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안일한 대처 도마위

지난해에 이어 신종플루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25일 강원도 청평의 40대 남성 조모씨는 감기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신종 인플루엔자A (H1N1) 확진을 받고 타미플루 처방을 받은 사흘 후인 29일 숨졌다. 또 지난달 27일 전남 장수의 모여중 윤모양(15)이 신종플루 확진을 받고 타미플루 처방을 받았지만 3일 오후 숨졌다. 이어 대구 달서구 김 모군(3)이 지난 1일 오후 발열을 동반한 경련 증세로 병원에 입원, 신종플루 간이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고 3일 사망했다. 주말까지 3명의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 총 6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신종플루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영국은 올 겨울이 시작된 10월 이후 지금까지 영국에서 신종플루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39명에 달하며,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돼 집중 치료를 받는 환자는 벌써 730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신종플루 단어 사용하지 말고 검사도 말라?"

이런 유행 상태에서 경계태세를 갖추고 대응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신종플루를 감추려는 모습이다. 한 내과의사가 "복지부 공문에 진단명에 신종플루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고, 진단검사도 하지 말라고 내려왔다. 추가적인 역학조사와 진단검사 세부지침은 추후 수립해 주겠다고 되어 있다"고 밝히자 온라인 상에서 난리가 났다.

다른 의사들은 "스포츠 중계하듯 단순히 숫자를 방송하는 언론도 문제가 있지만, 의학적 판단을 뒤로하고 검사를 하지 말라거나 진단명을 쓰지 말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의학적인 진단을 내리는 검사여부를 단순히 정부의 공문으로 지시할 수는 없다"고 반발했다. 한 공보의는 "올해 소규모 유행은 예측가능 했던 것으로 중계에만 급급한 보도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올바른 대응을 하지 않고 검사를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측은 "지난해 지나치게 과다 발표되면서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 것이 이유"라며 "신종플루는 독감과 사망률이 크게 다를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대포장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실제 질병관리본부가 공식발표한 12월 19∼25일 인플루엔자 의사환자 분율(ILI)이 1000명당 23명 정도로 유행판단 기준(2.9명)을 훨씬 넘어서고 있으나, 지난해 신종플루 유행과 비교하면 최고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질병관리본부 공중보건위기대응과 관계자는 "신종플루로 불렸던 것은 새로운 바이러스였기 때문으로 이제 신종이란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며 "백신이 개발됐고 항바이러스제도 있으며 오히려 평상시 계절독감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해마다 2000명이 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구제역 등에 쏠린 방역당국의 관심이 신종플루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구제역은 가축에 대한 것이지만 신종플루는 인간에 감염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 감염내과 교수는 "유행 기간이 지난 이후 몇차례의 유행은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현재 구제역 등의 전국 확산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상태"라며 "이대로 가다가는 구제역처럼 문제가 크게 번지고 나서야만 대응하게 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이런 무관심이 야기한 타미플루 재고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5일 광주약사회에 따르면 광주지역 약국들에는 지난달부터 타미플루 재고량이 바닥나 신종플루 환자에게 타미플루를 투약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타미플루 품귀 현상은 최근 신종플루 유행 조짐으로 수요가 폭발하고 있지만, 정부와 도매상의 공급은 중단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신종플루가 대유행하면서 정부는 약국마다 일정량의 타미플루를 공급했지만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공급을 중단했고, 약국도 요구하는 환자가 거의 없는데다 타미플루가 비교적 고가여서 팔리지 않을 경우 버려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타미플루를 거의 확보하지 않았다. 7일 20만개를 긴급 투입한다고 발표하고 보건소에 비축량을 확인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약사회는 "작년에는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신종플루에 과잉 대응해 타미플루가 충분히 비축됐지만 최근에는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무관심해 비축량이 전혀 없는 상태"라며 "12월 초 신종플루 A형 바이러스가 처음 검출된 이후 호흡기 질환자의 35%가 신종플루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에 비하면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유통기한 연장 백신 문제도 재차 제기


임의로 유통기한을 연장한 백신 문제도 또다시 불거졌다. 일선 의료기관에서 남은 신종플루 백신을 지난해 4~6월 사이에 폐기할 예정이었으나, 유통기한을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해 10~12월까지 보건소에서 무료로 예방접종하게 했던 것이다.(사진)

당시 공보의들 사이에 비난이 끊이지 않았으며, 환자들에게 전혀 맞히지 않고 곧바로 폐기처분한 보건소도 다수로 확인됐다.

더욱이 가급적 고위험군에는 신종플루 백신 접종을 피하도록 하면서 논란을 가중시켰다. 한 공보의는 "신종플루가 다시 대유행한다면, 올해 유통기한 연장 후 보건소에 뿌려진 백신과의 연관성도 확인해봐야 할 문제일 것"이라며 "예방접종자가 감염될 우려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정책과 관계자는 "이미 어떤 백신인지 충분히 설명한 다음 접종하게 했다"며 "또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독감 백신이 신종플루 백신에 포함된 3가 백신으로 접종하면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2개 백신을 동시에 맞는 것이 권고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그는 또 "더이상 유통기한을 연장한 백신이 남아 있지 않으며, 3가 백신으로 인해 논란은 해소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혹여 정부당국과 보건소간 대화가 불충분했다 치더라도, 유통기한 연장 백신 안전성에 대한 의혹은 재차 제기될 전망이다. 한 개원의는 "매일 접종을 해야 하는 의사들이 불안할 정도라면 설득력이 떨어지며, 당시 공무원들도 맞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유통기한 연장의 근거를 확실히 밝히고 데이터를 공개해야 하며, 앞으로 이런 식으로 유통기한을 임의로 늘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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