제약협회와 의료기기산업협회에 기부대상을 선정해 의뢰하며, 승인받지 않은 기부라면 불가능하다. 이전에는 학술대회에서 별도의 런치섹션을 마련하거나 식음료 제공, 기념품 지급 등을 해왔다면 학회에서 이 비용을 한꺼번에 기부로 계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인의 회식, 정기총회, 이사회 등의 식음료를 지원하기 위한 평소의 제품설명회는 금지되어 있지만 학술대회는 어느 정도 열려있다. 그나마도 순수한 의미의 제품설명회는 10만원이하 식음료, 5만원 이하 기념품 등 실비 위주로만 지원할 수 있고 강연료나 자문료는 불가능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품설명회와 식사자리, 각종 지원 행사 등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공식적인 행사인 학술대회 쪽으로 무게감이 쏠리게 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약사법과 의료기기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준비하는 이번 춘계학술대회를 놓고 학회와 업체들이 고심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여졌다.

한 의료기기업체 대표는 "평소에는 학술대회에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기념품을 만드는 등의 실비 위주로 지원하게 됐지만, 이번에 한꺼번에 기부형태로 하라고 하는 제의가 학회 곳곳에서 들려온다"며 "원래 2000만원 수준의 비용이 들었다면 지금은 그 2~3배인 5000만원의 요구가 있다"고 토로했다.

한 제약업체 임원도 "학회에서 학술대회 준비 과정에서 업체들을 불러서 한번 가보았지만 기부나 학회 광고를 요청하는데 너무 과도한 액수라 부담이 됐다"고 밝혔다.

당장 지원금액이 커지더라도 학회와의 관계가 중요한 업체로서는 이렇다할 거절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다른 업체 임원은 "액수에 놀라서 거절하다가도 혹여나 다른 업체들이 기부에 수용하면 고민하게 된다"며 "대형업체에는 1억원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지원을 하지 않으면 학회 임원진들이 제품에 대한 보이콧을 하겠다는 으름장(?)도 있었다는 제보도 있었다"고 전했다.

더욱이 모학회 위주로 지원되고 실질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작은 학회나 연구회 등엔 지원경로가 어려워지는 또다른 문제도 파생된다. 학회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는 것이다. 학술연구로 키닥터로 활동하는 이들이 학회 임원이 아닐 경우에 학회의 무리한 지원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업체측은 "키닥터 등이 학회와 협의하에 자신의 강연료를 한꺼번에 책정하는 사례로 키닥터를 관리하고 있지만, 학회측에 수수료를 얹어 줘야하는 꼴"이라며 "학회와의 유대관계도 무시할 수 없지만 여러 업체들이 기부를 해야 할지, 기부를 얼마나 해야 할지를 계산하느라 고민이 많다"고 지적했다.

학회, "섣불리 요구할 수 없다. 지원받기 어렵다."

학회들의 공식 입장을 확인한 결과, 일단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학회로서는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해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학회 임원은 "예년과 같지 않은 지원으로 인해 회비를 대폭 인상하는 안 외에는 특별히 떠오르는 좋은 아이디어가 없다"며 "최대한 예산을 축소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부 역시 영수증이 드러나기 때문에 파생되는 다른 비용은 오히려 무시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른 학회 임원은 "제약사나 의료기기 제조사로부터 기부금을 받을 경우 학회측은 사전에 사용될 비용 내역을 적어서 내야하지만, 문제는 학술대회 자체의 비용만 계산한 나머지 그 외 인건비 등 부대비용에 대한 내용은 포함돼지 않아 현실적인 측면이 고려되지 않았다"며 "차액이 발생하게 되면 다음 학술행사의 예산에서 상당 금액을 삭감해 자금측면의 어려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 것"으로 우려했다.

이처럼 리베이트 쌍벌제로 대표되는 공정경쟁규약이 물론 투명성 제고에는 도움이 되지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파생되는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한 학회 임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회원들을 위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합법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공정경쟁규약에 따라 합법화된 것처럼 보여도 학회로서도 섣불리 요구할 수 없고, 지원에 나서는 업체도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업체 임원도 "지금 우왕좌왕하다가 꼭 필요하지 않은데 학회에 기부를 하다가는 돈만 날리게 되는 꼴일 수도 있고 잘 활용하면 오히려 학회와의 관계를 돈독히 가지고 갈 수 있다"며 "공정경쟁규약이 조금더 의료계에 알려지고, 보다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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