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도 잊은 "헌신진료"
몸은 피곤하지만 보람 느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을 하는 의사들은 어느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바쁜 삶이 아픈 환자를 위한 것이고,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김종한 과장(부산 영도병원 내과)의 독백이자 고백이다.
 
"입원 중인 환자의 상태가 어떻게 될지 몰라 밤에도 병원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제도 집에 못 들어갔어요. 그래도 환자들이 필요로 할 때 달려갈 수 있어서 병원에 있는 것이 맘이 편할 때도 있지요. 환자들도 그런 것을 아니까 안심된다고 하고요." 
 
환자는 살아있는 교과서
 
김 과장의 할아버지는 한의사였다. 할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연스레 한의사를 꿈꿨다. 하지만 운명은 한의사가 아닌 의사의 길로 이끌었다. 처음엔 의대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차츰 나아졌고 내과를 선택했다. 꼼꼼한 성격에 잘 맞았고 내과야 말로 자의식을 해치지 않는 과라고 생각했다.
 
수련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동료들에 비해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를 많이 맡게 됐다. 처음엔 부담스럽고 힘들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엄청난 경험을 쌓은 기회가 됐던 것이다. 환자는 살아있는 교과서였고 교과서 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환자들이 근방의 대학병원으로 가지 않고 영도병원을 찾는 것을 보며 그만큼의 신뢰와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한 때는 하루에 환자 400명을 혼자 본 적도 있어요. 그리고 거의 200명 이상은 봐 왔죠. 환자를 세밀하게 진료하기 위해 예약환자 위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평균 120명은 보게 됩니다."
 
친절만 가지고는 환자가 의사를 오래도록 찾아오는 계기가 되기에 부족하다. 감동을 줘야 한다. 종합병원이니만큼 응급실 등을 수시로 돌며 환자들을 안심시키고 담당 과장이 체크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담당 과장이 내려가 주면 환자들의 신뢰가 높아진다. 열심히 하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다.
 
사고로 죽을 고비도…생명의 소중함 느껴
 
김 과장은 얼음골 산외면이라는 곳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했다. 1983년이 돼서야 전기가 들어왔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5일장이 서면 할머니들이 배추나 무 등을 건네주기도 했던 순박한 곳.
 
어느 날 기차를 타고 가다가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내려야 하는 곳이었다. 잠결에 놀라 내리려다가 할머니 한 분과 부딪히고 말았다. 못 내릴 뻔 한 찰라 열차는 출발하고 그만 열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자칫 죽을 수도 있었는데 운 좋게도 찰과상만 입었다. 순간적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스쳐가며 두려운 와중에도 그동안 환자를 성실하게 잘 봐서 보상을 받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생명의 소중함을 강하게 느낀 계기가 된 셈이다. 
 
봉사란 조금씩 오래 해야 한다
 
수요일 오후에는 병원장과 함께 외부 봉사를 나간다. 재활원·복지관·양로원에서 무료 진료를 통해 소외된 이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뇌성마비나 간질발작 등 선천성질환자들을 만나며 가진 것이 많다고 봉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전기 설비를 점검해주는 것도 아이들과 운동하는 것도 봉사에 포함되니 말이다. 봉사는 한꺼번에 많이 하겠다는 욕심보다는 조금씩 오래한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 잠시 하고 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경발달 밸런스가 맞지 않아 수명이 짧은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그럼에도 즐겁고 밝은 이들을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시설에서 밝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이들이 더 부자이고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속적인 봉사의 삶을 살고자 한다. 영도병원에 오고 싶은데 차비가 없어 못 온다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다. 산골마을에서 힘겹게 병원을 찾는 노인들을 위해 산골로 진료봉사를 나가기도 한다. 열 가구를 돌며 "할머니 이제 병원에 오지 마세요. 젊은 사람 편에 약 보낼께요"라고 전한다.
 
김 원장의 인터넷은 환자들이다. 몸은 진료실에 앉아 있지만 환자들이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 들려준다.
 
의사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말을 많이 하기보다 듣는 것을 잘해야 한다. 정답은 환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판단을 빨리 하려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기에 환자와의 대화가 중요하다. 환자의 얘기를 끌어내야 한다. 마음이 닫혀있거나 대화가 정확하지 못해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치료에 도움이 안된다. 그래서 항상 환자의 얘기를 잘 들어주려 노력한다. 그리고 환자를 많이 보는 것보다 잘 봐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한 사람을 위해서 일주일 동안 집에 못가고 진료하기도 했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 보람됐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 진료받다 죽고싶다" 최고의 찬사
 
의사는 환자와 절대로 싸우면 안된다. 환자를 상대로 도박을 해서도 안된다. 반드시 협진과 리퍼시스템으로 환자를 최우선시 해야 한다. 자기 자존심을 내세워서도 안되고 수익만을 생각해서도 안된다.
 
"환자를 지치지 않고 볼 수 있는 힘.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도병원에서 일하며 지역주민들과 만나 온지가 어느덧 20년 세월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환자들이 선생님 손에 죽고 싶다. 대학병원 가지 않고 선생님께 죽을 때까지 진료받고 싶다고 말해요. 저로서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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